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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이야기
관심


글 박경현 프란치스코 | 포항 오천고등학교 교장, 진량성당

대학 졸업 후 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대부분의 초임 남교사들의 피할 수 없는 운동부를 맡아 초·중등학생 육상대회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지역의 학교장들이 거의 의무적으로 참석한 단상에 중·고등학교시절의 교장 신부님이 보였다. 나는 신부님에게 기억될만한 졸업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찾아가서 인사를 드릴 생각까지는 하고 있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없이 뛰어 다니다가 우연히 멀지 않은 거리에서 신부님과 마주하게 되었다. 잘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기에는 떨어진 거리였지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우리가 초등학교 5학년에 진급하면서 중·고등학교가 무시험전형으로 바뀌었다. 그 덕분에 초등학교 고학년들의 보충수업이며 야간 자율학습이 이때 폐지되었다. 아직 해가 중천에 걸린 시간에 하교하는 우리들을 보면서 어른들이 ‘세상이 망할 징조’라며 혀를 차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도시, 시골을 가리지 않고 모든 초등학교에서 고학년이 되면 경북중학교, 사대부속중학교 등 대구의 명문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지금의 고3 생활과 비슷한 학교생활을 했다. 이러한 자식을 뒷바라지 하면서 희망과 위로를 받던 부모님들에게 갑작스러운 변화가 우려스러웠을 것이다. 손에 땀을 쥐는 긴장된 입학시험 대신에 손잡이가 달린 투명한 원통을 돌리는 수고만으로 진학할 학교가 결정되었다. 1번과 2번 두 종류 중에 1번 구슬을 뽑았던 탓에 이 신부님이 설립한 학교로 진급이 결정되었을 뿐 나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중학교 3년을 보내면서도 우리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누구인지 그분의 역할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복도를 오가다 보면 교장실이라는 팻말이 있고 머리카락이 하얀 낯선 복장을 하고 계신 분이 교장 선생님이라고 했다. 특이하게도 그분이 신부님이라는 것도 우리와는 무관한 일이고 학교에서 그분의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단지 전교생 조례 시간에 훈화가 짧아서 좋았던 정도로 기억되어 있었다.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병설 고등학교가 개교하면서 신부님과의 인연은 다시 3년이 추가되었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신부님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다는 것, 심술궂은 표정으로 언제나 다른 생각에 몰두해 있었으며 괜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워서 눈길 한 번 마주친 적도 없다. 게다가 수천 명이나 되는 졸업생을 일일이 기억하기도 만무하다. 어차피 인사를 해봤자 그분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려면 괜히 이야기가 길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기억도 없는 제자와 어색하게 마주하여 무의미한 안부만을 주고받는 것이 신부님에게 결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자리를 슬쩍 피해버리는 것이 깔끔할 거다.’ 하고 마음먹고 있는 순간 신부님이 너무 가까이 와 버렸다. 더 이상 외면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의례적인 인사만으로 끝낼 요량으로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건조한 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무뚝뚝하고 시선도 똑바로 주지 않은 채 특별한 감정도 섞이지 않는 낮은 음성이었지만 신부님의 의외의 답변에 나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 선생! OO초등학교에 근무한다면서? 방금 그 학교 교장에게 자네 이야기를 했었네.”

길지 않았던 대화를 마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신부님의 뒷모습을 나는 한참이나 멍하니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갑자기 부끄럽고 송구한 마음이 밀물처럼 덮쳐왔다. 교장 신부님에게 내가 기억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가 뭐길래!’ ‘저분은 나에게 누구인가?’라는 말을 혼자서 수없이 중얼거렸다.

 

지난 2월 28일 천주교대구대교구 학교법인 주관으로 의미 있는 행사가 있었다. 2017년 우리 교구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 중에서 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40여 명을 주교관으로 초청한 행사였다. 김천의 성의고, 성의여고, 대구의 대건고, 효성여고, 하양의 무학고, 경주의 근화여고, 그리고 포항의 오천고 등 7개 학교 학생들이 자리를 함께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중등 교육의 현장은 여전히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학생 수의 급감, 복잡한 대학입시 정책, 수그러들지 않는 사교육의 열풍 등이 난마처럼 얽혀 좀처럼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가장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에 모두가 수긍하는 그런 정책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교육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구가 운영하고 있는 많은 학교들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각 지역에서 신뢰를 유지해 왔다. 그리고 2013년부터 교구에서 운영을 시작한 우리학교도 지난날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워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러나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무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여러 가지 이견이 있겠지만 일단 인문계 고등학교는 우리나라 상위권 대학으로 진학이 가능한 역량을 갖춘 아이들을 진학시켜 입시 경쟁에서 한발 앞서나가야 하는 것이 다급한 목표이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 하더라도 고객이 외면하면 존립의 이유가 소멸되기 때문이다.

