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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인 가족찾기 프로젝트
미국 입양인 킴 딩맨(Kim Dingman, 한국이름 : 주정자)


글 김 데레사 수녀 |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수녀원이 시작된 1915년 이래 백백합보육원을 거쳐 입양된 수많은 해외입양인들이 성장하여 자신의 친가족을 찾기 위해 모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수차례 해외입양인들이 감동적인 친가족상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 해주신 〈빛〉 잡지 형제자매님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아직도 상봉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저의 이름은 킴 딩맨(Kim Dingman)이고 한국 이름은 주정자입니다. 한국을 떠난 지 43년이 지났습니다. 미국에서 성장하면서 저의 친가족에 대해 늘 궁금했었어요. 이제 남편과 가족의 권유로 그리워하던 한국에 왔습니다. 제가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었던 곳을 꼭 보고 싶었고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친가족을 찾고 싶습니다.”

 미국 국적의 입양인 킴 딩맨(여, 46세) 씨는 지난 5월말 남편 로이 씨와 친구 쥴리아 씨와 함께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를 찾아와 자신의 친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다.

백백합보육원 서류에는 “성명: 주정자(朱貞子), 생년월일: 1971년 10월 3일(추정), 입소: 1973년 12월 3일 11시 20분, 입소경로: 삼성원에서 의뢰, 연고자 없음”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백백합보육원에서 ‘주정자’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생년월일도 추정에 의한 것이다. 입소되어 보육원 나자렛방(당시 1세~2세 머물던 방)에서 보살핌을 받은 그녀는 이듬해인 1974년 4월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 미시건주 랜싱의 한 가정에 입양되었다. 랜싱에서 사업가로 알려진 양부모는 킴 씨보다 세 살 위의 친아들이 있었음에도 킴 씨를 입양하여 백인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며 극진한 사랑으로 키웠다.

킴 씨는 자신이 머물렀던 나자렛방에 들어가서 옛 보육원 건물 모습과 아동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첩을 펼쳤다. 자신에 대해 작은 기록이라도 찾고 싶은지 빛바랜 사진첩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아기 때부터 있었다며 오른팔 앞쪽의 붉은 점과 왼발 뒤꿈치의 화상 자국을 보여주었다. 친가족을 찾을 수 있는 어떤 단서라도 얻을까 하며 킴 씨를 처음 맡겼던 대구 K2 공군기지 근처의 삼성원이라 는 곳을 찾아보니 그 시설은 이미 37년 전에 구미시로 이전했으며 그 건물터에는 교회가 들어서 있었다. 당시 원장도 30년 전에 사망했고, 킴 씨의 관련 서류는 없었다. 구미 삼성원 직원인 주 모 씨에 의하면 그 당시 삼성원은 큰아이들을 위한 보호시설이어서 두 살배기였던 킴 씨는 발견되자마자, 즉시 영.유아시설인 백백합보육원으로 보내졌다고 했다.

“어머니의 나라이지만 낯선 한국에 와서 가는 곳마다 따뜻한 환영을 받으니 놀랍고 고마워서 기쁘기도 하지만 슬픔도 올라옵니다. 복합적인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자라면서 꼭 와보고 싶었던 .이곳’에 올 수 있게 된 것이 큰 행운이라 여깁니다. 저는 행복하게 자랐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딸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혼자’ 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요. 그럴 때마다 한국과 친부모님이 그리웠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포기해야 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요? 어떤 이유가 있었다 해도 절대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어디에 계시든 부디 행복하게 살아오셨기를 바랍니다. 죽기 전에 한 번 만이라도 만나 ‘엄마’라고 불러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백백합보육원 입양인 지원

김 데레사 수녀 : spctk@hanmail.net / T. 053-659-3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