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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절제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월간〈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욕망(慾)은 원래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생존하고 자손을 낳아 번성할 수 있도록, 삶의 필요한 요소요소에 욕망을 넣어 주셨습니다. 식욕(食慾)이 있기에 인간은 음식을 섭취하는 행동을 게을리하지 않고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성욕(性慾)이 있기에 인간은 자신의 짝을 찾으려 부단히 애쓰고, 가정을 이루고 사랑을 나눠 아이를 낳고 자손을 이어 갑니다. 수면욕이 있기에 인간은 잠을 통해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해서 다음 날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인류의 다양한 문화 활동이 가능해졌습니다. 공동체를 구성하고 정치를 하며 권력을 가지려 하는 것도 이런 욕망 때문에 가능합니다. 유희에 대한 욕망은 인간들이 서로 관계를 형성하고 친교를 나누며 삶의 즐거움과 의미를 추구하게 해 줍니다. 이렇듯이 욕망은 우리 인류가 계속해서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꼭 필요한 요소에 선물처럼 넣어 주신 것입니다.

 

욕망은 쾌락을 동반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쾌락에만 너무 탐닉하는 것입니다. 쾌락에 맛 들여 그것만을 추구하다 보면 본래의 의미는 퇴색하고, 탐욕을 부리다 결국 파멸로 이어지고 맙니다. 식욕의 쾌락만을 추구하면 과식과 탐식을 하게 되고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맛집을 찾아다니며 더 맛있는 음식을 추구하다 보면 내가 살기 위해 먹는지 먹으려고 사는지도 모를 지경에 빠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탐식은 지구 반대편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기아와 죽음, 심각한 환경 파괴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절제되지 않은 성욕은 불륜, 간음, 강간 등의 범죄로 이어지며 인간 존엄성을 파탄내기도 합니다. 뉴스의 태반이 치정 사건이라는 점은 우리를 안타깝게 합니다. 수면이나 쉬고 싶은 욕망은 우리를 지나친 나태함과 게으름에 빠지게 합니다. 유희에 대한 욕망은 쾌락에 대한 중독을 일으킵니다. 술, 오락, 도박 등에 중독되어 삶을 피폐하게 하고 자신을 망가뜨립니다.

 

쾌락은 마치 늪과 같습니다. 쾌락을 만났을 때, 그 위를 가볍게 지나가지 않으면 거기 빠져들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욕망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입니다.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절제(節制)’입니다. 절제는 정도를 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할 수 있는 힘입니다. 내가 나의 몸, 내 삶의 주인임을 드러내 주는 것이 바로 절제입니다. 절제는 한자로 마디 절(節)과 제어할 제(制)를 씁니다. 먼저 ‘절(節)’자를 살펴보면, 대나무의 마디라는 뜻이 있습니다. 대나무는 몸통이 그리 굵지 않지만 곧게 뻗어 올라 몇십 미터까지 자랍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높이 자라면서도 휘거나 쪼개지지 않는 원리는 대나무의 마디에 있습니다. 일정 길이로 자라면 가로로 마디가 생겨 조절해 줍니다. 끝없이 길게만 나아가는 것을 조절해 주는 힘이 마디에 있는 것입니다. ‘제(制)’자는 무성한 나무(未)에 칼(刀)을 대어 나무를 정리해 주는 모양을 가진 한자입니다. 나무는 제때 전지를 해 줘야 모양도 예쁘고 잘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욕망이 멋대로 뻗어 나가 내 삶을 파멸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힘이 바로 ‘절제’입니다. 공자는 말했습니다. “절제로 단속하면서 잘못되는 이는(길을 잃어버리는 이는) 드물다.”1) 욕망이 절제로 잘 통제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맞갖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절제되지 않은 욕망은 결국 나의 몸과 정신을 망치고, 이웃과의 관계를 해치며, 우리를 둘러 싼 생태 환경마저 파괴시키고 말 것입니다.

 

온전한 절제는 인간의 힘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도 성령의 열매 가운데 마지막 덕목으로 절제를 이야기합니다.(갈라 5,23 참조) 이 절제의 영을 주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무더운 여름, 우리 모두 작은 데서부터 절제의 삶을 실천하여 욕망에서 자유로운 자신을 느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2티모 1, 7)

 

1) 『논어(論語)』, 「이인(里仁)편」, 23. “以約失之者, 鮮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