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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개인 사이 사랑실천 + 사회를 향한 사랑 = 가톨릭교회 카리타스


글 도건창 세례자요한 | 카리타스복지교육센터 소장

 

지난 9월 여러 신문에 서울 강서구 공립 장애인 특수학교 신설을 위한 주민토론회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학부형이 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고 학교 설립에 동의해 줄 것을 호소하는 사진이 실렸다. 특수학교 개설을 반대하는 주민들 역시 무릎을 꿇고 나섰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된 것은 지역 정치인이 특수학교를 신설할 장소에 국립한방의료원을 유치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자신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국립한방의료원과 아마도 불리할 것으로 여겨지는 특수학교 사이에서 고민했고, 일부 주민들이 특수학교 개설을 반대한 것이다. 그 사진을 보고 적지 않은 시민들이 분노했고, 국무총리는 우리 사회의 이런 현실이 부끄럽다고 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약 20년 전 송현동에 있던 결핵환자 요양원이 주변 아파트 주민들 민원으로 있던 곳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아파트가 들어오기 전에 요양원이 있었음에도 그렇게 되었다. 주택가에서 2㎞ 이상 떨어진 논공 산기슭에 새 건물을 지었다. 하지만 결국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완공된 건물을 두고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지어야 했다. 온갖 설득과 노력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신축 아파트 단지 주변에 임대아파트를 지을 예정이었는데 주민들 반대 때문에 군인 관사아파트가 들어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땀 흘리는 신앙인들이 많다. 본당마다 일주일에 몇 차례씩 편찮은 사람, 혼자 사는 어르신과 아동, 가난한 이웃을 찾아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것을 전달하는 분들이 있다. 우리 교구 본당들이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지출하는 돈의 합계가 2~3년 전에 이미 30억 원을 훌쩍 넘었다. 그것을 보면 저분들과 같은 신앙을 나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런데 그런 도움이 대부분 개인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도움을 받는 사람 개인의 어려운 처지를 돕겠다는 신자는 적지 않지만 그 사람을 둘러싼 사회 환경까지 개선하려 하는 신자는 드물다. 버스에서 쓰러지는 사람을 부축해주는 신자는 많아도 버스가 그렇게 운행되게 하는 교통정책이나 업계 관행을 바꾸려고 팔을 걷어 붙이는 신자는 흔치 않다. 나 역시 후자에 속하지 않는다.

4년 전 제2차 교구 시노드를 마치고 후속교육을 위한 동영상 자료를 만들기 위해 동구 반야월 지역에 있는 동구 주민회라는 단체를 찾았다. 첫 만남에서, 그 단체에서 온 한 사람이 “저희는 장애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을 꿈꿉니다.”라고 말했다. 영상촬영을 위한 몇 차례 만남에서 나는 그들의 노력의 결실을 볼 수 있었다. 그 열매는 지난 25년간 그 마을 주민들이 마음과 힘을 모아 만들어 온 장애아동 통합 어린이집, 방과 후 교실, 청소년 문화센터,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센터, 마을 도서관, 발달 장애인 일자리 마련을 위한 카페와 친환경 유기농 판매장에서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감동적인 결실을 본 것은 한 소녀를 통해서다. 도서관 안에서 느닷없이 풀쩍풀쩍 뛰는 열일곱 살 난 남자 청소년을 보면서 무서워하기는커녕 “괜찮아요, 저 오빠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저래요.”라고 나를 안심시키던 열두어 살 먹은 소녀가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열매를 보여주었다. 그 소녀는 이미 장애를 가진 오빠와 이웃으로 더불어 살고 있었다. 그 공동체는 가톨릭교회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같은 신자와 그 공동체 회원들 가운데 누가 예수님 마음에 더 드실까?”라고 묻는다면, “나요.”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회를 바라실까? 더 약한 사람들이 점점 변두리로 밀려 나가는 상황에서 스스로 가난하고 쫓겨 다녔으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 그분을 구세주로 믿고 따라 사는 우리의 사명은 무엇일까?

올해 1월 1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교황청 부서를 개편했다. 교황청 사회복지/사회사목평의회(Cor Unum)와 정의평화평의회(Justitia et Pax)를 통합해 “이민, 보건, 자선 활동, 피조물의 보호와 관련된 문제를 포함한 정의와 평화”를 담당할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교황청 부서”를 신설했다.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 받고 더럽혀진 교회”(『복음의 기쁨』 49항)를 더 좋아하는 그분은 부서 통합을 통해 정의·평화, 생태계 보전을 위한 참여와 난민, 환자 등 곤경에 처한 사람을 위한 사랑실천이 동일한 사랑에서 나왔기에 서로 분리될 수 없다고 외친다. 그럴 때 온전한 교회다운 사랑실천(카리타스)이라고 가르친다.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 이웃과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일하는 직장, 지역사회, 국가도 사랑해야 한다. 그 모든 곳을 “사랑의 문명”으로 채우기 위해 뛰어들어야 한다. 그런데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부끄럽다. 하지만 이 부끄러움을 용기로 바꾸기 위해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 글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