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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이별의 순간을 함께하며…


글 이관홍 바오로 신부 | 가톨릭근로자회관 관장

이주민들의 여러 가지 삶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자주 떠오르는 시 구절이 있습니다.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입니다. 몇 구절을 옮겨보면,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이주민들의 대부분은 가난 때문에 이주를 선택합니다. 가난 때문에 가족을 등지고 고국을 그리워하며 온갖 설움을 이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가난하지만, 그래서 이주를 선택하지만 그 여정에서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집니다. 돈을 벌려고 한국에 왔으니 그저 돈만 많이 벌어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민들의 가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특히나 미등록 체류자(불법 체류자)들의 가정은 자녀 교육에서부터 시작해서 부모들의 체류자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늘 불안함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들의 불안함은 직접 겪어 보지 않는다면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얼마 전 불법 체류자 단속에서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필리핀, 베트남 노동자 17명이 체포되어 고국으로 추방을 당했습니다. 필리핀 노동자 2명은 한국에서 필리핀 여성 노동자와 결혼을 하고 아기까지 있는 가장들이었습니다. 아기 엄마들 역시 불법 체류자였고 아빠들과 같은 공장에 일하고 있었지만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있었기 때문에 체포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불법 체류자인 아기 엄마들은 출입국 사무소에 체포되어 있는 아기 아빠들의 면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엄마들을 대신해서 아빠들의 짐을 챙겨서 근로자회관 직원들과 함께 면회를 갔습니다. 아내와 아기의 안부를 물으며 아빠들은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족들과 헤어지기 싫다고, 다른 방법이 없냐고 끊임없이 물어보는 아빠들 앞에서 저는 무기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면회가 끝날 무렵 그들에게 강복을 줬습니다. 유리벽과 철장을 사이에 두고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고 강복을 받는 그들의 모습에 저도 울컥하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엄마나 아빠 중 한 명은 한국에서 일을 해야만 고국의 친척들과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에 결국 아기 엄마들은 한국에 남아서 일을 하기로 하고, 아기들은 아빠들이 강제 추방을 당할 때 함께 보내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갓난아기들과 이별해야 하는 엄마들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가족들의 생계를 한국에 있는 아기 엄마들에게 맡기고 갓난아기를 안고 필리핀으로 돌아가는 아빠들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아빠들이 한국에서 추방되는 날이 결정되자 근로자회관 직원들과 저는 더 초조하고 불안해졌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이별을 함께해야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아빠들이 한국에서 추방되는 날 오후, 아기 엄마들은 아기를 데리고 근로자회관으로 왔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엄마들은 말이 없었습니다. 공항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공항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아기 엄마들은 공항으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차안에서 마지막으로 아기들의 기저귀를 갈아 주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장난을 치며 공항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유난히 슬프게 보였습니다. 아기들을 안고 아빠들이 대기하고 있는 공항 출입국 사무소로 향했습니다. 아기들은 각자 아빠에게 달려가 안겼습니다. 하지만 아빠들은 팔을 벌려 아기들을 편안하게 안아줄 수 없었습니다. 아빠들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엄마들은 아빠와 아기가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공항 내부로 들어왔습니다. 엄마들은 가까이 다가가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한 손에는 수갑을 차고 한 손에는 아이 손을 잡고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아빠와 아기의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며 말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비행기가 떠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계속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가난하다고 해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비록 한국에 합법적으로 거주할 자격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 손에 수갑을 차고 아이를 안아주던 두 아빠의 모습과 생이별을 슬퍼하는 엄마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부디 하느님께서 그들의 가정을, 모든 이주민들의 가정을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