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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Anak(아낙)


글 이관홍 바오로 신부 | 가톨릭근로자회관 관장

 

지난 2월 19일 미사를 참례하러 근로자회관을 찾았던 필리핀 이주노동자 한 분이 쓰러졌습니다. 직원들과 저는 그분을 모시고 병원 세 곳을 전전한 끝에 겨우 한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이른 새벽까지 검사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회관에서 쓰러진 그분을 저희에게 데리고 오고 새벽까지 함께해주셨던 어느 필리핀 자매님과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50대 초반의 필리핀 자매님 역시 이주노동자로 2000년도에 한국에 입국하신 분이셨습니다. 4년 동안을 합법적으로 체류를 하고 나머지 13년여의 시간은 불법체류자로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다행히 공장에서 좋은 사장님을 만나서 한 번도 공장을 옮기지 않고 17년여 동안 한 공장에서 일하고 숙식까지 해결하면서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공장 지하에 혼자 살면서 17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7시가 되면 다른 직원들이 출근할 수 있도록 공장 문을 열고, 밤 11시가 되면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난 다음 공장 문을 잠그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했습니다. 17년 동안 참 힘들었겠다고 말하니, 이제는 자기의 모든 미션(Mission)이 끝이 났다고, 올 겨울이면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필리핀으로 귀국한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쉴 틈 없이 일을 해서 이제는 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17년 동안 일하면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던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오스트레일리아로 취직을 해서 떠나고 젖먹이였던 딸은 내년이면 대학을 졸업한다고 했습니다. 17년 동안 가족들을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었냐고 물어보니 2년 전에 아들과 딸이 한국에 와서 사흘을 함께 지낸 것이 전부라고 했습니다. 태풍으로 필리핀 고향집이 다 무너져서 새집을 지어야 했을 때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공장이 쉬는 주말이면 가정부로 한국 사람들의 집에 가서 빨래와 청소를 해주고 일당을 받으며 하루에 4시간씩 밖에 못자면서 일을 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Mission)을 완수했기에 필리핀으로 돌아가면 새로 지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야겠다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한참을 이야기 나누면서 그 필리핀 자매님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어깨와 무릎이 아픈지 계속해서 자신의 손으로 주무르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자식들을 향한 사랑 때문에 한국에 일하러 왔지만 정작 자식들과 함께 해주지 못했던 미안함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저에게 끊임없이 기도를 부탁하며 필리핀에 올 일이 있으면 자기 집에 꼭 들렀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자매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필리핀 노래 아낙(Anak)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어 가사 몇 소절을 옮겨볼까 합니다.

  

“아들아 넌 모르겠지. 아무리 먼 길도 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을 위해서는, 너를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계절이 여러 번 바뀌고 벌써 많은 세월이 흘러 지나갔구나. 시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린 거지. 이제 너도 어느새 다 자라버렸구나….”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아들과 딸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타국만리 한국에서 가족들이 함께 살 그날을 기다리며 그리움과 외로움, 온갖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온 자매님의 삶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한 가정의 가장이거나 아니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breadwinner)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땅의 모든 가장들을 위로해주시고, 특별히 이주민들의 가정이 부서지지 않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로 만들어주시기를 간절히 청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