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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영화 이야기
그냥 영화


글 한승훈 안드레아 신부 |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방학이 되어 오랜만에 친구신부와 영화관에 갔다. 웹툰이 원작인 한국영화였다. 판타지 장르였는데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했고 특수효과도 좋았다. 원작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나 원작을 잘 살렸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클라이맥스 부분에 이르렀을 때 한숨을 쉬며 혼잣말을 했다. “또 울어?” 소방관이 죽어 저승으로 가면서 일어나는 내용의 이 영화는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군대비리, 소외계층의 고통 등을 다루면서 결국 마지막에는 가족 간의 사랑으로 관객들을 울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서 감동의 눈물을 이끌어내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장르에 관계없이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은 그리 좋은 방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일본 특파원들이 서울에 와서 해야 하는 ‘일’이 영화관 가는 거예요. 정치·외교적 소재를 다룬 영화가 많아서 이슈를 따라잡으려면 영화를 봐야 한다는 얘기죠.”라고 말한 서울주재 일본특파원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기사처럼 대부분의 한국영화는 장르와 관계없이 사회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고발 영화가 아닌 사극, 멜로, 심지어 판타지 영화까지도 현재 사회의 문제를 소재로 삼고 그것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왜? 관객들이 한국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이 매우 높은 편이다. 사회 부조리에 대한 분노, 평등에 대한 갈구 등 다양한 요소들이 영화에도 반영된다. 그렇다면 가까운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영화는 한국처럼 모든 장르에 사회적인 문제를 투영시키지 않는다. 대체로 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반영된 영화가 많다. 대지진처럼 자연재해에 대한 공포가 일상처럼 늘 따라다니는 그들에게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보다는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 나라의 영화는 그 사회의 역사와 문화에서 탄생하고 주로 그 나라 관객들을 위해 소비되기 때문에 그 자체의 성격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한쪽 방향으로만 지나치게 제작될 경우 영화의 질을 떨어뜨리고, 특히 대부분의 영화에 사회성을 반영하는 한국영화의 경우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 외교적 기사를 쓰기 위해 현장이 아닌 영화를 필수적으로 봐야 한다는 그 일본 특파원의 말은 우리나라에서 영화라는 것이 정치와 사회에 의해 이미 도구가 되어버린 것처럼 외국인들의 눈에는 비쳐진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한국 산업화를 위해 일하던 세대를 그리는 내용의 영화가 한참 만들어지더니 요즘은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세대에 관한 내용의 영화가 쏟아져 나온다. 상업영화 제작에 평균 4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들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적용이 되지 않는 것처럼 정부가 바뀌면 바로 제작이 된다. 또한 특정 감독, 배우들의 연출, 출연 횟수에서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영화, TV 드라마에서 정부정책을 반영한 내용들이 마치 PPL(product placement : 영화나 TV에서 특정상품을 소품으로 등장시켜 광고하는 기법)처럼 등장하는 것을 볼 때마다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정치인에 관한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 ‘철의 여인’(The Iron Lady, 2011 제작)은 영국의 여성총리였던 마가렛 대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전혀 미화하지 않고 있다. 이 영화의 감독 필리다 로이드는 “이건 정치 영화가 아니다. 마가렛 대처의 정치적 색채나 정책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남자만 있는 세상에서 여성 혼자서 느껴야 하는 고립과 고독감, 즉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 인물의 삶을 영화적 시선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정치적 성향이 어느 쪽이든 간에 지지하는 특정 정치인을 종교수준으로 미화 하려는 한국의 영화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영화가 정치적 사회적 영향을 반영하지만 정치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나라처럼 대놓고 전체적인 방향을 바꾸지는 않는다.

영화의 시작은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대중들을 위한 것이었다. 다른 예술이 그러한 것처럼 인간이 자신의 삶 안에서 의미를 찾고 의식을 높이는 도구이다. 영화 속에 드러나는 정치, 사회적 요소들은 그러한 목적을 위한 것일 뿐이다. 만약 영화를 정치적 사회적 도구로 이용한다면 그것이 어떤 내용이더라도 영화가 아니라 ‘프로파간다(propaganda, 특정집단을 위한 조직적 선전활동)’ 일 뿐이다. PPL이 아니라 이제 정말 그냥 영화를 볼 수 있는 지혜롭고 성숙한 한국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