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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직원회 성지순례기
아버지를 닮은 양양성당을 만나다!


글 권인옥 바울리나 | 대덕성당 사무원

 

성지순례를 앞두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오늘은 90세의 아버지께서 삶의 마지막에 선택한 심장 조형술을 위해 입원하는 날이다. 어둠과 비가 오고 가는 새벽에도 갈등을 가지고 출발한 성지순례! “입원수속 하세요.”라는 병원의 연락을 받고 “아버지, 입원수속 하세요.”라고 전하고 보니 달리는 기차는 추억으로 달려가고 있건만 멀뚱히 구경만 하는 이방인이 되고 있는 나!

“삶은 하느님이 선택했으나 죽음은 나의 선택이다.”라고 병원의 진료를 본인이 선택하시는 강하신 우리 아버지. 나에게도 “내가 너한테 있으라고 하고 싶지만 너의 자리에 가야 하지 않겠냐? 다녀오너라.”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에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 성지순례!

주일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하는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떠나는 발걸음에 무거움을 더하더니 우리의 일정과 함께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기차로 하신 분들과 기차여행을 하지 못한 분들의 담소는 모두 소년소녀로 돌아가고 있었고, 스마트폰의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을 알려주고 가르쳐 주는 젊은 동료와 사용을 너무나도 잘하고 있는 나이 든 동료의 뒤섞인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기차 안을 동심의 세계로 돌려놓은 듯하다.

정동진행 기차는 새벽 6시 15분에 동대구역을 출발해 12시 10분 정동진역에 도착했고 모두의 얼굴은 행복 그 자체였다. 누군가의 지각 사태로 대리구 간식이 사라질 뻔한 사건도 지금은 추억이며 미소를 만들어낸다.

 

사무직원 성지순례로 아픈 한국 근현대사를 품은 양양성당을 선택한 우리. 낯선 성지이며 근현대사의 유일한 성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예전에 양양을 지나갈 때 왜 38선 휴게소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처음 38선이 그어졌을 때 양양이 이북이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양양성당에서 교구 사무직원회담당 노광수(그레고리오, 교구 사무처장) 신부님의 주례로 미사가 봉헌됐다. 드라마 각본을 짜도 이렇게 정확하게 맞추기 쉽지 않을 정도로 오늘의 복음은 우리를 위한 복음이었고 강론이었다. 강론에서 삯군이 아니라 착한 목자라는 말씀에서 착한 목자, 착한 양의 모습을 디모테오 신부님께서 보여주셨다. 진정한 양들의 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들 또한 삯군, 즉 도둑이며 강도가 아니라 착한 목자를 따르는 착한 양이기를 청해본다.

낯선 성지 양양성당. 너무나도 소박하고 강한 성지 양양성당과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님. 2019년이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진 착한 목자 기념 양양성당은 1914년 교우들이 모여 만들어진 공소가 양양성당의 모체이다. 38선을 넘는 가장 중요한 곳인 양양성당에서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는 함흥, 연길, 덕원신학교의 신학생들, 수녀, 신부들과 많은 신자들의 피난을 도와주었고, 소련군에 의해 외국 선교사들이 추방되어 비어 있던 북쪽 성당의 양떼를 돌보기 위해 평강, 원산까지 사목하였다.

유엔군의 진군으로 후퇴하던 공산군은 1950년 10월 8일 밤 11시에 포로들을 한데 묶어 산중턱 방공호로 끌고 갔고 총탄이 쏟아졌다. 그리고 얼마 후 사람들이 “살려 달라! 물 달라!”고 소리치는 가운데 “제가 가겠어요. 기다리세요. 제가 물을 드리겠어요.”라고 응답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 같이 있었으나 총을 맞지 않고 사지에서 살아남은 한준명 목사와 권혁기 씨의 증언에 의하면 그 목소리는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님이었다고 한다.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님의 죽음을 본 목사는 “어떻게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온 정신을 집중하여 죽어가는, 또 다른 이웃을 생각할 수 있을까? 가톨릭 신부는 위대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진정한 착한 목자이다.

주님이 주신 삶이지만 죽음의 순간은 스스로 선택한 착한 목자의 모습! “내 삶은 죽음까지 포함이 되어 있어. 그래서 내가 선택하는 거야.” 라고 하시는 나의 아버지. 왠지 더 다가오는 성지였다. 나중에 38선 디모테오 순례길을 꼭 오리라 생각하며 언덕을 내려왔다. 순례길을 걸을 때 난 아마 아버지를 추억하고 있지 않을까? 어느 누가 자신의 죽음 앞에 처연할 수 있을까?

 

나의 머리는 아버지의 시술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 나를 이끌고 나온 나의 동료들께 지금은 감사한다는 말을 전한다. 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렸고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절경에 다시 한 번 하느님의 섭리에 감탄을 보냈다. 비가 조금씩 줄어들면서 안개가 우리에게 절경을 선물하니 우리의 목소리는 감탄의 연속이었다. 잠시나마 아버지를 잊고 설악산의 절경에 감탄했다. 오전의 자유시간이 너무 좋았다. 서로의 감정과 관심이 다른 단체여행에서 자유시간은 행복이었다. 설악산을 보고 점심으로 삼삼오오 모여 막걸리 또는 커피 한 잔에 취해 보니 창밖은 비와 안개가 서로 기 싸움을 하고 코끝을 향한 커피 향은 잠깐의 휴식을 가져다 주었다.

자유시간을 마치고 평창올림픽 메인 스타디움과 스키점프대로 향하는 버스 안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서로의 안부와 사진을 공유하고 담소를 나누고 잠을 청하며 어떠한 상황이든 하루하루가 쌓여서 우리 인생의 한 장면이 나옴을 다시 한 번 깨달아본다.

수호랑과 반다비 인형 앞에서 사진을 찍으니 나이 드신 동료들은 하트를 날린다. 젊은 동료는 나이든 동료에게 이해를 베풀고 나이 든 동료는 젊은 동료에게 사랑을 베푸니 이렇게 웃음이 지어지는가 보다. 특수한 직업의 성향이기도 하지만 참 사랑과 이해가 많은 동료들이다. 평창의 올림픽이 함께였기에 소중했듯, 우리도 함께여서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당연하게 느껴지던 시간들이 소중하게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나의 손을 잡아 주고 함께 걱정하고 함께 웃어주고 함께한 우리 동료들에게 감사하며 이 시간을 마련해주신 교구 사무직원회담당 노광수 신부님과 이 시간을 허락해주신 모든 주임신부님, 그리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