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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지금 내 곁의 사람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실장

 

지하철을 타고 자리에 앉아 맞은편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저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름의 사연을 안고 살아가겠지? 저마다 많은 일을 겪었을 것이고, 각자 다양한 삶을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겠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한 편의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이겠지요. 어린 시절의 즐겁거나 아픈 추억이 있을 것이며, 아름답고 환희에 찬 순간뿐 아니라 실패와 실연 속에서 좌절도 경험해 봤을 겁니다. 누구는 지금 사랑의 기쁨에 빠져 있지만 누구는 이별의 슬픔을 견뎌내고 있겠지요. 누구는 실직을 해서 살아갈 날이 걱정이지만 누구는 새로 얻은 직장에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집니다. 친하고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리에서 스쳐 지나치는 사람도 있지요. 나에겐 별 의미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사람도 나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하나의 역사입니다.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하나의 우주와 같은 존재입니다. 천여 년 전 중국 송나라에 주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육구연(陸九淵)’이라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의 마음(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표현했지요.

“우주는 곧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곧 우주다.”1) 사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엄청난지를 강조했던 겁니다. 우리 각자도 하나의 우주요, 우리 곁의 다른 사람도 하나의 우주를 품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우주가 때로는 밴댕이 속처럼 좁아지기도 하고 바늘구멍 만큼의 여유도 없어 남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우주처럼 넓고 심오하다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기도 하고, 오해를 사며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어 따돌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우주와 같은 존재라는 것, 우주를 품을 만큼 큰마음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의 일부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온다면 그건 그 사람의 과거 수많은 시간들과 그의 현재와 앞으로 펼쳐질 엄청난 미래가 함께 오는 것입니다. 하나의 우주가 나에게 다가오는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품고 있을 시간과 공간, 살아온 날들을 생각하며 그 존재의 소중함을 느낀다면 그와의 만남은 실로 축복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만나고 있습니까? 어떤 마음으로 그 사람을 대하고 있습니까?

 

1) 육구연(陸九淵), 상산전집(象山全集), 33. “宇宙便是吾心, 吾心 是宇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