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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청년국 제2기 해외봉사단 활동기
Mahal Kita!
- 타갈로그어로 사랑합니다!


글 정승훈 안드레아 | 삼덕젊은이성당, 계명대학교 작곡과 2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6일까지, 임종필(프란치스코) 본당 주임신부님의 인솔 하에 16명의대구대교구 청년국 제2기 해외봉사단이 필리핀 따가이따이시를 다녀왔습니다. 봉사단에 신청하기 전 본당 주보와 현수막의 홍보를 보았지만 제가 다녀오게 된 가장 큰 계기는 1기에 다녀왔던 친구의 권유 덕분이었습니다. 앞서 다녀온 봉사자들과 친구는 이 봉사 프로그램에 다녀오게 되면 사람이 정말 변한다고, 너무 좋았다고 계속 말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고작 9박 10일인데 사람이 바뀌면 얼마나 바뀔까? 봉사가 어떻게 행복하고 즐거운 일일 수 있다는 말인가?’ 하며 내내 반신반의 했습니다.

생후 2개월에 유아세례를 받은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랐습니다. 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크고 작은 상처를 많이 받아 오히려 신앙을 멀리하고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길지 않은 사회생활이지만 사람을 만날 때나 일을 할 때 무언가 열정이 고갈되고 이끌려 가는 대로 따라 간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고 무엇이든 잘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들다보니 진심을 느껴본 지가 언제인가 싶습니다. 입시 때부터 지금까지 너무 쉴 새 없이 달려 온 저는 제 삶을 감사하게 생각해 본 기억이 없고 늘 불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안고 봉사활동을 떠난 저의 첫 프로그램은 도착하자마자 필리핀의 직업학교 학생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올해 스물 한 살인 저와 같은 또래인 아이들은 저보다 체격이 작았습니다. 또한 저희가 생각하는 학교시설보다 훨씬 낙후되고 책도 없이 오직 노트필기로만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생계 유지가 어려워 학교의 기숙사로 도피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2년의 과정이 끝나면 당장 사회에 던져져 일용직으로 취직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사정을 모르는 한국 사람들이 얼핏 보기에는 너무 불행한 친구들인 것입니다. 물론 저 또한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들의 가난은 결코 불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첫 만남, 첫 프로그램 수업에서 저는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열화와 같은 환영과, 열심히 준비하였지만 부족했던 저희 프로그램을 하면서 우리가 마주한 그들은 한국에서 봐왔던 그 누구보다도 열정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들의 눈빛을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누구보다 간절하고 열정적이며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이들에겐 진심이 통하는 구나!’ 하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몇 번이나 울컥하였고, 결국 2일간의 일정 끝에는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렇게 벅찬 만남을 경험해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보더라도 그렇게 엉엉 울어본 기억이 까마득할 정도로 정말 값진 눈물이었습니다. 

그후 이틀간은 보금자리가 부족해 아직까지 화전민으로 생계를 유지해나가는 숯 굽는 마을 사람들과 파인애플 농장 주변에 나무줄기와 잎으로 집을 만들어 살아가는 파인애플 마을 사람들, 거주지역이 아니지만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는 우물 마을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봉사는 ‘내가 가진 것이 그들보다 많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만나고부터는 ‘이 사람들을 가난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가난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파인애플 마을, 숯 굽는 마을, 우물 마을 주민들은 그들의 환경을 떠나서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저는 지나온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주일에는 그리스도의 형제(Brother of Christ) 수도원에서 저희가 준비한 프로그램을 지역 아이들과 청소년에게 선물하고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매 순간 놀라움과 감동의 연속이었지만 미사참례는 더욱 특별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수도원에는 필리핀 신부님이 계시지 않고 한국인 신부님이 타갈로그어(필리핀의 국어)로 미사를 봉헌하는데, 가톨릭이 국교인 나라에서 타국의 신부님이 필리핀 말로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이 아주 멋있었습니다. 또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는 본인과 가정에서 소중히 재배한 파인애플과 열대과일, 곡식과 물품들을 봉헌하는 모습이 특히 감동적이었습니다. 평화의 인사를 할 때 뛰어다니며 마가 뽀따이(상대의 손을 자신의 머리에 갖다 대는 축복인사)를 하는 꼬마들, 잘하든 못하든 흥겹게 반주를 하는 수사님들! 형식적인 것보다 진심과 사랑이 가득한 미사였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지역 초·중·고 학생들과 만났습니다. 그 곳에서도 한류의 열풍은 대단했는데 제가 모르는 한국 아이돌 가수들까지 알고 있었고 드라마도 무척 사랑받고 있었습니다. 한국인을 연예인처럼 생각하다보니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는 친구들과 사인을 해달라는 친구가 엄청 많았습니다. 페이스북 친구 추가도 잊지 않았습니다. 막바지 일정으로 향하며 남은 일정은 이틀의 여행과 하루의 피정이었습니다. 맑은 남태평양 바다와 깊고 높은 화산, 호수들, 화려한 음식들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이제 와서 사진을 확인해 보면 ‘정말 내가 이런 곳에 갔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피정이었습니다. 고요한 산 속의 수도원에서 피정을 진행했는데 주위의 풍경이 절경입니다. 자유롭게 기도와 산책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오기 전 봉사자들과의 마지막 만남이다보니 새벽이 깊도록 살아온 이야기도 하고 함께 모여 성가도 불렀습니다. 작은 기도방에서 미사에 참례한 뒤 가졌던 나눔의 시간도 좋았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다음 기수 때는 내 힘으로 돈을 벌어 다시 신청하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너무 값진 기억이고 경험이었기에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떠나기 전 ‘고작 9박 10일동안 어떻게 사람이 변한다는 거지?’ 라는 저의 생각은 정말 잘못되었습니다. 말이 봉사단이지 사실 저희가 봉사를 받고, 사랑을 받고, 감사를 배우고, 행복을 느끼고 돌아와서 더 좋았습니다. 큰 힘을 받고 한국에 돌아온 지 이제 한 달이 되는 지금까지도 까맣게 탄 피부는 돌아오지 않고 있지만, 저는 그 어느 때보다 힘차고 밝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열정과 진심이 가득했던 필리핀 봉사를 경험하게 해주신 하느님과 임종필 신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