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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이야기
걱정


글 박경현 프란치스코 | 포항 오천고등학교 교장, 진량성당

 

내가 가끔씩 들여다보는 사진이 있다. 49년 전 초등학교 4학년말 종업식을 마친 후의 시간에 고정된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내 인생은 마치 이 순간부터 시작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근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빛바랜 사진 속에 세 명의 여학생은 무릎을 꿇은 자세로 1년 동안 제작한 학교신문 모음집을 들고 있고 나와 다른 세 명의 남자 아이들은 그 뒤에 나란히 서서 방금 받은 상장을 앞으로 내어 보이며 이마로 내리 꽂히는 햇살을 향해 찌푸린 얼굴로 어색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맨 뒤에는 현재 도시의 거리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깔끔한 넥타이를 한 정장차림의 젊은 선생님이 백마를 탄 왕자처럼 나와 내 옆의 친구의 어깨를 손으로 다독이며 편안한 표정으로 카메라에 시선을 주고 있다. 요즈음 세상에 그 흔한 백일 사진이며 돌 사진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이 사진이 내 모습을 담은 최초의 사진이다.

촌뜨기 아이가 사진첩도 없이 오랜 기간 가슴에 품듯이 이 사진을 보관한 것은 철없는 우리에게 각별한 애정으로 선생님이 직접 찍어 손에 쥐어 준 이유만이 아니다. 선생님은 글쓰기를 매우 강조했고 관련된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기쓰기였다. 선생님의 일기쓰기 지도는 아주 특별했다. 요일별로 한 분단씩 일기장을 거두어 선생님의 책상 위에 두면 선생님은 도장만 찍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답 글을 써 주었다. 어떤 때는 내 일기보다 더 긴 글들을 써 주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일기장을 되돌려 받을 때는 마치 연인의 편지를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나누어 주는 일기장을 재빨리 가슴에 품고 자리로 돌아와 아이들 몰래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뛰었다. 그래서 나는 마치 선생님에게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매일매일 일기를 정성껏 썼다. 다 쓴 일기장을 여러 권 겹쳐 묶어서 매주 써 놓은 선생님의 글을 읽어 보는 것은 어린 나에게 벅찬 감동이었다. 어떤 친구들은 이러한 지도 방법이 너무 가혹하다며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나에게 일기쓰기는 내가 선생님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비밀스러운 통로였다.

선생님의 답 글은 언제나 “경현아!” 이름을 부르며 시작됐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서툴기 짝이 없는 일기를 읽고 나의 마음을 잘 드러냈다고 칭찬해 주었고 착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녔으니 장차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기대의 글도 자주 써 주었다.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받은 큰 관심은 나에게 자신감 같은 것을 심어 주었다. 선생님과 1년의 시간이 연속적으로 기억되지는 않지만 사진처럼 몇 가지 일들이 뚜렷이 기억난다. 선생님을 만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은 어느 봄날이었다.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 되자 교실 뒤편에는 양복을 말끔히 차려 입은 여러 낯선 손님들이 가득 차 있었다. 장학사와 다른 학교 선생님들을 모시고 공개 수업을 하는 날이었던 모양이다. 어린 나의 눈에 비친 선생님도 매우 긴장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국어 수업시간이었고 주로 글쓰기에 관한 주제로 수업을 전개하고 있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장면이 있다. 수업의 전반부에 “오늘 학교 오는 길에 보았던 주변의 풍경을 이야기해 볼 사람?”이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혹시라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아서 선생님이 난처해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손을 들었고 선생님은 나에게 발표의 기회를 주었다. 모내기를 위해 준비된 들판의 풍경과 개구리가 요란하게 울고 있는 것, 이른 시간에 어른들이 허리를 굽혀 모를 심고 있는 모습 등을 주섬주섬 발표했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진땀이 날 지경이었던 그날의 심정도 그대로 떠오른다. 나는 겁이 많고 성격이 여린 편이라 남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평소 일기장을 통해 보여준 선생님의 관심에 어떤 모습으로든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날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은 나의 훌륭한 발표 덕분에 수업이 참 잘 진행되었다며 크게 격려해 주었다. 나를 학급 속의 한 아이가 아니라 나의 고유한 모습을 읽어 주는 선생님의 인정이 감사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글쓰기를 권장하기 위해 그 열악한 환경에서 학교 신문을 제작했고 그 활동에도 나를 참여시켜 주었다. 그 덕분에 나의 최초의 사진을 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각별한 인정으로 나는 선생님이 주관하시는 문예부에 가입했고 중·고등학교와 대학시절 그 이후에도 글쓰기와 관련된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사춘기 시절은 물론 숱한 결심이 흔들릴 때, 신앙생활에 방황이 올 때마다 일기를 쓰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그리고 사랑에 빠졌을 때 아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도 총총히 보낸 편지 덕분이었다. 아내는 나에게 받은 편지들을 묶어 증거물로 보관해 두고 “이놈의 편지 때문에….”라는 말을 지금도 가끔 하며 웃는다.

