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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이야기
부부


글 박경현 프란치스코 | 포항 오천고등학교 교장, 진량성당

조선 숙종대왕 즉위 초 충신의 후예인 양반가에서 성장한 이몽룡은 부사로 제수된 아버지를 따라 서울을 떠나 남원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고위 공무원으로 진출하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자율학습에 몰두해야 할 16세였다. 하지만 북한의 김정일도 두려워한다는 질풍노도의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성을 향한 그리움이 불꽃같이 일어났다. ‘훗날의 출세를 위하여 지금 하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한다.’는 훈장님과 부모님의 훈계를 귀에 딱지 앉도록 들으면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수없는 다짐을 했지만 마치 무엇에 홀린 듯 마음을 다잡는 데에 실패한다.

 

계절의 여왕 5월 중에도 단오 날, 사각의 문밖에 펼쳐지는 풍경이 지난 시절의 그것과는 완연히 다르게 다가온다. 사방에 눈이 시릴 정도로 신록이 우거져 있고 지천으로 피어오른 꽃들을 쫓으며 나비들이 쌍쌍이 교태를 부리고 온갖 새들도 짝을 부르며 요란하게 숲속으로 날아들고 있다. 아무리 법도가 엄격한 집안에서 성장했다고 하지만 혈기 왕성한 사내아이의 봄기운도 봇물처럼 터진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이 도령은 용기를 내어 아버지에게 “금일 날씨도 화창하니 잠깐 나가 풍월이나 읊겠사오며 시의 운이나 생각하고자 성이나 한 바퀴 돌아보고 오겠나이다.”며 머리 조아려 자율학습을 이탈할 명분을 확보한다. 시의 운이나 떠올리려면 조용한 산사나 한적한 숲길이 당연하거늘 사람들이 북적이는 광한루를 선택한 것을 보면 그의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는 것이다. ‘이성 간에는 교제하지 않을 때에만 건전하다.’는 말이 들릴 리도 만무하고 몸은 이미 마음보다 먼저 움직이고 있다. 눈을 번득이며 공원 어디에선가 자기처럼 배회하고 있을 예쁘고 불량한 소녀를 찾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그의 예리한 시야에 포착된 것은 그네 줄에 몸을 싣고 천사처럼 허공을 날고 있는 그녀였다. “섬섬옥수 넌짓 들어 두 손에 갈라 잡고/ 흰 비단버선 두 발 길로 살짝 올라 발구를 제/ 실버들 같은 고운 몸이 단정히 노니는데/ 뒷단장 옥비녀 은죽절과/ 비단결 겹저고리 재색고름이 흩날리는 모습”에 넋을 잃은 이 도령은 앞뒤 가리지 않고 다가가 말을 섞으면서 이미 헤어날 수 없는 깊은 감정의 여울목으로 빠져 든다. 마음의 빗장은 단단하게 단속한 사람일수록 일순간에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날 저녁 그의 발걸음은 꽃보다 아름다운 동갑내기 춘향의 집을 향했다. 이렇게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무런 선행학습이 없어도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로맨스에 빠진 일 년여의 시간은 꿈속보다 아름다웠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시인의 노랫말처럼 황홀감과 일체감을 느낀다. 다만 신분의 격차가 워낙 큰 까닭에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피해 데이트를 즐겨야하고 일생의 과업인 과거를 준비하는 데에 몰두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가장 큰 걸림돌 이었다. 그러나 적절한 장애와 반대는 오히려 그들의 사랑을 더 단단하게 묶어 주었다. 대화는 언제나 상대방 중심이었다. 말뿐만 아니라 표현되지 않은 느낌까지도 읽어 내기 위해 서로의 눈을 마주보고 작은 몸짓에도 집중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감각을 동원하였다. 두 사람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며 일체감을 지속시키고 있었다. 사춘기 소년과 소녀로서의 불장난 같은 사랑은 많은 약속과 결심을 남발했다.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일생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기를 수천 번 수만 번 맹세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강한 힘에 이끌리고 있었다. 첫사랑이 언제나 그렇듯이 이렇게 깊은 로맨스에 빠져 있을 즈음에 이별이라는 아픈 현실이 다가온다. 자신의 신분에 비추어 너무 과분한 도령과 가까이 한 춘향에게 이별은 큰 두려움이었다. “춘향아, 울지 마라. 한성 남북촌에 옥 같은 아름다운 여자가 많겠지만 나에게는 너밖에 없다. 내 어찌 대장부로서 잠시인들 잊을 소냐.” 며 남긴 굳은 언약은 춘향의 존재 이유가 된다. 원하지 않은 이별이 길어질수록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몸이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리움은 애틋하다. 사랑의 위대한 힘은 여리디 여린 중학교 3학년 소녀가 완강한 권력에 의한 온갖 회유와 협박과 목숨을 위협하는 신체적 고통까지도 견디어 나가게 한다. 순교를 각오한 신앙인처럼 버틴 춘향의 기다림은 헛되지 않아 이몽룡은 더 높은 신분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천인 출신의 첫사랑 춘향과 백년가약을 지켜가기로 한다.

