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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어르신께 여쭈어 보았어요?요한네스!


글 도건창 세례자요한 | 카리타스복지교육센터 소장

오스트리아 빈 제가쎄(Seegasse)에 위치한 카리타스학교에서 노인간호조무사 과정에 다니며 성 0000요양원에서 실습을 한 지 석 달쯤 지났을 때, 실습지도자로부터 간호실무 첫 중간점검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잘 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넘쳤지만 준비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월, 화요일에는 카리타스학교에서 노인간호 이론수업과 빈대학교 신학대학 강의에 참석해야 했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실습하는 요양원에서 일했고 토, 일요일에는 일식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나마 주말 오전에는 아르바이트하는 식당의 손님이 적어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식당 식료품 창고에서 간호실무 교과서와 업무 매뉴얼을 읽고, 요양원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일과를 떠올리며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중간점검 준비를 했다. 출근 후 야간 당직 근무자와 인수인계, 아침 인사, 세면을 위한 도구 준비, 세면을 도와드릴 때 유의해야 할 점, 정해진 시간 안에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한 순서와 개인별 식단, 휴게실이나 프로그램실로 이동할 때 주의할 것, 오전 휴식시간에 그룹담당 수간호사에게 보고할 내용과 방식, 휴식 후 어르신들 침실 정리와 세탁물 찾아오기, 점심식사와 식사 후 여가시간에 할 활동과 나눌 이야기, 중간중간 화장실로 안전하게 모셔가고 돌아올 때 지켜야 할 점 등을 각자 다른 신체적, 사회적 상황과 습관을 떠올려 보았다.

301호 할아버지는 왼쪽 편마비가 있다. 그래서 그분을 도울 때는 반드시 오른편에 서야 덜 불안해하신다. 세면을 위해 옷 벗는 것을 거들 때에도 오른팔부터 시작해야 그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302호의 할머니 한 분은 정맥 순환이 잘 안 되어 종아리 통증이 심하기 때문에 압박 스타킹을 입혀드릴 때 보조기구를 쓰지 말고 손으로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오랫동안 사무원으로 일하시다가 혈관성 치매로 요양원에 오신 303호 할머니는 당신 스스로 씻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으니 도와드리기보다 그 전날 있었던 일이나 그날 식단 또는 일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 305호 할머니는 혈액을 통한 감염 위험이 있고, 낙상 위험이 크므로 반드시 사전에 장갑을 착용하고 도와드려야 위험한 상황이 생겼을 때 바로 대처할 수 있다. 308호 할머니는 세면할 때 꼭 분홍색 수건을 사용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중간점검을 받는 날이 되었다. 중간점검은 실습을 지도하는 수간호사 선생님 앞에서 내가 그날 할 일을 일과대로 하고, 실습지도자가 각 행동마다 잘한 점과 부족한 점을 지적해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상상을 통해 리허설을 여러 번 한 덕분인지 304호에 혼자 거동하지 못하고 말로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시는 할머니께 올 때까지 한 번도 지적을 받지 않았다. 그분 눈을 맞추며 인사드리고 세면하기 위해 일으켜 드리겠다고 말씀드린 다음 잠시 기다렸다가 침대 구동장치를 이용해 앉을 수 있게 해드렸다. 그분 곁에 다가가 오른손을 잡으며 그분 귀에다 평소보다 조금 큰 목소리로 세면을 도와드리기 위해 왔다고 말씀드렸다. 먼저 얼굴을 닦아 드리고 오른팔과 왼팔을 씻어드릴 거라는 설명을 드리면서 그분 마음이 가라앉아 있는 편인지 아니면 흥분 상태인지를 알기 위해 표정을 살폈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주로 어느 방향으로 세면을 시켜드릴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침대에서 세면할 때 사용하는 대야에 뜨거운 물과 찬물을 부어 섞으면서 손으로 온도가 적당한지 확인하고 물수건에 물을 축여 그분 얼굴을 닦아드리려 했다. 그때 수간호사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요한네스, 어르신께 물 온도가 적당한지 여쭈어보았어요?” 그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어 “0000할머니께서는 한 번도 말씀을 하신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손으로 물 온도를 확인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수간호사 선생님은 “그러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어르신께 물 온도가 적당한지 여쭈어 볼 수 있을까요?”

말문이 막혔다. 그런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한편으로 얼굴이 달아오르고 괜한 트집을 잡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발도 있었지만, 그 할머니께서 세면할 물의 온도를 내 감각에 따라 결정한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결국 실습 중간점검에서 불합격을 받았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지적을 받았지만 그 지적이 가장 중요한 불합격 이유였다. 실습지도자 선생님은 첫째로 전문적으로 어르신 간호를 보조하고 수발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당사자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 경험하고 결정하는 것을 지원해야 하는데 나는 내 직업의 사명조차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둘째로 내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내가 선택한 직업이 지향하는 목적과 관련해서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직업인다운 모습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실무에서는 제한된 시간이나 수발해야 할 어르신의 숫자처럼 과업을 수행하는 환경의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식도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셨다.

예수님도 당신을 목청껏 부르는 예리고의 시각 장애인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마르 10,51)라고 물으심으로써 그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대답할 수 있게 하셨다. 그 물음과 대답을 통해 그는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인공이 되어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 예수님 모범을 따라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고유한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소중하게 대하는 것을 실천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 우리 교회 사랑실천의 사명이라면, 언제나 당사자에게 여쭙는 데에서 우리 일을 시작해야만 한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 나의 모습을 본다. 지금 나는 그렇게 일하고 있는가? 교육에 참여할 동료들에게 물어 보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외부 환경이 여의치 않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물을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는가? 그것을 통해 내 일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