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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회 111곳 성지순례』, 그 길 위에서
하느님,당신 뜻대로 살도록 하소서
- 성지순례 목적과 바람


글 김윤자 안젤라 | 남산성당

2016년 5월 22일 삼위일체 대축일 - 순례를 앞두고

2014년 3월 26일 한국천주교회 111곳의 성지순례를 시작했는데 미적미적하다 다시 2016년 5월 23일 대구대교구 선산성당 세 분의 어르신들(김정여 안나, 박환옥 헬레나, 김옥수 율리안나)과 미루어 두었던 111곳 성지순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순례를 더욱 적극적으로 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은퇴 후 대구 남산동과 선산의 작은 오두막을 오고 가는 동안 이뤄진 일이기도 했다. 더욱이 세 분 중 한 분(김정여 안나)은 내가 하느님의 품에서 하느님만을 바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신자생활의 기본 틀을 잡아주신 아주 고마운 분이기도 하다. 이번 성지순례를 하면서 아마도 하느님께서 나로 하여금 그분에게서 받은 은혜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나마 성지순례를 통해 갚으라는 뜻일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또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 “내 모든 삶은 하느님의 것”이라는 귀한 가르침을 따라 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비우고 가진 것을 나누며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도 함께했다.

‘좋으신 하느님, 이제 시작입니다. 늘 저희와 함께 해 주십시오. 당신의 입김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떼어 놓을 수 없는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좋으신 하느님, 도와주십시오. 좋으신 하느님, 고맙습니다. 좋으신 하느님, 제가 이렇게 살아서 하느님, 당신을 찬미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지순례를 시작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좋으신 하느님, 저를 이렇게까지 사랑해 주셔서 참으로 행복합니다. 좋으신 하느님, 기쁜 마음으로 성지순례를 하렵니다.’

 

2016년 5월 23일 월요일 - 화창하게 맑은 날

2014년도에 한국천주교회 111곳 성지순례를 하다가 중도에 포기를 했는데 세 분의 어르신과 다시 2016년 5월 23일, 대구대교구에서부터 시작하기 위해 오전 9시 선산성당에서 만나 출발했다. 세 분 어르신들이 순례 책자를 갖고 있지 않아서 『한국천주교회 111곳 성지순례』 책자를 구입한 다음 교구청 내에 있는 성직자 묘지에 들러 간단한 기도를 바치고 성모당1) 11시 미사를 시작으로 성지순례를 시작했다. 11시 미사 후, 교구청 청사 바로 밑에 있는 서상돈(아우구스티노) 동상 앞 벤치에 둘러앉아 어르신들이 준비해온 점심을 기쁜 마음으로 먹고 주교좌 계산성당2)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자주 다니던 주교좌 계산성당을 성지순례로 찾는다는 것도 참 뜻 깊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성체조배를 드리고 각자 개인 기도를 드린 후 관덕정 순교성지3)로 갔다. 늘 집 앞에 있는 성지라서 아무 생각 없이 왔다 갔다 하던 곳이지만 성지로 다시 순례를 하니 미안한 마음과 건성건성 신자 생활하는 기분이 들어서 반성을 하면서 기도를 드렸다.

관덕정을 떠나 복자성당4)으로 출발했다. 내가 세례성사를 받았고, 견진성사도 받았던 성지라서 아주 마음이 푸근했다. 성당 안에 모셔진 선조들의 유골 앞에서 모두 깊이 기도하며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 후, 성당 벽에 붙어 있는 시복시성이 되기를 기다리시는 순교자들의 사진 앞에서 개인 묵상을 마친 후 한티 순교성지5)로 떠났다. 참 많이도 드나들던 성지, 그저 근무하면서 볼일을 본다고 오고가던 성지였는데 차분한 마음으로 성지를 둘러보면서 십자가의 길을 시작했다. 특이하게 세 단계의 순례길로 나뉘어졌는데, 묘지 30기까지만 순례하기로 하고 십자가의 길을 시작했다. 31기부터 37기까지는 인내의 순례길이라니 다음에 마음먹고 다시 시도해 보리라. 그리고 다른 순교자들을 모셔 놓은 30기 묘비 앞에서는 깊이 감사드리면서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천천히 한티 순교성지를 내려오는데 마음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사는 곳이 선산이어서 집으로 오는 길에 신나무골6)에 들렀다. 신나무골은 대구대교구 초대 신부님이셨던 김보록(로베르) 신부님이 활동하셨던 대구대교구의 첫 본당이었기 때문에 많이 가긴 했지만 새삼 성지순례로 찾으니 더욱 좋았다. 또 신나무골 성지가 자비의 희년 성지라서 더 좋았다. 오늘의 성지순례를 마치고 해가 뉘엿뉘엿 지려는 시간에 성지 앞마당 주차장에 모여 감사한 마음으로 남은 음식들로 저녁을 먹고 천천히 선산으로 돌아왔다.

