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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나그네


글 이관홍 바오로 신부 | 가톨릭근로자회관 관장

이주민들은 고국에서 타국으로 삶의 자리를 이동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고국을 떠나 타국, 이곳 한국으로 와서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나그네’들입니다. 한 곳에 안정되게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떠돌아 다녀야 하는 것만큼 사람을 힘들고 지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2011년에 필리핀에서 이주사목을 공부하고 귀국한 뒤로 포항과 경주를 거쳐 지금은 대구에서 이주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이별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기쁘게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주민들부터 불치의 병을 안고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어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주민들, 불법 체류자 단속에서 체포되어 고국으로 추방당하는 이주민들까지 참 많은 이별을 했습니다. 하지만 재회도 자주 있습니다. 대구에서 이주민들과 미사를 하는데 포항, 경주에서 함께했던 이주민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미사를 마치고 나와서 반갑게 인사하며 잘 지냈냐고 물어보면 대구에 오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대구로 이사를 왔다고 합니다. 경주에서 함께했던 베트남 신자들도 많은 수가 대구로 와서 베트남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또다시 국내 이주를 하게 됩니다. 한 지역의 경기가 침체되거나 불법 체류자 단속이 심해지거나 물가가 비싸서 생활비가 부담될 때는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 오래 체류한 이주민들 대부분이 국내에서 여러 번의 이주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많은 경우 새로운 지역으로 가게 되면 가장 먼저 성당을 찾고 자국민들의 공동체를 찾는다고 합니다. 자국민끼리 서로 온.오프라인으로 정보가 교류되기에 미사 시간을 확인하고 교회 안에서 공동체 활동을 하는 것은 이주민들에게는 필수적인 일이고 또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서울이나 부산 등의 다른 지역에서 무작정 저희 가톨릭근로자회관을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소와 전화번호만으로 짐보따리를 들고 찾아와서 직장을 구할 때까지 머무를 곳을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합니다. 이곳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어보면, 대구에 가서 ‘가톨릭근로자회관’을 찾아가면 어떤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막연한 기대를 안고 불쑥 찾아오는 불청객(?)들이 부담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가톨릭근로자회관이, 우리 대구대교구가, 우리 가톨릭교회가 오갈 곳 없는 이주민들에게 언제든 가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쉼터이자 피난처 역할을 한다는 것이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주민들이 국내에서 또 다른 이주를 함에 따라 이주민들의 공동체와 그 공동체를 위한 미사가 새롭게 시작되기도 합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대구대교구 내에서 이주민들을 위한 영어미사가 매주 봉헌되는 곳은 가톨릭근로자회관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논공, 구미, 포항, 경주, 왜관 지역에서도 신부님의 열정과 배려로 이주민들을 위한 미사가 매주 봉헌되고 있습니다. 베트남어 미사도 현재 대구, 구미, 경주 세 곳에서 봉헌되고 있습니다. 그 밖에 대구에서는 페루 공동체 스페인어 미사, 구미에서는 동티모르어 미사가 봉헌되고 있고, 논공에도 곧 새로운 동티모르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미사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이주민 공동체 미사에 가보면 서글프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합니다. 아직 미사 도구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고, 슈퍼마켓에 파는 절에서 사용하는 초를 올려놓기도 하고, 의자도 없이 서서 식당이나 공장 한 구석, 아니면 원룸 한 구석에서 미사를 봉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주민들이 목청껏 부르는 성가는, 한 목소리로 바치는 묵주기도 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아름다운 성가이고 진실 된 기도로 느껴집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 역시 나그네이십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 항상 함께하시고 당신을 믿고 찾는 이들과 함께 동행하시는 나그네 하느님, 이 땅을 순례하시는 순례자 하느님이십니다. 이주민들의 애절함과 간절함 속에 하느님이 계심을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이주민들에게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지켜주고 보호해주시는 전부라는 느낌이 듭니다. 이주민들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애절함과 간절함을 가지고 하느님과 함께 이 땅을 순례하는 나그네, 순례자의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