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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1년을 지내며
- 2015년 6월 23일부터 2016년 6월 23일


글 김형호 미카엘 신부 |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선교사목

 

자급자족: 7월 4일

작은 좌판을 두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집 수 만큼이다. 어려운 형편에 웬만하면 자급자족해야 하고 도시 생활에선 농지가 없으니 각자가 마련할 수 있는 작은 물건들을 갖다 놓고 서로서로 사고판다. 밤알만큼 소금을 담아서 파는가 하면, 삶은 땅콩을 한 움큼씩 팔기도 한다. 주식인 고조(마뇩)도 팔고 보조주식인 쌀도 주먹만큼 담아 판다. 돈이 없으니 있는 만큼 사서 먹으며 서로 자급자족하는 모습이 정겹기도 하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그래도 10~20명이 되는 가족과 이웃이 모여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

 

결혼식: 7월 4일

혼배미사가 있었다. 화동들과 친지, 친구들과 이웃들이 함께 축하하는 모습은 우리와 다를 바 없었지만 두 가지 모습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첫째, 반지를 끼워주는 예식이 끝나고 난 뒤 제대 위에 물과 음료수(오렌지음료)가 올라왔다. 더워서 한 잔 하려나 했더니, 투명한 컵에 남자(신랑)가 물을 반 넣고 여자(신부)가 음료수를 채워서 서로 반씩 나눠 마셨다. 혼배 후 본당 신부님에게 물어보니 물에 음료수가 섞이듯, 둘이 한 몸이 되고 서로 헤어질 수 없는 한 몸이 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역교회 전통예식이라고 한다. 섞인 물과 음료수는 다시 가를 수 없듯이….

둘째, 성체분배를 혼배성사자가 했다. 먼저 사제가 성체와 성혈을 나눠주고 난 뒤, 갑자기 성합을 신랑, 신부에게 건네주었다. 성합을 건네받은 그들은 하객인 교우들에게 성체분배를 하였다. 이 또한 평생에 한 번 있을 수 있는 성체분배에 대한 경험, 성체처럼 서로 나누며 살라는 의미를 몸소 체험케 하는 행위란다. 9시 30분에 시작한 미사는 한참 더워진 12시 30분에야 끝이 났다.

 

수명이 다할 때까지: 7월 6일

여기선 쓸 수 있는 것을 버리는 일이 없다. 선진국(물질이 풍요한 나라)이라고 불리는 나라에서 폐기하거나 내수에 팔리지 않는 중고차들이 돌아다닌다. 고장 나면 부품이 같은 차의 폐차된 것을 갈아 끼운다. 중고차에 새 부품을 교체하는 일은 거의 없다. 타이어는 튜브타이어가 대부분이다. 자주 펑크 나지만 때우는데 한화로 1,000원이면 된다. 인건비가 싸니 사람의 노동으로 비용을 줄인다.

점심을 먹고 거리를 걷다가 휴대폰 수리점에 들렀다. 1평반 남짓한 나무집에 수명이 다한 휴대폰(10~20년 된)이 100여 개 있었다. 누군가 고장 난 휴대폰을 들고 오면 폐기된 휴대폰의 쓸 수 있는 부품을 교체하는 식으로 고친다. 전기가 없을 땐 깡통에 숯불을 피워 인두를 데우고 중고부품을 교체 장착한다. 휴대폰 하나 고치는 비용은 한화로 2,600원, 고치는데 1시간도 더 걸렸는데…. 근데 여기선 작은 PET 콜라 하나(500cc)가 1,200원이다. 언제부턴가 완전히 수명이 다할 때까지 무엇을 써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소비가 경제 순환의 미덕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생계에 꼭 필요치 않은 소비나 교체, 여분의 것들은 미안함으로 다가온다. 한편 이렇게 수명이 다할 때까지 물건들은 돌려쓰지만 정작 자기들의 몸은 쉽게 포기한다. 결코 그렇지 않겠지만 나에겐 그렇게 보인다. 아프면 참고 민간요법 정도로 버티고 기도하며 낫기만을 기다린다.