○ 1회차 : 성모당 → 주교좌 계산성당 → 관덕정 순교성지 → 복자성당 → 한티 순교성지 → 신나무골

 

2016년 5월 30일 월요일 - 아주 맑았지만 한낮의 기온은 섭씨 30도를 넘고…

오전 8시 40분 선산성당에서 출발하여 첫 번째로 부산교구 소속의 김범우 순교자 성지7)로 향했다. 산속 깊이 들어가 있는 대구대교구의 한티 순교성지와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거기에도 성모동굴성당이 있었다. 물론 대구대교구의 성모동굴과는 다르게 지하동굴이었다. 11시 미사에 참례하기로 해서 10시 20분 조금 지나서 도착했는데, 그곳에 계신 김진영(토비아) 씨를 만나 성지순례 조언을 잘 들었다. 월요일인데도 미사가 있었다. 미사 시간에 신부님께서 모든 것을 다 내어 놓고 자신의 몸까지 내어 놓은 김범우 순교자의 삶에 대한 강론에 자기와 함께 있는 가족이나 어느 누구에게 사랑을 베풀고 나누는 참 사랑의 삶을 가슴이 찡할 정도로 훌륭히 말씀해 주셨다.

 

점심식사 후에 우리는 명례8)로 향했는데 가슴이 아련하도록 아름다운 성지였다. 얼마나 호젓하고 편안한지 성당 양쪽 문을 열어젖히고 기도도 하고 묵상도 하고 십자가의 길도 하면서 편안함을 만끽하고 온 성지였다. 명례성지를 벗어나 복자 신석복 묘9)로 이동하였는데, 묘소가 마산교구 진영성당공원 묘지였다. 날씨가 얼마나 뜨겁던지, 우리가 성지순례를 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너무 따가운 낮 기온에 쩔쩔 매면서 묘소로 가서 기도를 드렸다. 묘비를 보면서 말구라는, 요즘에는 사용하지 않는 옛날의 본명에 그 뜨겁던 기온도 다 잊어버리고 기도와 묵상을 드렸다. 다시 복자 박대식 묘10)로 이동을 하였는데, 가는 길이 어찌나 어렵던지 본당에 전화를 해서 어렵사리 찾은 묘소로 가는 길은 꼭 옛날의 대구대교구 한티 순교성지로 가는 길과 같아서 마치 고향 묘소로 가는 기분이었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오랫동안 기도도 하고 묵상도 하고 또 순교자 선조께는 죄송하지만 고사리도 꺾으면서 천천히 순례를 하게 되었다. 복자 박대식 묘를 순례하고 형제 순교자 묘11)로 이동하였다. 문중의 반대로 이분들의 묘소 쓸 곳이 마땅찮아지자 이웃의 배씨 집안에서 자신의 집 언덕에 묻어주고 묘소관리도 해 왔다고 한다. 묘소 바로 밑에는 돌아가신 배문환 신부님의 생가를 고쳐 아주 아름답게 꾸며 놓아 순례하러 간 우리들은 마치 소풍 나온 기분으로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 2회차 : 김범우 순교자 성지 → 명례성지 → 복자 신석복 묘 → 복자 박대식 묘 → 형제 순교자 묘

 

2016년 6월 13일 월요일 - 하루 종일 흐리면서 산속에는 안개비가 가끔씩 내린 시원했던 날

아침 8시 30분 선산성당을 출발해서 진목정12)에 다다랐다. 작은 공소인데도 참 정겨운 느낌을 주었다. 진목정 공소에서 가묘로 올라가는 길이 너무 가팔랐지만 가는 길에 대나무 숲과 개망초 꽃들이 우리들을 반겨주는 기분이었다. 진목정을 나와서 언양 살티공소13)로 향했다. 살티공소는 35년 전에 아주 많이 갔었는데, 그때는 공소만 있었고 살티순교성지는 꾸며지지 않았었는데 이젠 너무나도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살티공소를 나와서 죽림굴(대재공소)14)로 향했다. 가는 길이 너무 험해서 중간에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예전 순교자들의 마음을 기리며 죽림굴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작은 굴속에서 어떻게 100명이나 되는 신자들이 미사를 봉헌하면서 지냈는지, 또 굴 안은 얼마나 습하던지 그래도 정말 좋은 성지순례를 하게 되었다. 아쉬운 점은 성지순례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신자들을 고려해서 가는 도중에 순례자의 길 표지를 가끔씩 만들어 준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욕심도 버려야 하는 건데’ 하는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니까!

