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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이주민들의 고향에서...


글 이관홍 바오로 신부 | 가톨릭근로자회관 부관장

지난 11월 14일부터 18일까지 베트남을 다녀왔습니다. 휴양지로 유명한 다낭이나 절경으로 유명한 하롱베이도 아닌 이주민들의 고향 마을과 소수민족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은 쌀쌀한 겨울이지만 베트남은 초여름 날씨였습니다. 4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참 많은 것을 깨닫고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바로 음식 때문이었습니다. 나름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종종 베트남 사람들과 베트남 음식을 먹기도 하고 베트남 음식점에도 여러 번 가본 적이 있어서 음식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베트남 음식에는 빠지지 않는 ‘고수’라는 향신료가 있습니다. 베트남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 고수 향이 너무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소수 민족 마을에서도, 이주민 가정을 방문했을 때에도 환대의 의미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많은 음식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맛있게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이 예의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신나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식사 시간 내내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이주민이 아닌 잠시 방문한 외국인이었지만 저는 ‘고수’의 향을 맡으면서 한국에 있는 베트남 이주민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다가오는 ‘고수’의 향기 만큼이나 베트남 이주민들은 자신의 나라와 가족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트남의 여정에서 가장 먼저 방문했던 곳은 호치민에서 차량으로 5시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소수민족 마을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생활 여건이 어려운 소수 민족들의 신앙생활을 위해서 성전 건립을 지원해주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작은 시골 마을의 본당에 도착했는데 그 본당도 역시 건립 중에 있었습니다. 판자를 엮어서 만든 엄청나게 큰 본당이었고, 신자들도 2000명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신부님의 안내로 차를 타고 다시 40분 정도를 달려 깊은 산속으로 이동하니 본당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넓은 벌판에 대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보였고, 역시 판자를 엮어서 만든 공소가 보였습니다. 지붕에는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어서 비가 오면 금방이라도 빗물이 떨어질 듯 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접하는 신설 본당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생활여건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소수민족들은 손수 벽돌을 한 장 한 장 찍으면서 조금씩 하느님의 집을 건립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그들의 신앙심이 참 존경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필리핀에서도 가장 많은 해외이주민들의 고향인 ‘하딘’이었습니다. 그곳은 아주 작고 가난한 도시였습니다.

베트남의 다른 지역들은 기후가 쌀농사에 적합해서 이모작이 가능하지만 하딘 지역은 태풍 등의 자연재해가 많아서 일모작도 힘든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해서 전 세계로 젊은이들이 일을 하러 떠나는 지역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하딘’ 출신 이주민만 해도 700명이 넘고, 대구 가톨릭 베트남 공동체에는 약 100명이 넘는 하딘 출신 이주민들이 있습니다. 전임 베트남 공동체 회장의 집을 방문했는데, 놀랍게도 본당을 중심으로 앞집, 옆집, 뒷집 모두 대구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민들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베트남 이주민들이 SNS를 통해 쉴 새 없이 제게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자기 집은 본당 앞집이고, 공동체 회장 집 옆집이 자신의 집이고 가족들을 만나 달라고, 그리고 본당이 공사 중인데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전임 대구가톨릭 베트남공동체 회장인 베드로 형제의 집과 하딘 본당을 방문하고, 베드로 형제의 형님이 본당 신부로 사목하고 있는 왕빈 본당에서 하루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본당에서 저녁미사를 봉헌하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500명이 넘는 신자들이 미사에 참례했고, 그 중 200명 이상이 어린이들이었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늘 그 정도의 신자들이 매일 미사에 참례한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아침 미사는 새벽 4시 30분에 봉헌됨에도 불구하고 수백 명의 신자들이 참례한다고 했습니다. 베트남에서 여러 본당을 방문하면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조금은 부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베트남에는 아직까지 온전한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정부에서 사제 서품자 수를 통제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외국인 선교사의 활동이 금지되어 있고, 정부에서는 신자들 사이에 항상 스파이를 심어놓고 교회를 철저하게 감시한다고 하였습니다. 베트남 인구는 9000만 명 정도이고 그중에 약 10%가 가톨릭 신자입니다. 그 10%의 신자들 모두 종교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지도 못하고, 여러 가지 사회적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대를 이어 한결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박해와 시련이 교회를 더욱 성장시키고 살아있게 한다는 말이 정말 크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한국에 있는 베트남 신자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맞이한 주일, 가톨릭근로자회관과 대안성당을 찾는 베트남 사람들이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들의 삶을, 그들의 신앙을 직접 보고 왔기에 예전보다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때로는 이주민들이 우리의 거울이 되고 본보기가 됩니다. 이주민들은 ‘부담’이 아니라 우리를 풍성하게 해준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이주민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진정한 형제자매로 받아들여 한국 사회도, 우리 교회도 풍성해지기를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