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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회 111곳 성지순례』, 그 길 위에서
하느님, 당신 뜻대로 살도록 하소서 (3화)


글 김윤자 안젤라 | 남산성당

2016년 7월 18일 월요일- 장마철이었지만 날씨가 너무 좋았다.

오늘은 전주교구의 성지를 순례하기로 정하고 새벽 여섯시에 출발하여 첫 번째 목적지 치명자산1)에 도착했다. 치명자산에는 1801년에 순교한 복자 유항검 가족들을 합장한 묘소가 있는 곳으로 우리가 너무나 존경하는 유중철(요한)·이순이(루갈다) 동정부부의 묘가 있는 성지이다. 이른 아침, 산을 오르는 길이 조금 험하긴 해도 너무 좋았고 묘지도 조금 특색 있게 조성해 놓았다. 다음으로 전동성당2)으로 갔다. “전동성당은 한국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해박해(1791년) 때에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유교식 조상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웠던 진산사건으로 순교한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다.”(『한국천주교회 111곳 성지순례』 210쪽) 월요일이라 그런지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성당입구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배려해줘서 순례를 할 수 있었는데 순례자들이 너무나 많았다.

전동성당을 나와서 바로 옆 풍남문3)으로 향했는데 마치 대구의 관덕정과 흡사한 느낌을 받았다. 풍남문에서 초록바위4)로 갔는데 길가에 아주 작은 성지 표지만 붙어 있어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그 다음으로 서천교5) 성지로 향했다. 얼마나 찾기 힘들었는지, 길가에 무심히 벽화로만 되어 있어서 서천교를 몇 바퀴나 돌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물어 갔더니, 그 장소가 바로 너무나 끔찍한 순교터였던 것이다.

그렇게 서천교를 나와서 숲정이6)로 향했는데 숲은 온 데 간 데 없고 신학원 건물 정원처럼 가꾸어져 있었다. 예전의 아름다운 성지를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옛 기억이 떠올라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어찌 되었든 순교자들 덕에 우리가 이렇게 편안히 살고 있다 생각하니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들어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숲정이를 벗어나 초남이7)로 향했다. “초남이는 ‘호남의 사도’라고 불리는 유항검의 생가 터가 자리한 곳”(책 214쪽)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 발상지이며 주문모 신부님께서 첫 미사를 봉헌한 곳으로 아주 특이한 곳이다. 작은 한옥에 성체가 모셔져 있고 야외마당 같은 성전으로 꾸며졌다. 우리들이 우리 순교자들뿐 아니라 주문모 신부님도 꼭 기억해야만 된다는 것을 깊이 가슴에 새겨준 성지였다.

초남이를 나와서 천호성지8)로 향했다. 이름난 성지라서 그런지 정말 대단하다는 마음으로 순례를 하면서 묘지에 올라가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신을 미나리꽝에서 건져내어 묻었다 한다. 앞으로 미나리를 먹을 때마다 생각나게 하는 성지일 것 같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되재성당9)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한국식 성당인데 성전을 제대로 다 정리하지 못한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거기서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10)로 향했다. 내 몸을 어디다 둘 곳이 없을 정도로 작렬하는 태양아래 기도조차 하기 힘들 정도의 땡볕아래 탁 트인 곳이다. ‘순교하신 분들도 계신데 이 정도 폭염이야 견뎌야지.’ 하며 기도를 바치고 나바위11)로 향했다. 이곳은 2014년 처음 순례를 하려고 했을 때 순례한 성당이어서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 또한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가 되어 조국에 입국하며 첫발을 디딘 축복의 땅”(책 200쪽)이기도 하다.

 

성체조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성지는 가도 가도 계속 가고 싶은 곳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더욱이 아침 일찍 순례를 시작한 덕분에 전주교구 성지순례를 마치자마자 몇 군데 더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대전교구 지석리12)를 찾아갔다. 지석리는 길가에 있는 성지인데 아주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기도 했다.

참 신기한 것은 처음 시작할 때는 편안하게 자문을 얻어가며 순례를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우리나라 지도를 펼쳐두고 천천히 성지를 하나씩 찾아 표식을 하고 번호를 매겨가면서 순례의 순서를 정하다 보니 가는 길에 지도에서 본 지명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지석리 성지를 더 잘 찾아갈 수 있었는데, 여기서 우리 일행은 서울대교구의 아름다운 신자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천호성지부터 우리를 뒤따라오던 부부였는데 지석리에서는 서로 통성명을 하면서 다음 성지 산막골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하느님께서 아름다운 길동무를 보내주신 것이다. 지석리에서 산막골13)까지는 정말 그야말로 첩첩산중 시골이었다. 그 산골에 성지가 있다니, 지석리에서 만난 아름다운 부부와 함께 기도하며 서로서로 부둥켜안고는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산막골을 오늘의 마지막 순례지로 끝을 맺었다.

성지순례는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하느님의 아름다운 발길을 천천히 따르다가 나중에는 힘껏 달려가게 된다. 그리고는 어느새 그 길 위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참 좋으신 하느님! 아름다운 시간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순교자들 덕에 저희들이 이렇게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희생으로 우리 신자들이 어디서 만나든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 만남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저희들이 남은 순례도 잘 할 수 있도록 당신께서 함께해 주심을 굳게 믿습니다.

 

○ 7회차 : 치명자산→전동성당→풍남문→초록바위→서천교→숲정이→초남이→천호성지→되재성당→여산 숲정이 순교성지→나바위→지석리→산막골

 

1) 전주교구 소속의 성지. p.218. 『한국천주교회 111곳 성지순례』 참조

2) 전주교구 소속의 성지. p.210.

3) 전주교구 소속의 성지. p.220.

4) 전주교구 소속의 성지. p.216.

5) 전주교구 소속의 성지. p.204.

6) 전주교구 소속의 성지. p.206

7) 전주교구 소속의 성지. p.214

8) 전주교구 소속의 성지. p.212

9) 전주교구 소속의 성지. p.202.

10) 전주교구 소속의 성지. p.208

11) 전주교구 소속의 성지. p.200.

12) 대전교구 소속의 성지. p.68.

13) 대전교구 소속의 성지. p.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