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카리타스 사람들
삼복을 보내며


글 전화진 토비아|카리타스보호작업장 원장

삼복더위. 요즘 누가 절기를 쇠냐고, 네이버 로고가 알려 주지 않으면 그 의미조차 잊어버리는 그런 시대입니다. 날이 더운 건 그제나 오늘이나 마찬가지, 무더운 공장이지만 힘내서 일해 보자는 마음을 담아 닭 두 마리를 잡아 왔습니다.

물에 적신 닭보다 기름에 빠진 닭을 좋아합니다. 그걸 모를 리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눠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비용입니다. 그래서 여럿이 함께일 때는 수육보다는 국물입니다. 고무줄같이 질긴 살을 풀어내기 위해, 또 깊은 육수를 우려 내기 위해 새벽부터 끓였습니다. 육수가 줄어 물을 넣다 보니 싱거워져 소금을 더하고 마법의 가루도 뿌렸지만 점점 본연의 맛을 잃어 작전을 바꾸었습니다. 건더기를 늘리기 위해 제철 감자와 수제비를 추가하자 맛이 살아나고 양이 늘었습니다.

완성된 음식을 한 그릇씩 나눕니다. 메뉴가 더해져 배식대가 분주합니다. 맛은 두 번째, 분위기가 먼저 띄워졌습니다. 감자국이냐 닭국이냐?

“한 그릇 더!”를 외치는 이가 나옵니다. 밥해 주는 이도 흐뭇합니다. 맛보다는 평소와 다른 별미로 남기지 않고 빈 그릇을 내놓습니다. 살을 잘 발라내는 이의 앞에는 뼈만 소복이 남았습니다. 부족한 양에 그는 포만감을 만끽했다지요. 기적을 부려볼 생각은 아니었으나 노계 두 마리로 서른 명 남짓 배불리(?) 먹고 뼈를 남겼습니다.

미련할 만큼 일상이 전부인 이들. 우리 근로자들은 경험하지 않은 것에는 점수를 주지 않습니다. “뭘 하고 싶어요?”라고 매번 묻지만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입니다. ‘자기 주도적인 삶’, 당연해 보이지만 발달장애인에게는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지난 이야기를 훑어보는데 새로운 것은 없어 보입니다. 물론 지리적, 시간적 한계가 있기에 그럴 수 있지만 선생님들 기대와는 달라 보입니다. 캠프나 여행은 특별하지만 어쩌다 한번이기에 일상 속에서 소소하지만 특별한 경험을 맛볼 수 있기를 항상 바랍니다.

무더운 여름날 소소하지만 특별한 일상을 만들기 위해 네이버 해피빈 모금함을 개설했습니다. 우리의 일은 여름 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공장이라 쾌적한 사무실과 달리 혹한기와 혹서기에 고생을 합니다. 무더운 여름을 견디기 위한 작은 마음으로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치킨 두세 마리를 살 수 있는 후원금이 들어왔습니다. 70명이 나눌 다른 방법을 고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모금함이 사라졌습니다. 목표 금액이 달성되어 자동 종료된 것입니다. 참여 내역을 열었습니다. ‘로미, 당신은 누구십니까?’ 미미한 모금에 소중한 후원금을 쾌척한 기부자님이 있었습니다. 무모한 요청에 응답해 주신 모든 기부자님께 감사드립니다.

곧 휴가 기간에 들어 갑니다. 일을 주는 원청업체가 쉬면 따라서 쉬어 갑니다. 직장인이면 누구나 기다리는 여름 휴가. 이 시간을 다들 기대하고 있습니다. 휴가 잘 다녀오세요. 가족과 즐기는 시간, 일할 시간에 침대에서 뒹굴 수 있는 시간, 때로는 지루하고 답답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시간이 끝나면 뜻밖의 잔칫상에 초대하겠습니다. 그렇다고 기대는 마세요. 저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