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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생의 마지막 길’ 을 배웅하며


글 구희서 안젤로 | 대명성당

살다보면 여러 개의 모임을 갖게 된다. 동우회, 향우회, 산악회 등등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그 많은 모임 가운데 신심활동인 레지오 마리애가 있다. 이는 천주교회 안에 있는 성모님의 군대라는 기도모임이다. 십여 명의 단원들이 매주 정한 요일에 만나 주어진 예식에 따라 묵주기도를 바친다. 기도 뒤에는 활동보고와 협의를 거치면서 친교모임까지 한다. 이 모임에선 가끔 이런 이야기도 한다. “사실 우리는 친형제보다도 더 자주 만나고 있다.”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반드시 만나는 친형제들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러니 다들 어렵고 힘들 때마다 서로 터놓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래야만 서로의 사정도 알고 작게나마 도움의 손길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은 창단을 하고 현재까지 햇수로 여섯 해를 넘어서고 있다.

 우리 레지오의 부단장을 맡은 최 베드로 형제는 수개월 전에 폐암 판정을 받았다. 거기다 암세포가 여기저기에 전이되어 항암치료 중이었다. 십여 일 전에 우리 레지오 주관으로 부부동반 성지순례를 떠났다. 솔뫼 성지와 수덕사를 경유한 하루 일정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말렸지만 굳이 함께 가기를 원해 동행했다. 아픈 몸이었지만 여정도 잘 소화하고 기분 좋은 모습으로 헤어졌다. 그런데 며칠 뒤 다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 다음날 병자성사를 받고 그는 하늘나라로 먼 길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죽음 앞에 선 단원들은 모두 허탈한 심정이었다. 삶이란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미사에서는 죽음의 준비에 대한 신부님의 강론이 있었다. 세례를 받은 것도, 쁘레시디움에서 활동한 것도, 성지를 다녀온 것도 다 같은 맥락이리라.

 타고르의 시집 『기탄잘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을 맞이할 때마다 두려운 것이 있다. 그것은 인생이란 언젠가 되돌아가야 할 준비를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죽음을 준비하는 일’보다 더 큰 준비는 없다.” 우리는 단 하루의 여행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해서 떠난다. 누구도 죽음을 경험해 보지 않아서 꼭 어떻다고 단정지을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누구나 죽고, 또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오늘 우리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영혼의 길을 준비하도록 말하지 않는가?

 장례미사를 마치고 장지수행을 했다. 버스 안에서는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한 기도(시편)가 바쳐졌다. 모두가 그의 평안한 안식과 주님의 자비를 기원하고 있었다. 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늦은 가을이 깊을 대로 깊었다. 나무들도 긴 겨울을 나려고 저마다 고운 잎을 땅에 내려놓고 있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미처 깨치지 못한 걸 하물며 나무들이 일러주고 있는 듯했다. 공원주차장에는 이미 여러 대의 버스가 도착해 있었다. 열 개의 화장로는 쉼 없이 가동 중이고 전광판엔 ‘화장 중’이란 문구가 흐른다. 이제 한 시간쯤 지나면 사랑하는 가족들 앞에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오겠지. 한없이 선하고, 잘 웃고, 머리가 허옇던 그가 그런 모습으로 돌아오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니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은가.

 돌아오는 길. 가로수는 서둘러 잎을 떨어뜨리고 낙엽은 늦가을 바람에 나뒹굴고 있다. 세상은 변하고 형제는 떠났지만 하늘은 역시 푸르고 어제나 오늘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허락된 여일의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하느님과 이웃을 가슴에 품고 기쁜 삶을 살아야 하리라. ‘주님! 세상을 떠난 최 베드로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