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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그리스도의 젊은 사도, 청소년과 청년
“CUM” 함께함이라는 희망을 지닌 우리 청소년들


글 안동욱 마태오 신부 | 4대리구 청소년·청년담당

 

2017년 교구장 사목교서 “그리스도의 젊은 사도, 청소년과 청년”에 따라 7월 29일(토)부터 30일(일)까지 4대리구에서 주최하였던 청소년 축제 ‘CUM²’가 폐막한 지 몇 달이 지난 지금, 4대리구의 뜨거웠던 여름 이야기를 잠깐 할까 합니다.

CUM이라는 말은 ‘함께’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입니다. 약 5년 전 故 서영민(알렉산델) 신부님께서 4대리구에 소속된 모든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한 축제로 ‘CUM+’를 개최하였고, 그 뒤를 잇는 의미로 축제의 이름을 ‘CUM²’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무엇보다도 함께함이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참으로 뜻깊고 의미 있는 축제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구장님의 교서가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4대리구 대리구장 신부님께서 청소년 축제에 대한 모티브를 주셨습니다. 제가 대리구에 온 지 겨우 일 년이 되는 시기였기에 많은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과연 행사가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두려움이 계속해서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요즘은 대부분 개인적인 휴가와 쉼을 향한 원의가 크기 때문에 함께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지라 두려움은 점점 더 커 갔습니다. 더군다나 ‘많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행사가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단 실무자들과 논의 후 2월 전체 사제회의에서 행사 일정을 발표하였고 되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전체적인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실무자들과 수십 번의 리허설, 그리고 각 본당에서 준비해야 될 기본적인 율동, 준비물, 일정 등을 배포하였습니다. 대리구의 봉사자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큰 행사였기에 각 본당의 협조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사실 대리구의 거의 모든 본당이 참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90% 이상의 본당이 참여하면서 필요한 봉사자도 기꺼이 참여시켜 주셨고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각 본당의 협조와 기도, 노력이 있었기에 이 축제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행사 참여 학생만 약 400명, 봉사자, 행사 진행요원 포함 약 500명 정도가 참여한 청소년 축제 “CUM²”에서 모든 이들을 놀라게 하고 감동을 준 것은 바로 행사에 참여한 4대리구 각 본당의 청소년들이었습니다.

저와 봉사자들은 ‘과연 이 친구들이 행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할까? 질서는 잘 지킬까? 안전사고는 나지 말아야 할 텐데’라는 걱정을 많이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참가한 청소년 모두가 질서를 지키며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참여하는 모습 안에서 행사에 참여한 친구들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주관적인 잣대를 가지고 바라봤던 저희들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분명히 프로그램 진행과 마침에 있어서 저를 포함한 진행요원들의 부족함이 있었을 터인데 함께한 친구들은 싫은 내색이 전혀 없었고 모든 끼들을 발산해 주었습니다. 특히 축제 준비 기간 동안 거의 매주 친구들이 모여 콘서트 발표를 위해 노력하며 자기들끼리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미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함께함”이라는 열정으로 채워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이들 각자의 마음속에는 ‘늘 누군가와 함께할 마음의 불씨가 심어져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약 6개월이란 준비 기간에 지쳐 있던 저희들이 부끄러웠습니다. 행사를 마친 지금도 함께했던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신부님, CUM³는 언제 하나요?”

이번 축제를 계기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그들과 더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들의 문화를 어른들의 잣대로 “나쁘다, 좋다.” 따지기 전에 그들을 먼저 이해하고 존중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 청소년 친구들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해 줄 친구입니다. “이래라저래라”하는 어른들의 충고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바라봐 주고 함께 느껴 줄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과 마음을 나란히 하지 못한다면 그들 마음 안에 든 “함께함”이라는 희망도 바라 볼 수 없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