 

죽림굴을 나와 언양성당과 신앙유물전시관15)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성지도 살티공소를 다니던 30년 전의 생각으로 새롭게 묵상을 하면서 묘지와 성모동굴 유물 전시관을 돌아보았다. 월요일이라 유물전시관은 문을 닫았지만 다행히 그곳 사무실의 직원을 만나서 이것저것 설명을 들을 수 있어 기뻤다. 시간은 벌써 오후 6시를 바라보는 뉘엿뉘엿한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다시 울산 병영장대16)로 발길을 돌렸다. 가는 길이 조금 어렵긴 했지만 그곳이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순교 터여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지금은 그렇게 정리된 아름다운 성당 터이지만 그 옛날에는 바로 옆이 개울 터라니 얼마나 처참한 처형 터였을지 가슴이 서늘하기까지 했다. 성당 안에 들어가니 마침 떼제 기도모임을 하려는 젊은이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서 준비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 3회차 : 살티공소 → 죽림굴(대재공소) → 언양성당과 신앙유물전시관 → 병영장대

  

2016년 6월 20일 월요일 - 오전에 햇볕이 따갑다가 점차 흐려지면서 거제도에는 장대비가 내렸다.

오전 8시 선산성당에서 출발하여 9시 58분에 부산 오륜대 순교자성지17) 에 도착하니 11시에 미사가 있다 하여 천천히 십자가의 길을 마치고 내려와서 미사에 참례했다. 미사시간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성가대도 대단히 열성적으로 해 주어서 더 좋았다. 순교자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미사도 드리고 성지순례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곧이어 우리는 수영장대18)에 도착했다. 거기서 대단한 가족의 순교를 돌아 볼 수 있었다. 일가족이 순교한 것이다. 수영장대의 순례를 마치고 복자 구한선 묘19)로 순례의 발길을 옮겼는데 구한선 타대오는 23세의 나이로 순교를 했다고 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애틋하고 가슴 아린 순교였다.

복자 구한선 묘의 순례를 마치고 복자 정찬문 묘20) 순례지로 갔다. 정찬문 안토니오는 순교를 한 뒤에 머리가 없이 시신만 거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십자가도 처음 보는 정말 특이한, 뼈만 있는 십자가였다. 복자 정찬문 묘 순례를 한 후 거제도에 있는 복자 윤봉문 요셉 성지21) 순례지로 향했는데 가는 내내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속이었지만 묘소로 오르는 길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대나무 숲으로 조성되어 있어서 빗속에서의 순례도 참 좋았다. 이곳 성지는 하루 정도 여유를 갖고 묵상과 피정을 하며 지내면 정말 좋겠다고 함께 순례한 분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입을 모았다. 순례를 하면서 우리는 교구 순교자들의 행적에서 그 교구 특유의 모습도 같이 보고 느낄 수 있어 그 또한 새로운 발견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 4회차 : 오륜대 순교자성지 → 수영장대 → 복자 구한선 묘 → 복자 정찬문 묘 → 복자 윤봉문 요셉 성지

 

1) 대구대교구 제1주보이신 루르드 성모님을 모신 곳. p.138

2) 대구대교구 100주년 기념 범어대성당과 함께 대구대교구의 주교좌성당. p.132

3) 대구대교구 제2주보이신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 p.134

4) 대구대교구 소속 성당으로 병인박해 때 순교한 세 분의 묘소가 있다. p.136

5) 지금까지 확인된 37기의 순교자들이 묻혀 계시고 순례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p.144

6) 대구 지역의 첫 본당 터. p.140

7) 부산교구 소속 성모동굴성당과 김범우의 묘가 있는 곳. p.146

8) 마산교구 첫 번째 본당이 설립된 곳. p.168

9) 진영성당 공원묘지. p.174

10) 마산교구 소속. p.172

11) 창녕 조씨 가문의 형제 묘소. p.160

12) 대구대교구 소속 성지. p.142

13) 부산교구 소속 성지. p.150

14) 부산교구 소속 성지. p.158

15) 부산교구 소속 성지. p.154

16) 부산교구 소속 성지. p.148

17) 부산교구 소속 성지. p.156

18) 부산교구 소속 성지. p.152

19) 마산교구 소속 성지. p.170

20) 마산교구 소속 성지. p.178

21) 마산교구 소속 성지. p.176

 

* 이번 호부터 새롭게 성지순례이야기를 써주실 김윤자 님은 1982년부터 2012년까지 아름다운 인생터 대구가톨릭대학교 대신학원에서 행복하게 근무하다 정년퇴직 후에는 성지순례도 하면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