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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動)하다
달력


글 김관호 리카르도 신부 | 영천성당보좌

하루하루가 지나 한 주가 되고, 한 주는 곧 한 달이 된다. 당연한 것이 낯설게 다가올 때가 종종 있다.

 

새로운 본당에 짐을 풀고 현관문에 달력을 달았다. 방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많은 일정이 벌어지는 공적인 공간으로 나아가며, 나를 다잡는 마음으로 달력을 걸어 놨다. 새로운 곳에 어울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마음속 다짐이었다.

 

수없이 현관을 왔다 갔다 하며 달력을 봤을 텐데 여전히 현관문의 달력은 1월이다. 시간이 멈춰 버린 달력을 보며 방에서만 드러나는 나의 게으른 모습과 본당에 적응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여러 가지 시도로 참 바쁜 나날을 보낸 지난 몇 개월의 시간이 겹쳐졌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변화를 인정하고 수긍하면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워 나름의 고민과 공상의 시간도 있았다. 또한 나로 인한 변화 속에서 만족과 만족만큼의 안타까움과 속상함, 그리고 수긍의 시간도 있었다.

 

‘아직도’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시간이 있다. 지지부진한 일과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어려움이 시간을 더디게 만드는 그런 시간을 겪는다. 매초마다 움직이는 초침이 두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그런 시간이 있다.

 

한편 ‘벌써’라는 말로도 표현될 수 없는 바쁘거나 즐거운 시간도 있다. 시침이 흘러가는 것마저도 인지할 수 없는 그런 시간을 겪으면서 분주한 일상에 보람을, 행복한 시간에 기쁨을 느끼곤 한다.

 

여전히 1월에 머물러 있는 달력을 보면서 이 시간이 ‘아직도’인지 ‘벌써’인지 생각한다. ‘아직도’의 시간이 영 없었던 것만은 아니지만 많은 시간이 ‘벌써’라는 말로 기억된다. 달력을 넘길 여유조차 없을 만큼 바쁘기도 했지만 때론 달력을 넘기는 것조차 귀찮을 만큼 게으름을 피운 시간도 있다.

 

시간이 쌓인 삶은 ‘벌써’와 ‘아직도’의 기계적인 평등의 결과는 아니다. 한 치의 오차없이 반으로 나눠진 것이 아니라 ‘벌써’와 같은 시간이 가득한 속에서 ‘아직도’의 시간이 더해지거나 ‘아직도’와 같은 지지부진하고 힘든 시간 속에서 이 힘듦을 잠시 놓아버릴 수 있는 분주함과 기쁨의 ‘벌써’의 시간을 통해 우리의 삶은 만들어져 가고 있다.

 

지금도 현관문의 달력은 1월이다. 게으르고 분주한 탓으로 여전히 넘기지 못하고 있다. 달력을 넘기고 넘겨 지금의 시간으로 건너갈까 싶지만 글을 마무리하며 괜한 오기가 생겼다. 새로운 달력을 달, 2024년의 어느 그날까지 달력의 시간을 여전히 2023년의 1월에 두고 싶어졌다. 2024년의 그 언젠가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달력을 바꿀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벌써’와 ‘아직도’를 마주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