  

나무사냥: 7월 10일

교구청 중간 신학교에서 연중사제피정을 하다가 산책을 했다. 교구청 마당을 거니는데 한 아이가 긴 대나무 같은 것을 들고 여러 명의 동생들과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대나무 끝에 갈고리를 만들어 끈으로 고정하고 있었다. 잠시 동행하게 되어 “뭐냐?”고 물으니, 상고어로 뭐라고 하는데 “나무(keke)”라는 말만 알아들었다. 나무로 어떤 놀이를 하려나보다 생각했다. 그러고는 각자의 길을 걸었다. 교구청을 한 바퀴 돌아갈 무렵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났다. 나랑 말했던 아이는 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고, 동생들은 오빠(형)가 떨어뜨려 주는 삭정이를 줍고 있었다. 나무로 나무 사냥을…. 그제야 나는 조금 전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밥을 짓기 위한 땔감을 온 가족이 함께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많이 했냐고 물으니 오늘은 많이 하지 못했단다. 생계를 위한 온 가족의 몸부림을 나는 놀이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얼굴엔 힘겨움이 아닌, 오빠(형)가 떨어뜨려주는 나무를 주우며 환하게 웃고 있었고 나무 위에 있는 그는 떨어지는 삭정이에 동생들이 다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진지하게 나무 사냥을 하고 있었다.

 

밤새 내린 비: 7월 11일

여긴 지금 우기다. 우기에는 한국의 소나기 같은 비가 자주 내린다. 갑자기 바람이 불고 천둥, 번개가 동반하며 세차게 비를 뿌린다. 주로 오후에 내리는데 어제는 오후 내내 덥다가 밤에 내렸다. 당연히 비가 내리고 나면 조금 시원해지고 어느 때는 추위를 느낄 정도로 선선해진다. 새벽녘엔 조금 선득했었는데 피정 중이라 이불을 챙기지 못해 가져 온 긴 옷과 양말을 신으며 많이 시원한 새벽을 기분 좋게 보냈다. 아침에 잠시 우방기 강변을 거니는데 큰 나무 밑에 노숙하는 두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비닐을 덮어쓰고 있었다. 팔 위로 닭살이 돋았으며 으스스 떨고 있었다. 많이 시원하게 느꼈던 간밤의 비에 그들의 몸은 다 젖었고 그로 인해 밤새 떨며 노숙도 제대로 못한 것이다. 나에게는 참 고마운 비였는데. 콩고와 중아공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우방기 강, 많은 사람들이 생계(작은 교역)를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풍경 앞에 놓인 두 사람. 아련함으로 부자와 빈자들의 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귀족생활: 7월 16일

요를 빨았다. 방이 항상 외부 공기와 뚫려 있고 먼지가 많아 누런 황토물이 많이 나왔다. 익숙해져야 하지만 이런 요를 깔고 잤구나 생각하니 좀 불편해진다. 하지만 불편해 하는 만큼 힘들어지기에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방에 쥐도 다니고 저녁이 되면 모기장을 제외하곤 모기랑 동거해야 한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바로 땀이 나지만 식힐 만한 에어컨도 없을 뿐더러 선풍기도 전기가 있는 시간만 사용할 수 있는 생활. 하지만 그래도 내 방이고 익숙해져야 하는 삶이라는 걸 이제는 몸이 더 잘 알고 있다.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이만하면 천국이다. 한국에 비하여 열악하지만 당연한 듯 받아들이면 여기선 나름 귀족생활임을 알 수 있다. 혼자 쓰는 방이 있고,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고, 물을 떠다가 내려야 하지만 화장실도 있고, 아프면 먹을 수 있는 상비약 또한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황톳물이 섞여 나오긴 하지만 수도가 있고 적어도 하루 8시간쯤 전기가 들어오는 집. 이 정도면 이 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평생 못 살아보는 집이다. 당연히 지금의 내 삶은 그들에겐 꿈의 삶인 거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불평보다 꽤나 많이 누리고 있음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난 여기선 귀족이다. 귀족으로서의 자부심과 사회적 책무, 노블레스 오블리주. 어쩌면 우리는 하늘나라를 꿈꾸며 살지만 힘껏 살아온 어제와 애써 사는 오늘이 하늘나라임을 모르고 살았던 것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숯불요리: 7월 17일