 

이제 모든 장애는 사라졌다. 두 사람의 사랑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 년여 연애와 또 다른 일 년여의 이별의 기간 동안 보여준 춘향의 절개는 신분의 차이에서 오는 시선과 열등감을 지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서른 대의 곤장으로 춘향의 몸에서 붉은 피가 솟구치고 피눈물이 붉은 홍수를 이루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소녀는 이리 살다 능지하여 죽여주면 죽은 뒤 원조(怨鳥)라는 새가 되어 적막공산 달 밝은 밤에 도령님 단잠이라도 깨우겠다.” 며 고무신의 방향을 지켰다. 큰 칼을 목에 걸고 좁은 감옥에 갇히면서도 끝내 굴복하지 않는 의지를 통해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긍정의 시선으로 돌려놓았다.

하지만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어 살아가는 과정은 연인으로 살던 시절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낯선 길이다. 광한루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불같은 감정은 사라지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장애와 시련에서 오히려 강해졌던 사랑도 생각보다 쉽게 식어간다. 차돌처럼 단단할 것이라 여겼던 숱한 약속들도 거품처럼 흩어지고 사랑하고 싶지 않은 수많은 핑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두 사람 모두 각자 자신의 역할에 흐트러짐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하는 것이 답답한 것이다. 무슨 좋은 약이라도 있다면 삼켜서 연애시절의 그 로맨스를 되돌리고 싶은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그 후 그들은 혼인을 하여 부부가 되었다.’는 것이 동화에서 가장 비극적인 문장이다.”고 조슈아 리브만(Joshua Liebman)이 말했다. 혼인은 결코 로맨스를 지속시켜 주는 수단이 될 수 없고 사랑의 완성도 아니다. 혼인은 행복을 향한 끝없는 노력의 시작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로맨스의 무덤일 뿐이다.