각 학교를 대표한 학생들의 모습은 남달랐다. 초롱초롱한 눈빛과 반듯한 복장, 그리고 여유있는 태도 등 전형적인 모범 학생들의 포스였다. 먼저 주교님과의 만남이 있었다. 이상한 모자와 검은 원피스 치마에 자주색의 띠를 두른 독특한 복장의 대주교님의 관심을 받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특히 학교 선택에 많은 갈등이 있었고 자신의 결정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학생들에게는 위로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비록 40여 명의 학생들 중에 가톨릭 신자 학생은 단 2명밖에 없었지만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성당에서 전해준 대주교님의 따뜻한 관심과 기대는 학생들의 마음속에 오래 기억될 것이다.

나도 우리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이 행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만나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 우연히 ‘교사’가 꿈이라고 답한 학생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 너의 최종 꿈은 ‘교장’이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왜 교장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의 답이 ‘편하잖아요.’였다. 조금은 의외의 답변이었다. 우리 법인에 진학한 최고 수준의 학생의 생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단순히 이 학생 한 명의 답변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똑똑한 아이들의 답변인 것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의 꿈은 ‘편함’에 있다. ‘내가 교장인데 전혀 편하지 않다. 편하려면 교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라는 말을 농담처럼 했지만 진심이다. 모든 사람들이 승진을 꿈꾸고 모든 사람들이 수치로 나타나는 결과에 연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점수, 석차 등에 지친 아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휴식일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명문대의 학벌을 가져야 안정되고 편안한 직업이 가능하다고 우리들이 다그쳐 온 것이다. 학교가 힘겨운 것은 입시라는 거대한 목표를 위해 아이들이 전혀 궁금하지 않는 것을 알도록 강요하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도달하는 속도가 느릴 때에는 쉽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들의 동의가 없는 꿈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영훈초등학교를 나와서/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 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쓴 ‘여덟 살의 꿈’이라는 시를 그냥 웃어 넘길 수가 없다. 과연 나와 마주한 이 학생이 말한 것처럼 ‘편함’이 ‘행복함’일까? 늙고 병약한 부모들이 자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밭일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사랑하는 자식을 위한 수고가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늙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만큼 비참한 것이 없다.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아이들 곁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선생님들, 자신이 맡은 각 분야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람들은 결코 편안함만이 목표가 아니다. 학교 공부에 지친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한 과정으로 여기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가르치기 전에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다. 알아가는 즐거움을 체험하고 사랑하는 세상을 위해 공부한다면 비록 고단하고 힘겨운 생활이지만 의미있고 행복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더 유능한 사람이 된다면 세상에 더 쓸모있는 사람이 될 것이고 그만큼 나는 누군가에게 더 소중한 사람이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절실함도 생길 것이다. 절실함의 깊이만큼 몰입이 가능하고 몰입을 통하여 성취와 성장의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살면서 부딪치는 수많은 장벽들­입시, 취업, 가치관의 차이 등-은 결코 내 행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다. 작가 랜디 포시는 “장벽이 있는 이유는 우리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더 간절히 원하는지 아닌지 구분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합니다.€장벽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렇게 많이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멈추게 하기 위함입니다” 라고 말했다. 더 큰 사랑을 품은 사람은 더 거칠고 힘겨운 벽이라 할지라도 절실한 마음으로 넘어설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 행복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난 이 아이에 대한 나의 간절한 관심이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았다는 사실만이라도 느꼈으면 좋겠다.

 

세상 속에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내가 느끼지 못하는 방법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나는 가지고 있다. 나의 삶이 나의 의지대로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큰 힘에 이끌려가고 있는 것을 많이 느낀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 교단에 몸담은 지도 꽤 많은 시간들이 흘렀고 내가 만난 제자들도 그 숫자가 적지 않다. 그들은 나를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나에게 숨은 관심을 보여주던 많은 분들은 이미 늙어가고 더러는 세상을 떠났다. 이제 내가 그들에게 받은 관심과 사랑을 누군가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관심은 그냥 영혼 없는 말들의 향연이 아니다. 관심은 변해가는 모습을 알아봐 주는 것이다. 관심을 가지면 변화가 보이고 변화를 알아주면 더 큰 변화를 위한 힘이 생긴다. 무관심을 덮기 위한 가짜 관심들이 판치는 요즈음에 진정한 관심은 등불처럼 밝게 빛날 것이다.

드러나지 않게 보여 주신 신부님의 그 관심이 나 자신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소중한 진실을 깨닫게 해 주었고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으며 지금도 나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