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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더불어 살기 위한 존중(Respect)


글 도건창 세례자요한 | 카리타스복지교육센터 소장

 

오스트리아 빈 카리타스학교에서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노인간호조무사 양성을 받았다. 급우들 가운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온 20대 초반의 여학생이 한 명 있었다. 이슬람 신자인 그녀는 이슬람 달력으로 아홉 번째 달에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하는 ‘라마단’ 전통을 지켰다. 한 주간 3일을 현장에서 실습하는 과정이어서 금식하며 일하는 것이 힘들 것 같았다. 어느 날 그녀에게 일하면서 금식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지 물었다. 그녀는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배가 고파지면 정신이 맑아지고, 나눔에 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되어 전혀 힘들지 않고 기쁘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면 늘 놀거리를 찾던 그녀가 그날은 달리 보였다.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이슬람 신앙과 전통에 관해 물어보게 되었다. 그녀와 대화하며 이슬람에서는 종교의 신념이 다른 사람을 관대하게 대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 현장실습을 하는 성 엘리자베스 요양원에서 같이 일하는 나이지리아 출신 간호조무사 선배가 일하다 말고 짧게 이슬람 기도를 바치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녀가 기도할 때는 잠시 자리를 비켜주고, 그녀가 해야 할 일을 거들어주었다.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도 늘어갔다.

성 엘리자베스 요양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무렵 나는 독특한 말습관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분명한 대답, 특히 거절이나 반대의사를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웬만하면 “아니오.”라고 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온 문화 탓이었다. 덕분에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 결정이 너무 더딘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것은 팀으로 함께 일해야 하고 언제든지 위급한 순간이 생길 수 있는 요양원에서는 좋은 습관이 아니었다. 고민이 되었다. 고치고 싶었지만 잘 안 되었다. 그런데 자주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진 나이지리아 출신의 그녀가 큰 도움이 되었다. 팀 회의를 하다가 상급자나 선배 동료의 질문에 내가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면 그녀는 “요한네스가 저렇게 이야기하면 자기 생각은 선생님 의견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요한네스,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라고 물어주었다. 그녀가 나의 문화 통역사가 되어준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름을 경험하고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만남도 깊어졌다.

사회복지의 현장에서도 다른 문화나 종교 관습을 가진 이웃과 함께 일할 기회가 많다. 생명사랑나눔운동본부처럼 다른 나라를 돕는 부서도 있고, 가톨릭근로자회관이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처럼 이주노동자나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가정을 돕는 일을 위한 전문기관도 있다. 그 기관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서로 다름이 서로 잘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안다. 적어도 다름은 더 긴 만남과 대화, 곧 더 긴 시간을 요구한다.

 

지난 대림특강 때 강의를 해주신 신부님께서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는 성경말씀에 대해 “친구를 위해 나의 시간을 내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시간을 존중이라는 태도로 채워야 한다. 존중(尊重, Respect)이란 말마디가 가리키는 태도나 행위는 어떤 것일까? 존중이란 말의 영어 단어는 Respect이다. respect는 ‘뒤’나 ‘다시 한 번’을 의미하는 접두사 re와 ‘본다.’라는 뜻을 가진 spect를 합친 말마디다. 여기에서 ‘본다.’는 ‘우러러 본다(look up to)’는 의미다. 존중으로 번역되는 영어 respect는 지나쳐 버릴 수 없이 소중하고 귀해서 뒤돌아서 다시 한 번 우러러 보는 자세나 행동을 가리킨다.

국제카리타스윤리강령은 가톨릭교회 사랑실천조직(Caritas)이 다른 문화, 종교, 신념을 가진 사람과 함께, 그들을 위해 일할 때 추구해야 할 기본 가치로 존중(Respect)을 꼽았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다른 사람을 존엄한 인간으로 대접하는 데에는 물질적 도움은 물론 전통, 종교와 같이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신념에 대한 경의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국제카리타스는 여성을 교육시키지 않는 관습, 여성할례, 명예살인과 같이 인간 존엄성과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관례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가톨릭교회의 이름으로 사랑실천 활동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필요한 돈이나 재물을 그들과 나눌 뿐 아니라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인정과 경의 역시 그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미국에서 시민권운동을 하던 유색인이 Respect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 것은 백인들이 자신들도 동등한 인간으로 보아달라는 갈망과 요구를 표현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국제카리타스가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마음과 자세로 서로를, 특히 더 약한 사람을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랑의 문명’ 건설을 자기 사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국제카리타스윤리강령』 가치 참조.)

모든 이가 차이를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의 기본토대는 상대방 존엄성에 대한 믿음과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가 존엄한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이다. 이 믿음과 희망을 간직하고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믿음과 희망은 스스로 존중받는 체험이라는 양식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다름을 인정받기보다 틀렸다고 매도당하는 것을 더 자주 경험한다. 그래서 우리 믿음과 희망이 영양실조에 빠져 버린다. 바로 그 자리에서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우리의 구원자인지가 드러난다. ‘비록 네가 나를 이 죽음의 틀에 매달리도록 만들었다 해도 나에게 너는 여전히 소중하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소중하게 여긴다.’라고 말씀하시는 그분 말씀을 듣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시작하신 존중이 나와 우리에게 스며들어, 우리도 더 쉽게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우리가 눈앞에 있는 나와 다른 한 사람과 그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할 때 모든 인간이 존엄하며, 존엄한 존재답게 살 수 있다는 기쁜 소식, 곧 복음이 세상을 향해 퍼져나간다. 그것이 나와 다른 상대방을 존중하는 일이 왜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실현해가는 길, 가톨릭교회 사랑실천(Caritas)의 기본가치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깨우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