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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내 추억, 고향, 이웃의 가격은?
- 전인적 인간개발(integral human development)


글 도건창 세례자요한 | 카리타스복지교육센터 소장

 초등학교 4학년, 지금 사는 만촌동으로 이사를 왔다. 한동안 마당 구석 오동나무가 보고 싶어 옛집을 기웃거렸다. 이사 오기 두 해 전 어머니께서 시장에서 주워와 “뿌리가 많이 상해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심은 나무다. 죽을까 마음 졸인 탓인지 잘 자라는 게 고마웠고, 볼 수 없으니 더 그리웠다. 그 나무는 신천동에서 보낸 내 유년시절의 상징이다. 벌써 40년이 지나 그 나무도, 수확이 끝난 후 남은 무를 캐먹고 아버지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밤길을 뒤따라오던 달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밭도, 물놀이하던 개천도 송두리째 없어졌다. 그 자리에는 고층아파트가 서 있다. 추억만이 아니라 그 시절 나와 오늘의 나를 하나로 엮어주는 삶의 과정이 토막토막 잘라진 건 아닐까?

다른 목적을 위해 그 추억을 나눈 친구, 이웃을 우리 스스로 떠나보내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 도심 재개발 정책이다. 살고 있는 집이 불편하고 위험하면 수리하거나 새 집을 지어야 한다. 새 집이 헌 집보다 편리하고 비싼 것도 당연하다. 오른 집값 덕택에 부자가 되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도심 재개발 정책이 도마에 올랐던 이유는 집값 상승의 대가로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세입자나 새로운 고층 아파트에 입주할 능력이 없는 이웃을 내모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2008년 서울시 뉴타운 정책이 한창일 때 서울 난곡 밤골 마을에 살던 주민의 말이다. “40년 넘게 살았는데 헤어지니까 안 좋지. 늙어 죽도록 여기 살았으면 좋겠어. 벌이도 조금인데, 아파트에 들어갈 엄두도 안 나고. 이곳이 난방이 안 돼서 석유를 때니까 돈이 많이 드는데 도시가스만 넣어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해서 그냥 여기 살았으면 해요.”¹) 더 오른 집값이나 편리함을 위해 뒤로 미루어두거나 포기한 것의 가격이 만만치 않음을 발견한다.

 

우리가 인간답게 사는데 중요한 것을 덜 희생하는 재개발은 없을까? 독일 프라이부르그시에 보방(Vauban) 신도시가 있다. 주민들이 함께 프랑스군 기갑부대가 철수한 병영 부지를 어떻게 개발할지를 고민했다. 그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도시, 휴양지 같은 편안한 공간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도시를 꿈꿨다. 생태 친화적이고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살 수 있으며 지역중심 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소셜 에콜로지(social oecology)를 담은 도시를 건설하고 싶었다.

생태를 보존하려고 병영에 있던 가로수를 한 그루도 베지 않고 도시를 설계했다. 환경에 부담을 덜 주며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건축자재를 이용했다. 빗물과 생활배수를 다시 사용하고 빗물이 스며들 수 있는 공지를 넓게 확보했다. 자동차 없는 도시가 되도록 단독주택 대신 4층 공동주택을 지어 적정 인구밀도를 유지해 주택단지에 전차가 들어오게 했다. 모든 집에서 전차 정류장까지 350m 이상 떨어지지 않게 설계하고, 신도시 입구에 대형 공용주차장을 설치했다. 더불어 살기 위해 시 당국이 주도하는 임대주택 대신 주민이 자발적으로 합의해 저가격 주택을 구상했다. 4층 공동주택을 분양받은 가구가 함께 의논해 자기들만의 개성을 지닌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모임을 만들고 전문가들이 조언해주었다. 입주 전부터 이웃끼리 사귀어 젊은 부부들이 급히 아이를 맡겨야 할 때 스스럼없이 부탁할 수 있게 되었다. 차가 다니지 않는 길과 마을 곳곳에 있는 소규모 놀이터는 어린이들의 왕국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배려한 무장애(barrier free) 시설을 넓히고, 주민 문화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장소를 확보했다. 경제와 관련해서는 단지 안에 은행이나 외부 자본에 의존하지 않는 융자 시스템을 만들어 투기나 임대 및 분양주택 건설을 인정하지 못하게 했다. 재택근무나 일자리 나누기로 새로운 일자리를 촉진하고, 가까운 지역에 태양열 집열판 설치 업자, 고단열 주택 설계회사, 가전수리공장, 재활용업자 등 미래형 상공업자를 유치했다. 건축자재나 자원, 식품 등을 글로벌 시장이 아닌 지역에서 조달했다. 이렇게 주민이 자기가 살고 싶은 삶과 주택단지가 일치하도록 지었다. 삶의 질과 아름다움이 담긴, 경제적 가치만이 아니라 ‘우리가 지은 집, 우리가 만든 도시’라는 애착심과 ‘우리가 함께 해냈다.’는 성취감을 체험하고 서로 소통을 촉진하는 도시를 만들어간 것이다.

  

지난 10년 사이 우리나라 도시 재개발 정책도 많이 달라졌다. 2006년 대전시 무지개 프로젝트부터 시작해서 최근 서울형 도심 재개발 사업까지 재개발의 목적을 돈에서 주민의 삶의 질로 바꾸어 가고 있다. 가난한 동네를 철거하는 대신 지방자치단체의 온 역량을 동원해 전기, 가스, 수도 등 기초시설을 개선하고, 도로와 주차장, 놀이터를 마련하며, 동네에 벽화를 그리고, 빈 집을 사서 공동 공간을 확보하며, 학교 도서관도 짓고 있다. 그래서 주민이 계속 살고픈 마음이 드는 마을이 되도록 하는 개발을 한다.

바오로 6세 교황은 교회가 사람이 가진 “희망을 함께 품고 있으며 때때로 그들의 희망이 허사로 돌아가는 것을 마음 아파하는 동시에 그들이 충분한 진보를 성취하도록” 도와야 한다(회칙 『민족들의 발전』, 1967, 13항)고 했다. 또 올바른 발전은 “한 인간 전체와 전 인류의 완전한 발전”(같은 책, 42항)으로서 “인간답지 못한 생활조건에서 더욱 인간다운 조건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같은 책 20항 참조) 본당과 가톨릭 사회복지·자원봉사 조직 역시 가정, 단체, 사회에서 영적, 심리적, 감성적, 물리적, 물질적, 경제적 측면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시각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모든 측면에서 더 인간다운 생활조건을 만들어가는 개발에 참여해야 한다. 능동적 참여로 통합적 인간개발이 모든 사람의 연대책임을 향한 부르심(회칙 『진리 안의 사랑』, 2009, 11항 참조)임을 일깨우고, 올바른 구호, 재활, 개발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 단체, 지식, 기술, 체계 사이에 강력하고 한결같은 연계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국제카리타스윤리강령』, 2006, 통합적인 인간개발 참조) 이 참여와 연대를 위해 바칠 수 있는 시간, 열정과 돈이 우리 삶의 소중한 추억, 고향, 이웃에 우리가 매긴 가격이다.

 

1) 출처: 오마이뉴스 “우리 동네 난곡 - 그 많던 이웃사촌은 어디로 갔나?” http://blog.ohmynews.com/nangok/231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