부부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많은 실망과 갈등의 순간에도 일기와 편지를 통한 대화로 사랑 안에 머무르고 있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벅차게 다가온 오천고등학교장이라는 소명을 받들며 그 엄중하고도 과분한 책무가 무겁게 느껴질 때마다 몇 줄의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다독였다. 우리학교 홈페이지 학교장 게시판에는 3년 동안 쓴 600건 이상의 넋두리가 남아있고 지금도 틈틈이 적어가고 있다. 선생님의 영향이었는지 나도 교사가 되었고 선생님의 흉내를 내며 일기 지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동문학가인 선생님이 인정해주신 말과 글은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심리학에서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야말로 인간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심리적 욕구라고 한다. 남에게 인정받는 일은 자기가 생존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확신하는 일로 살아갈 의미를 느끼게 하고 삶의 목표까지 생기게 만드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겪는 고통의 상당부분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에 소위 ‘수성구 어머니’라 불리는 후배 부부와 함께 자식교육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대치동 어머니’, ‘수성구 어머니’라는 말은 단순히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학부모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자식교육을 극성스럽게 하는 일부 어머니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했다. 나도 수성구에 오래 살았고 교직에 평생 몸담고 있지만 내가 듣고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씁쓸했다. 이 어머니들은 아이를 가질 때부터 자식교육을 위한 특별한 기획을 한다. 생존의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내 자식만은 평범한 다른 아이들이 접근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직업과 경제적인 풍요함을 누릴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사회적 선망의 대상인 의사, 판·검사, 변호사 등의 직업이 목표이다. 선택된 아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영어 유치원, 사립초등학교를 거쳐 국제학교나 과학고, 외고 등 특목고에 진학시켜 일반학생들과 격리시키고 그들만의 특권을 누리고 싶어 한다. 운동을 시켜도 펜싱이나 양궁, 아이스하키나 피겨스케이트 등 소위 귀족 스포츠라 불리는 종목을 선택하고 고급 악기

는 물론 1년에 한두 번 해외여행을 통하여 차별화를 시도한다. 이들 그룹에 속하기 위한 어머니들의 노력이 처절하기까지 하다. 이들은 자녀들을 위한 빈틈없는 스케줄을 작성한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난 뒤 오전 11시부터 최신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그들만이 모이는 브런치 카페에서 시험, 학원 등의 이야기를 나누지만 정작 핵심적인 내용은 경쟁자들과 공유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일정이 끝나는 오후 4시가 픽업 타임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이를 태워 차 안에서 급하게 식사를 해결하고 매일 톱니바퀴처럼 짜인 계획안에서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숨 막히는 일정을 소화한다. 자정이 될 때까지 바쁘게 움직여야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한 것 같아 위안이 된다. 아이가 가만히 쉬고 있는 공백의 시간이 불안하다. 성적과 등수에 민감하여 석차가 향상하면 보람을 느끼고 성적이 정체하거나 떨어지면 또 다른 대책을 위해 골몰한다. 이론적으로 합리적인지를 따지기보다 남들이 할 수 없는 차원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는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대한민국의 많은 어머니들이 무리한 경제적 부담을 기꺼이 감수하며 소위 ‘수성구 어머니’의 흉내를 내며 자식을 위한 최소한의 도리를 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뒷바라지 하지 못하는 경우 열등감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랜 기간 남보다 앞서기 위한 경쟁교육에 몰입해 왔다. 이 과정에서 장점보다는 단점을 부각시키고 격려나 칭찬보다는 강요와 질책이 난무하고 있다. 남보다 앞서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아이들을 내몰고 있다. 오늘날 교육 현장의 주인공인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어머니의 목소리만 요란한 경우가 많다. 긍정의 심리학자로 알려진 마틴 셀리그만(Martin E.P Seligman)의 고백은 오늘날 우리들의 교육에 대한 생각을 되돌아보게 한다. “나는 비로소 아이를 키울 때 아이의 단점이나 약점을 고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자녀의 장점과 미덕을 간파하고 계발해 줌으로써 아이가 자신에게 알맞은 일을 찾아 긍정적인 특징을 최대한 발휘하게끔 이끌어 주는 것이다.” 아이들의 단점을 고쳐 경쟁에서 앞서가게 하는 것보다 자녀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인정해 줌으로써 자신이 유능하고 소중한 사람임을 발견하여 행복을 느끼도록 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제 부모님들이 생각을 바꿀 때가 되었다. 지금 여러분의 자녀들은 행복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