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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영화 이야기
입소문


글 한승훈 안드레아 신부 |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졸업작품으로 단편영화가 아니라 영화 ‘예고편(Trailer)’을 제작했다. 20분 남짓의 단편영화를 제작한 동료들과 달리 장편 시나리오를 쓴 나는 졸업한 후 제작자들에게 보여줄 예고편이 필요했다. 시나리오는 완벽하게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야기의 주요 포인트와 캐릭터, 그리고 흥미를 끌 만한 장면 위주로 촬영을 진행했다. 졸업작품을 상영했을 때 같은 반 동료가 “내 친구가 네 작품을 보더니 장편으로 만들어지면 꼭 보겠다고 하더라.”며 격려해주었다. 내심 좋았지만 내가 작품을 잘 만들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예고편은 재미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도 작품을 준비할 때 나에게 해주었던 공통된 조언은 ‘자극(Intrigue : 영화를 보도록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예고편의 주된 목적은 스토리를 전부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영화를 보러 오게끔 자극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고편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재미있는 장면으로 구성이 된다. 그러다보니 액션영화인 줄 알고 보러갔는데 정작 액션은 그 예고편에 나오는 것이 전부인 황당한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를 요즘 ‘낚였다.’라고 표현하는데 개봉 초반에 잠깐 관객이 몰리다가 이내 발길이 끊긴다. 그러나 유명한 배우도 없고 엄청난 예산을 쓰지도 않았고 대대적인 홍보조차 할 수 없었던 영화들이 초반에는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면서 엄청난 흥행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흥행 역주행’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현상은 바로 ‘입소문’ 덕이다.

 대학 홍보실에 들어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젊은이들의 흥미를 끌 만한 홍보영상을 만들고 사람들의 주목을 끌면서도 학교 이미지를 높여줄 광고 디자인을 제작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때 어떤 분이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아무리 광고를 멋지게 잘해도 학교 내 구성원이나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평가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즉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광고를 한다고 해도 실제로 현장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좋지 못한 평가를 하면 자칫 허위광고처럼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입소문’처럼 광고 또한 이미지와 컨텐츠가 일치할 때 제대로 된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이 조언은 언제나 좋은 지침이 되고 있다.

부활의 소식은 ‘입소문’으로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죽음처럼 로마인들, 유다인들이 함께 모인 공개적인 장소에서 당신의 부활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발라드리기 위해 새벽부터 찾아온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부활을 드러내셨고 그녀는 사도들에게 달려가 이를 전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입소문’으로 전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도들 앞에 실제로 나타나시어 그것을 증명하셨다. 만약 입소문이 거짓이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을 것이다. 부활에 관한 입소문이 지속된 것은 진실된 체험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험은 입소문으로 전해지고 또 다른 부활체험으로 이어지면서 교회를 형성하고 예수님의 부활이 진리임을 전해주고 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불과 얼마 전까지 한국 사회 내에서 타종교와 비교하여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불교, 개신교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등한 신자 비율이지만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높은 호감도를 유지해왔다. 한국 근대화 역사에 있어서 가톨릭의 역할이 매우 큰 작용을 했기 때문이지만 이미지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의 문화적 유산, 교황청, 성직자, 수도자 등 색다른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신비함과 매력적인 이미지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미지와 컨텐츠가 상반될 때 오는 괴리는 돌이킬 수 없는 불신(不信)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모든 정보들이 공개되다시피한 시대를 살고 있고 이는 우리를 많은 부분에서 지탱시켜 주던 이미지의 종말을 뜻한다. 더 이상 성직자의 검은 긴 수단자락이, 수도자의 베일이 주는 이미지가 한국교회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지금 교회를 통해 매년 전해 내려오는 부활은 입소문이다. 그 입소문 안에 담겨진 그리스도의 부활이 각자의 체험으로 증명될 때 살아있는 신앙이 된다. 우리가 세상의 수많은 거짓된 이미지 메이킹의 일부로 오해받지 않도록 신앙과 더불어 각자의 삶이 진실 된 컨텐츠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