혼인에 대한 남녀의 기대가 너무 다르다. 아내는 혼인을 행복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남편은 자기 성취의 기반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잡아둔 물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는다.’, ‘구둣방 주인의 아내는 헌 구두만 신는다.’는 말처럼 남편이 된 남자는 배우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쏟았던 모든 열정을 자신의 성취를 위한 방향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들은 직장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인정받으면 아내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그릇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춘향이와 함께 상경한 몽룡이 이조판서, 호조판서, 좌의정, 우의정 등 승승장구하며 승진을 거듭한 것을 보면 누구보다 성취욕구가 강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몽룡은 늘 일에 대한 생각에 몰두해 있어서 때로는 춘향의 방해를 피해 혼자이고 싶은 시간을 많이 필요로 했을 지도 모른다. 아내는 언제나 자신을 지지하며 그림자처럼 소리 없는 내조를 해주기를 기대하며 필요한 순간에만 다가와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대화에 대한 남녀의 태도도 다르다. 남자는 정보를 주고받을 목적으로 대화한다. 그래서 부부가 된 후 남편은 더 이상 주고받을 정보도 딱히 사라지고, ‘아~는?’, ‘밥도!’, ‘자자!’ 이 정도 정보교환만으로도 불편함이 없다. 매일 살 맞대고 사는 부부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원하는 것을 알아차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자는 사랑을 확인하고 공감을 얻기 위해 대화한다. 사실 남편이 하루 종일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다. ‘국가와 인류를 위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하는가?’ 보다 ‘남편으로서 아내인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속에 묻혀 있는 불같은 사랑이 아니라 따뜻하게 표현된 손길이 필요한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는 완전히 다른 낯선 시댁 식구들과 어울려 사는 것의 버거움과 3남 2녀의 다섯 명의 자녀를 키우는 일조차도 ‘특별히 당신만이 하는 일이 아니다.’며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서러운 것이다. 제 집을 여관처럼 드나들며 바깥일이라면 자다가도 뛰쳐나가 국가에 헌신하는 유능한 남편과 사는 것의 외로움을 알아주며 ‘수고한다.’, ‘사랑한다.’ 는 진심 어린 격려를 원하는 것이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남부럽지 않는 재산과 지위를 누리게 해 주겠다는 약속이 사랑의 표현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차가워진 마음을 데워 줄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것이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다정하게 어깨를 맞대고 마음을 나누고 싶은 춘향의 바람을 한가한 여인네의 보챔으로 여기면서도 자신의 성취와 노력에 대한 ‘인정하는 말’과 ‘칭찬과 격려’를 기대하는 몽룡의 이기적인 태도가 야속한 것이다. 이런 바람을 애원하듯 수없이 이야기했지만 ‘남자가 하는 일에 발목잡지 말라.’는 투로 외면하는 남편이 남의 편으로 여겨져 억장이 무너진다. 이런

실망과 환멸이 몰려올 때마다 내가 이렇게 살려고 목숨을 걸었나 싶어 하루에도 수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한다. ‘고집 세고 자신밖에 모르고 아내의 마음 하나 보듬어 주지 못하는 이 남자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 집안의 평화는 없다.’는 확신으로 대화는 비난과 언쟁으로 번지고 이러한 경험들은 다시 대화를 시도하는 마음까지도 접게 만들어 부부사이가 서릿발 같은 침묵의 관계가 되기도 한다. 마음의 문고리는 안쪽에 있어서 경청과 공감을 통하여 스스로 열어젖히고 나오게 해야 하는 것이다. 매몰찬 언어와 논리를 동원한 공격은 마음의 문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결속하게 하여 두 사람 모두 패배자로 만든다. 정작 춘향에게 필요한 것은 정조를 지킨 부인에게 내리는 ‘정렬부인’이라는 화려한 칭호가 아니라 그 옛날 광한루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따뜻한 눈길과 감옥에 갇힌 상처투성이의 자신을 품어 주었을때처럼 외로운 순간에 의지하고 기대고 싶은 믿음직한 남편의 그 가슴인 것이다.

 

가정의 달 5월, ‘우리 가정은 안녕하십니까?’ 자식들의 언덕이 되고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어야 할 부모가 오히려 그들의 짐이 되고 아픔이 되고 어둠이 되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 앞에서 단 한 번의 부부싸움도 너무 많다. 부부의 문제는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나에게 배우자를 짝 지워 주시고 귀한 자녀를 맡겨 주신 것은 가정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라는 거룩한 부르심이다. 남녀가 준비 없이 사랑에 빠질 수는 있지만 사랑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매순간 결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간절함이 있기 때문에 ‘대화법의 개선’을 통하여 일생 로맨스에 머무를 수가 있다. 더 나은 부부의 삶을 위해 ME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