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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성지순례기
“일본 성지순례를 잘 다녀왔습니다.”


글 이상옥 엘리지아|대봉성당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외성지순례는 잘 가보질 못했습니다. 제가 빨리 신청했던 것은 일본에서 사제서품식이 있어 더욱 가보고 싶었습니다. 예비모임 때 분원장 수녀님께서 성지순례를 잘 다녀오기 위해 각자 9일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셔서 저도 9일기도를 바치며 준비했습니다. 출발하는 날이 다가오자 제 마음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찼고, 일상의 바쁜 생활을 잠시 접어두고(손자 돌봄) 홀가분하게 떠날 걸 생각하니 무척 좋았습니다.

 

첫째 날 - 3월 19일 월요일

새벽 6시 경에 성당에서 김해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오후 1시쯤 후쿠오카에 있는 식당에서 맛있게 점심식사를 하고 나가사키 우라카미 주교좌 성당에 도착하여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나가사키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입니다. 당시 폭발로 성당의 종이 날아간 곳에 우라카미 주교좌 성당이 새로 지어졌는데 그때 파괴된 성모 마리아 상과 성 요셉 상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얼마나 처참했는지 짐작케 했습니다.

3월 19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미사 강론 중에 신부님께서 여기당의 나가이 다카시(바오로) 박사의 삶에 관해서도 들려주셨습니다. 나가이 다카시 박사는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으로 부엌에서 일하던 부인이 한 줌의 재가 되었고 어린 남매를 두고 1951년 피폭과 방사선 연구의 후유증인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다. 세상을 떠나면서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라.(如己愛人)”는 말씀을 자기 아들에게 유언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나가이 다카시 박사는 전쟁은 절대로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우리 모두가 평화를 위해 노력하자며 온 세상에 호소하는 일로 자신의 일생을 마쳤습니다. 직접 그림도 그리고 동화책도 쓰고 글도 쓰셨는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원한 것들』, 『묵주알』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우리도 평화를 위해 살 수 있기를 묵상하면서 남 탓으로 돌리기보다 내 탓으로 돌리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신부님 말씀을 새기며 미사를 마치고 평화공원으로 향했습니다.

평화공원에는 평화의 기념상이 우뚝 세워져 있습니다. 한 손을 올린 것은 원폭의 위협을 알리는 것이고 다른 한 손을 옆으로 한 것은 세계평화를 상징하는 것이고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죽은 사람들의 명복을 비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평화의 기념상 정면으로 분수대가 있는데 비둘기가 날갯짓하는 모습으로 분수가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분수대는 평화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그 당시 초등학생들이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첫날 순례를 마치고 밤에는 같은 방을 쓰게 된 글라라 자매님과 늦도록 서로의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둘이 함께 오늘 하루를 잘 지내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12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처음 만났는데 긴 얘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가 닮은 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짊어진 십자가도 비슷하고…. 어떻게 이렇게 한 방을 쓰도록 안배해 주셨는지 하느님의 섭리는 참 오묘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둘째 날 - 3월 20일 화요일

오늘은 오우라 천주당, 26성인 순교자 기념관, 여기당, 성모기사회수도원(콜베 신부님 기념관), 운젠 지옥순례를 다녀왔는데 순교자들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너무나 끔찍하게 순교하신 위대하신 성인들, 가족이 있는 다른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대신 목숨을 자처하신 콜베 신부님, 운젠 지옥불, 뜨거운 유황불에 처참하게 돌아가신 많은 순교자들의 영혼을 생각하며 연옥영혼을 위해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우리가 비록 현실에서 목숨을 바치는 순교는 하지 못할지라도 일상의 삶 안에서 좀 더 희생하고 절제하며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는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 시간이었습니다.

 

셋째 날 - 3월 21일 수요일

드디어 사제서품식이 있는 날입니다. 후쿠오카교구 다이묘 주교좌 성당에서는 이한웅(사도요한) 신부님의 서품식이 있고, 나가사키대교구 우라카미 주교좌 성당에서는 김봄(요셉) 신부님의 사제서품식이 있습니다. 우리 일행은 후쿠오카교구 다이묘 주교좌 성당에서 거행되는 이한웅 신부님의 사제서품식에 참석했습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한 분의 사제서품을 위하여 많은 신부님들과 많은 교우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고 우리 대구대교구에서도 전 교구장이신 이문희(바울로) 대주교님, 장신호(요한보스코) 보좌주교님, 이한웅 새 신부님의 동기 신부님들, 일본의 신부님들이 많이 참석하셔서 참으로 영광스러운 사제서품식이었습니다. 저는 서품식 내내 감동스러운 마음이었고 새 신부님께서 부모님께 한국식으로 큰절을 하실 때는 눈물이 났습니다. ‘이한웅 사도요한 신부님! 많은 사람들 중에 주님께서 택하시어 사제로 불러 주셨으니 사제로 끝까지 잘 살아가실 수 있도록 주님께서 늘 지켜주시고 보살펴 주소서. 저도 신부님들을 위해서 기도드리겠습니다.’ 저는 이한웅 신부님을 위해 기도드리며 신부님의 서품 성경문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루카 15, 6)를 다시 한 번 되뇌었습니다.

순례기간 동안 같은 방을 쓰는 글라라 자매님과 첫날밤부터 얘기를 하느라 잠을 두세 시간밖에 못 잤지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첫째 날 자고 일어나니 제 마음은 너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누구와 자꾸 얘기를 나누고 싶고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고 기쁘게 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순례를 같이 온 형제자매님들이 모두 예쁘게 보였습니다. 제 마음은 어느새 기쁨과 평화로 가득 찼습니다. 성모님의 마니피캇 찬가가 생각났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도가 마음속으로부터 저절로 나왔습니다. 참으로 감사드릴 일이었습니다.

 

넷째 날 - 3월 22일 목요일

순례의 마지막 날입니다. 우리는 나비성당이라고 불리는 야마다성당 순례를 하고 이키스키박물관을 견학한 다음 오후에는 후쿠오카 사사오카성당에서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고 후쿠오카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김해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한 분 한 분의 느낀 점과 소감을 나누며 왔는데 모두들 많은 은총을 받았고 특히 사제서품식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하느님께서 이번 성지순례에 불러주셔서 사제서품식에 참석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고 많은 것을 느끼고 묵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특히 사순절에 순례를 하게 되어 순교자들의 삶을 떠올리면서 저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묵상하게 됐던 뜻깊은 순례였습니다. 이 순례를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주님과 사제로 서품되신 신부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참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3박 4일의 순례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