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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인 가족찾기 프로젝트
미국 입양인 피터 포스버그(Peter Forsberg, 한국이름: 구찬욱)


글 김 데레사 수녀 |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수녀원이 시작된 1915년 이래 백백합보육원을 거쳐 입양된 수많은 해외입양인들이 성장하여 자신의 친가족을 찾기 위해 모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수차례 해외입양인들이 감동적인 친가족상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해주신 잡지 형제자매님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아직도 상봉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에 입양된 피터 포스버그(Peter Forsberg: 구찬욱) 씨가 친부모를 꼭 찾고 싶다며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백백합보육원 해외입양인 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제 이름은 피터입니다. 저는 두 살 때인 1989년 미국으로 입양되었습니다. 저의 한국이름은 구찬욱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꼭 찾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백백합보육원 아동카드에 의하면 포스버그 씨는 1987년 9월 2일 오전 11시 대구시 만촌1동 소재 애활원 운동장에 유모차, 우유병, 의류 등의 아기 소지품과 함께 버려져 있었고, 만촌파출소 임 모 경찰관의 손을 거쳐 그 당시 애활원 원장이었던 이 모 씨가 아기를 직접 보육원으로 데려왔다. 신체적 특징으로는 몸집에 비해 손발이 작은 편이고 귀가 머리와 붙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보육원에서는 구찬욱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생년월일을 1987년 7월 2일로 추정했다.

 

포스버그 씨는 백백합보육원(현 백합어린이집)의 홍방과 청방에서 2년 여간 보살핌을 받은 후 1989년 여름, 입양기관인 홀트를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의 한 유복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그의 양부는 지역사회에서 평판이 높은 과학자요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고 한다. 포스버그 씨는 자녀가 없는 양부모로부터 특별한 사랑과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캘리포니아 얼바인대학을 졸업한 후 현재 비즈니스업계 소프트웨어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포스버그 씨를 곁에서 보아온 한 지인에 의하면 그는 주위로부터 매우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모범적인 젊은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포스버그 씨가 1987년 처음 발견되었던 만촌동 애활원의 주소지를 찾아가 보았다. 옛 시설은 1989년 다른 곳으로 이전했고, 그곳에는 고층아파트와 빌딩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게다가 30년 전 그를 발견하여 보육원까지 직접 데려다준 원장 이 모씨는 이미 오래전에 퇴임하였고, 안타깝게도 건강 악화로 대면이 불가능했다.

 

너무나 멋진 청년으로 당당하게 자라나 한국 아가씨와 결혼을 앞두고 있고, 직장에서도 앞날을 촉망 받는 그에게서 유모차에 덩그마니 버려진 고아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다만 아기를 버려야 했던 생모의 처지를 헤아려 보았다. 아기의 우유병, 옷, 아기용품 등을 유모차에 챙겨 넣고 돌아서야 했던 여인, 그래도 안전한 복지 시설을 선택하여 아기를 두고 떠난 여인의 마음을 생각하니 자식을 낳아 보지 못했지만 마음이 아려온다. 그녀는 평생 아이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을까? 그 소망대로 아기는 훌륭한 청년이 되었고 이제 그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아버지를 애타게 찾고 있다.

 

“저는 미국으로 입양된 후, 현재까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 혹은 다른 혈육의 안부를 알고 싶습니다. 만약에 저를 알아보셨거나, 제 가족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계신다면 꼭 연락해 주세요. 저의 어머니와 가족들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포스버그 씨에 대해 아시는 분은 아래 연락처로 연락해 주시고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주변에 널리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백백합보육원 입양인 지원

김 데레사 수녀 : spctk@hanmail.net     T. 053-659-3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