여긴 가스가 없다. 특별한 부잣집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집에서 나무와 숯으로 요리를 한다. 나무는 풍부하다. 숯을 살 돈도 없거나 그마저 아껴야 하는 사람들은 나무를 구해서 요리를 한다. 우리 집은 모든 요리를 숯으로 한다. 나름 부자인 셈이다. 숯불을 피워 아침 차를 위한 물을 끓여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이어 마뇩(우리나라 쌀과 같은 주식)을 짓고 밥(쌀은 여기선 부식이다. 왜냐하면 마뇩은 그것만 먹어도 되는데 밥은 무엇과 함께 먹어야 하니까…라고 나름 해석)도 하고 나물도 삶고 물고기나 닭고기, 쇠고기 등을 요리한다. 모든 요리를 숯불구이로 해서 먹는다. 저장할 수 없으니 모든 음식을 갓지어 먹는다. 그러니 별것 없어도 맛있다. 다만 요리가 다양하진 않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1식 1~2찬으로 2~3일 패턴으로 계속 돌아가는 식이다. 나름 부잣집임에도 불구하고 아침엔 바게트 빵을 먹는다. 1개에 한화로 200~300원 하는데 반을 잘라서 먹는다. 가끔 계란을 넣거나 버터를 발라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 빵만 먹는다. 가루커피나 티백 홍차 한 잔과 함께. 프랑스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빵맛은 한국보다 훨씬 맛있다. 한 끼만 먹는 사람들 서리에서 세 끼를 다 먹으니 좀 미안하기도 한데 오늘은 점심으로 맛난 닭다리 숯불구이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기다려진다. 먹는 기쁨.

 

변화: 7월 23일

이곳에 온 지 한 달, 불과 30일이지만 변화된 것들이 많다.

· 이불을 개지 않는다. 거의 덮지 않으니 갤 필요가 없다.

· 냄새나지 않으면 겉옷은 계속 입는다. 손빨래해야 하니까.

· 방을 환기하지 않는다. 창에 구멍이 뚫려 있으니 자동이다.

· 전기가 고맙고 기다려진다. 하루에 8시간씩 시간을 달리하며 들어온다.

· 자동으로 물을 자주 마신다. 살기 위해서.

· 모기를 싫어하게 되었다. 하루에 여러 번 물리는데 많이 간지럽다.

· 아프리카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생각이 달라졌다. 적어도 여긴 생각보다 부지런하다.

· 상고어(중앙아프리카공화국 토속어)는 쉽다는 생각을 달리한다. 다의어가 엄청 많다.

· 하루 세 끼에 대한 고마움이 생겼다. 여긴 많은 사람들이 한 끼만 먹는다.

· 물에 대한 고마움이 생겼다. 씻을 때 최소한의 물만 쓴다.

· 한국은 여기 사람들이 상상도 못하는 하늘나라다. 정신없이 치열하게 살긴 하지만.

· 식사 때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 애쓴다. 생존본능.

·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전기 없는 밤에는 묵주 돌리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

· 방 거미줄은 절대로 걷지 않는다. 모기를 잡아주니까.

· 비가 많이 기다려진다. 더위를 식혀준다.

·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깬다. 일찍 자니까.

 

달리기: 7월 27일

달리려고 파리에서 운동화를 사왔는데 방에 고스란히 있다. 달리는 게 힘들다. 너무 덥기도 하고 주거 밀집지역이라 사람들이 너무 많다. 더군다나 뛰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한가하게 건강을 위한 달리기를 할 수 없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더위에 몸이 처지는 것 같고 고이 모셔져 있는 신발을 보니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어 달리기를 시작했다. 좁은 방에서 혼자 묵주를 들고 상고어 성모송과 주님의 기도를 벽에 붙여놓고 뛰었다. 러닝머신에서만 제자리 뛰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방에서 제자리 뛰기도 느낌이 괜찮았다. 운동 효과도 좋고…. 식사 후 묵주기도 5단 바치는 정도를 뛰었는데 기분이 상쾌하다. 분명 제자리 달리기를 했는데 마음은 온 우주를 다 돌아다녔다. 내년 이맘때쯤 예정대로 시골에서 장애인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되면 그들과 함께 신나게 달릴 것이다. 마음으로 눈빛으로 공감하며, 꿈을 향해 달리는 사람이 늘 행복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