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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德不孤, 必有隣(덕불고, 필유린)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실장

 

제 사무실이 있는 교구청 대건관 건물 앞 표지석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진리(眞理)는 외롭지 않다.” 이 건물은 1954년 미군의 원조를 받아 지어진 것으로 ‘김대건 신부님 기념관’이라고 불렸는데, 대건중고등학교의 도서관, 과학관으로 쓰였습니다. 당시 최덕홍 주교님께서 표지석의 글을 쓰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이 표지석을 볼 때마다 저는 『논어』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기 마련이다.”1)

 

덕(德)은 외롭지 않다. ‘덕을 갖춘 사람, 덕을 쌓아 나가는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다. 그런 사람 곁에는 반드시 이웃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이런 뜻이겠지요. 외로움, 고독함, 홀로 있음. 이런 단어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을 수식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요즘 “나 혼자 산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삶을 엿보며 화려한 그들의 삶도 그 이면에는 우리와 다르지 않게 외롭다는 데 공감을 하는 것 같습니다. 현대인들은 군중 속에서도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대도시의 인파 속에서도 고독감을 느끼지요. 가족과 함께 산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관계 안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더 큰 법입니다. 미국의 유명 작가 올리비아 랭은 『외로운 도시』라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고독하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그건 배고픔 같은 기분이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잔칫상에 앉아 있는데 자기만 굶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친구들은 모두 여행을 가고, 맛집에서 데이트를 하며, 명품 물건을 쇼핑하고, 행복한 모습의 사진들을 올리는데 나만 홀로 외롭고 재미없게 사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진리를 추구하고, 덕을 실천해 나가면 정말 외롭지 않을까요? 오히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더 외롭게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덕을 실천하는 사람 곁에 있기가 버거워 그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논어』의 이 구절에 대해 주희(朱熹)는 이렇게 설명을 붙였습니다. “덕은 고립되지 않고 반드시 비슷한 사람이 응답한다. 그러므로 덕 있는 사람은 반드시 비슷한 사람이 그를 따르니, 마치 사는 곳에 이웃이 있는 것과 같다.” 진리를 추구하고 덕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묵묵히 해 나갈 뿐입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맞거나 덕을 실천하는 다른 사람이 생기면 이웃처럼 그 사람과 함께하기에 결코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외롭다거나, 나만 홀로 외톨이가 된 것 같다고 느낀다면 오히려 자신의 삶을 돌아봅시다. 내가 얼마나 진실된지, 내가 얼마나 덕을 쌓고 있는지 말입니다

 

1) 『논어』 「이인(里仁)」 25. 子曰: “德不孤, 必有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