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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사목을 하며
안녕하세요(?)


글 정진섭 도미니코 신부 | 교구 병원사목부 담당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안부를 물을 때 처음 하는 인사가 무엇일까요? 아마 “안녕하세요?”일 것입니다. 무심코 하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로 우리는 상대방에게 그동안 잘 지냈는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많이 쓰는 인사말이지만 병원에서 환우들을 만날 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은 조심스러운 표현입니다. 환우들의 삶은 ‘안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소 즐겨 입던 옷과 잠시 이별하고 어색한 환자복을 입어야 합니다. 아늑하던 자신의 집에서 나와 낯선 병실에서 일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환우들은 어색하고 낯선 환경 속에서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검사들이 이어지고 영양제를 비롯한 여러 개의 링거가 있어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게다가 암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를 받게 되면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는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밤에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병실에 가서 환우들과 만날 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대신 “처음 뵙겠습니다.” 내지는 “오늘 좀 어떠세요?”라고 인사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의 삶을 하나씩 풀어 놓습니다. 어떤 분들은 죽음이 너무 두렵다고 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하십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 용서를 청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십니다.

죽음이 두려웠던 한 환우는 처음에는 덤덤하게 “삶이 다 그렇죠.”라고 하시며 죽음을 받아들이시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안 좋아져서 병자성사를 드리려 할 때 그분은 제 손을 잡으며 “신부님, 죽기 싫어요. 살려주세요.”라고 울부짖으셨습니다. 남겨질 가족에 대해 걱정하시던 한 환우는 “아들이 결혼할 때 부모석에 앉아서 축하해주고 싶은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십니다. 또 다른 환우는 “아내에게 미안한 것이 참 많은데… 고생만 시켰는데… 잘해 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마지막까지 고생만 시키네요.”라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시던 또 다른 환우는 “저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하십니다. 또 어떤 분은 “제가 잘못했던 동생에게 용서를 청하고 싶어요.”라고 하십니다.

환우들은 어색하고 낯선 환경 속에서, 두렵고 불안한 마음 속에서 자신만의 여정을 하십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치 피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의 주제로 나름대로 피정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드리는 것뿐입니다. 그 시작은 “오늘 좀 어떠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 질문은 ‘제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릴게요.’라고 다짐하는 순간입니다. 그러한 다짐 속에서 환우들과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저는 환우들의 이야기를 경청합니다. 그러한 경청 속에서 환우들의 마음에 공감하려고 노력합니다.

환우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경청의 자세로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 말씀을 들으니 제 마음이 아프네요.” 등의 공감 반응만으로도 환우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경청과 공감’, 이것이 환우들을 만나면서 제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환우들이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고 용기를 드리기 위해 질문도 하고 지지도 하지만 큰 부분은 경청해드리고 공감해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안녕’하신가요? 여러분들 주위는 ‘안녕’한가요? 주변에 눈을 돌려 보면 의외로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으실 것입니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뒤에 진정으로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그래, 요즘 좀 어때?”라고 물어보세요.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시고 공감해 주세요. 해결이 아니라 그냥 들어 주고 마음으로 함께해 주세요.

‘안녕’이라는 단어는 인사를 넘어 평안함을 의미합니다. 상대방이 진정 평안해지는 것은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마음에 공감해 준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누군가 나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고 나의 감정에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