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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匹夫不可奪志 필부불가탈지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실장

사순시기를 잘 보내고 계신지요? 속죄와 보속의 사순시기를 보내고 나면 부활(復活)시기가 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통과 죽음의 세력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여실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 사순시기를 시작하면서 결심했던 것들은 잘 지키고 계신가요? 그리고 2017년을 시작하면서 연초에 작심(作心)했던 것들은 또 어떻게 되었습니까?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사순시기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부활이 다가옵니다. 2017년도 어느새 4분의 1이 지났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준비를 하든 못하든 개의치 않고 시간은 자기 갈 길을 쉼 없이 갈 뿐입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마음을 다잡고, 결심을 하고, 의지를 굳히며,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실천해 나가는 것이겠지요.

최근 「사일런스」란 영화를 봤습니다. 일본 박해 시대 때 순교자와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앤도 슈사쿠의 『침묵』이란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지키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교자들의 의지는 무서운 고문과 모진 박해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자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배교를 선택하지만 침묵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만은 끝까지 간직하는 선교사의 마음도 가슴 깊이 와 닿았습니다. 한 사람의 힘은 보잘것없지만 그 사람이 품은 뜻만은 누구도 함부로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공자께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삼군의 거대한 병력으로부터도 그 장수를 빼앗을 수 있다. 그러나 초라한 필부에게서도 그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

당시 3만 명이 넘는 삼군의 엄청난 병력은 무서운 외재적 힘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노력을 기울이고 전략을 잘 짜면 조조나 항우라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식하고 초라한 한 사람의 의지는 인간 존재의 내면의 힘입니다. 어떤 힘과 무력으로도 그의 의지를 빼앗아 올 수 없고, 어떤 유혹으로도 그의 뜻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할 때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예수님의 강한 의지가 생각나고, 「사일런스」 영화에서 십자가에 달려 파도에 온몸이 부서지면서도 성가를 부르며 장렬히 죽음을 맞는 초라한 어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나의 뜻은 어떠합니까? 뜻(志)이라는 한자는 원래 가다(之)라는 글자와 마음(心)이라는 글자가 합쳐져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마음이 가는 바가 ‘뜻’입니다. 내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나의 뜻이 가는 방향은 어디입니까? 신앙인으로서 나의 마음은 하느님을 향하고 있습니까? 이기적인 마음과 갖가지 유혹을 이기고 사랑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지요?

공자는 평소 삶에 네 가지의 태도가 없었다고 합니다. 바로 ‘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2)입니다. 자신의 사사로운 의견이나 견해가 없고, 무리하게 관철시키고 말겠다는 자세가 없으며, 변통을 모르는 고집이 없고, 나(我)라는 집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는 사실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사사로운 뜻에서 생각을 일으키면 그것을 무리해서라도 꼭 관철시키려 하고, 그러면 소통되지 않는 고집을 부리게 되며, 그렇게 해서 ‘나’ 중심의 아집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지요.

나의 뜻은 세상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하느님께서도 존중해 주시는 ‘자유의지’입니다. 하지만 뜻을 사사로이 일으켜 소통되지 않는 아집으로 굳어진다면 그야말로 고집불통의 인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아집을 버리고 소통하면서 타인을 배려하며 결심을 굳힌 나의 뜻, 하느님과 사랑을 향한 마음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