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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신앙
소소한 일상이 주는 가장 큰 행복(1)


글 남리나 카타리나 | 경산시어르신복지센터, 대곡성당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축일에 태어난 나는 세례명을 따서 이름을 지을 정도로 신앙이 깊은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 성당을 놀이터로 생각하며 주일학교에 열심히 다녔고, 중.고등학교 학창시절 자연스럽게 가톨릭 청소년 동아리 ‘쎌’ 활동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가톨릭계 대학교에 진학하여 학교에서도 학과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며 청년시절 또한 신앙이 특별한 것이 아닌 생활의 일부였고, 졸업 후에도 마치 순서처럼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에 사회복지사로 입사하여 지금껏 근무해오고 있다. 사회복지사로 근무한 지 18년차. 매일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울고 웃던 초보 사회복지사에서 어느덧 신입사회복지사들의 슈퍼비전을 주는 중간관리자가 되었고, 풋풋한 아가씨에서 어느덧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세월 따라 두 아이를 둔 바쁜 워킹맘이 되었다. 법인 내 인사이동으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여러 종류의 사회복지기관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현재는 2015년에 경산시 하양읍에 새롭게 개관한 ‘경산시어르신복지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곳은 ‘청춘의 향기를 함께 디자인하는 경산시어르신복지센터’라는 미션 아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60세 이상의 지역주민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지역의 어르신들을 위한 취미여가.평생교육.사회참여활동 등 종합적인 노인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자원봉사자분들이나 지역주민분들은 이곳을 방문하기 전까지 경로당이나 요양원인 줄 알고 오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막상 기관에 들어서면 너무나 밝고 활기찬 어르신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놀라워하시며 우리 지역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에 무척 좋아하시기도 한다. 기관 입구에 들어서면 어느 어르신이 써주신 캘리그라피 작품으로 만든 큰 간판이 바로 눈에 띈다. ‘오늘이 내 생애 가장 젊은 날!’ 이곳에 오시는 분들은 마치 이 문구처럼 내일보다 더 젊은 오늘을 알차게 보내고 계신다.

언뜻 생각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을 이용하시는 분들이 ‘경제적으로 힘드신, 몸이 불편한, 가족들 없이 홀로 외로운’ 분들이 많이 계시지 않을까 여기지만 사실 평범한 은퇴 노인분들이 대부분이시다. 평생을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앞만 보며 달려와 가족들을 위해 일하며 자식을 다 키우고 이제 은퇴 후 남은 삶을 누구보다 알차게 즐기기 위해 아침부터 부지런히 센터에 오셔서 저녁 늦게까지 시간을 쪼개서 배우고, 이웃들과 즐기며,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하신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사회복지’라고 하면 어려운 분들에게 후원금을 드리고, 의료비를 드리는 정도로 많이 생각하신다. 노인복지관에 근무하면서 만나는 분들 중에는 이런 편견을 가지고 ‘어려운 사람들도 아닌데, 후원을 왜 해야 합니까?’라든지, ‘여기 다니는 분들이 우리보다 더 잘 사는데 봉사할 이유가 없네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 사업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나 또한 여기 오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조금은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분을 만나면서 많은 생각들이 바뀌게 되었다.

 몇 달 전, 복지관 사무실에 어두운 얼굴의 연세가 많으신 백발의 남자어르신 한 분이 찾아오셨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뭘 배울 수 있는지를 문의하시는데, 이 어르신은 ‘여기 점심식사가 참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버스타고 혼자 찾아 왔습니다.’라며 말씀을 꺼내셨다. 군인으로 평생 일하시다가 퇴직한 어르신은 자녀들은 성장하여 결혼 후 분가하고, 아내와 단둘이 이 지역에 살다가 치매 증상이 심해진 아내가 대구의 요양병원에 입원하면서 얼마 전부터 홀로 생활하게 됐다고 하셨다. 평생 일만 하면서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된 일상이 많이도 흐트러졌다며, 처음으로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며 아내의 빈자리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동안 아픈 아내를 보살피느라 힘은 들었지만 막상 아내가 가고 나니 병수발을 들더라도 집에 아내가 있을 때가 참 좋았다며, 그나마 아내가 요양병원으로 간 뒤에는 아침에 눈을 뜨고 자기 전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생활을 몇 달간 하고 계신다며 하루하루가 지겹다고 하셨다. 그중 제일 힘든 부분이 혼자 식사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저 아침에 눈뜨면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혼자 음식을 차려먹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자리에 드는 일상이 외로워서 너무 힘들다고 하셨다. 나는 어르신의 회원등록을 해드리고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안내를 한 뒤 저녁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어르신께 오늘 식사가 어떠셨는지 여쭈어 보았다.

“이렇게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밥 한 끼를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없네요. 근래에 내가 먹어본 식사 중에 제일 맛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어르신은 매일 배낭 하나를 메고 한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오셔서 점심식사를 하시고 다시 버스를 타고 가신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딘가에 갈 곳이 있고, 따뜻한 식사 한 끼를 하며, 매일매일 안부를 물어보는 사람이 있는 요즘 더없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사회복지현장에 있으면서 어려운 환경에 있는 분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일을 하다보면 내 마음과 다르게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기도 하고, 내가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소진이 오기도 한다. 매일 사무실 창문 너머로 반갑게 인사하시며 지나가시는 어르신을 바라보면서 ‘행복한 삶이란 지금 내 삶에 만족하는 삶’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소소한 일상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걸 늘 생각하며 살고 싶다.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나의 사명을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기꺼이 응답하는 행복한 동반자가 되겠습니다.’로 지었다. 누군가 필요로 하는 곳에 꼭 필요한 기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오늘도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