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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신앙
“노래하는 체칠리아입니다.”


글 이정아 체칠리아 | 소프라노

 

내게 세례명을 묻는 이들에게 종종 “노래하는 체칠리아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지금은 성악가로 살며 당당히 이렇게 대답하지만 30여 년 전, 처음 노래를 시작했을 때는 당당함보다는 용기를 내어 대답했어야 했다. 나는 노래를 잘해서 성악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유명 대학의 성악교수였던 큰이모와 부모님은 재능을 찾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성악을 시작했기에 나 스스로라도 그렇게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하느님께 매달리고 의지하면서 최선을 다하면 분명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만약 내가 재능이 많다고 느꼈다면 이미 노래를 그만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은 그 부족함이 오히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래를 통한 선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 가장 큰 선물은 사람들과의 인연이다. 존경하는 선생님들, 그리고 음악을 통해 만나는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통해 인생을 느끼고 배운다. 그리고 많은 문화를 접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해외공연을 가게 되면 그곳의 가수들과 관객들에게서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쿠바국립극장은 너무나 가난하고 어려워 합창단의 경우 악보를 구하지 못해 손으로 직접 그리거나 대부분 외워서 연습과 공연에 임했다. 돌아올 때 들고 간 악보와 생활용품을 다 쏟아주고 왔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과 여유가 넘쳐났고 결코 물질적인 것은 행복의 척도가 아니란 걸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또 몽골국립극장에서 ‘나비부인’을 공연할 때 이상한 소리가 객석 곳곳에서 들려 몹시 당황한 적이 있었다. 공연 내내 목석처럼 꼼짝 않고 있던 관객들이 극장이 시끄러울 정도로 울고 있었던 것이다. 무뚝뚝한 그들에게서 상상할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어쩌면 풍족하지 않은 현실에 더 절절히 파고드는 것이 음악이고 예술이 아닐까 싶다. 이것이 음악의 힘이고 가치라고 나는 믿는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오페라 가수’라고 하면 멋진 의상을 입고 진한 분장과 조명 속에서 박수 받는 화려한 직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공연을 위해 반드시 감수해야 하는 시간들이 있다. 악보와 캐릭터 연구가 끝나면 지휘자와 음악을 다듬고, 연출가와 연기 연습,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와의 작업이 끝나면 무대에서 마지막 리허설까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석 달 가까이 긴 시간을 집중한다. 몰입하는 만큼 좋은 공연이 나오기에 준비기간 동안 체력 유지는 물론 어떠한 돌발 상황에도 집중할 수 있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다. 몇 십 명에서부터 몇만 명의 관객 앞에서 가장 두렵게 느껴지는 건 혼자라고 느낄 때이다. 음악은 오랜 시간의 노력을 정해진 시간에 다 쏟아 부어야 하므로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또 과정이 고될수록 연주 후의 허탈감은 무섭게 다가온다. 사실 이 시간이 무대 위보다 더 힘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힘든 무대를 갈망하고 또 갈망하는 이유는 그 속에서 한줄기 빛처럼 기적 같은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기 때문이다. 바라봐 주시기도 하고 손잡아 주시고 때로는 안아주신다는 느낌도 받는다. 무엇보다 나의 노래를 기뻐하시고 좋아하신다는 믿음이 생기면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크고 작은 공연을 통해 기도의 힘 없이는 가벼운 곡 한 곡도 부르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경우 노래를 부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미사와 기도의 시간이다. 이 시간을 통해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불러야 할지 머릿속에 그려지고 느껴진다. 음악이 아니었다면 이처럼 하느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있을까 싶다. 내가 노래한다는 느낌보다 노래하는 하느님의 도구로 쓰인다

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이러한 마음은 자연스레 모든 걸 하느님께 맡기고 무대에 올라가게 한다. 마치 용감한 여전사처럼 말이다.

친한 수녀님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음악은 하느님의 언어이고, 하느님께서 이 언어를 허락해 주시는 것은 세상을 참아 견디고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부족하지만 하느님의 언어를 허락받은 자녀로 그분 마음에 들도록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오늘도 하느님과 음악에 집중하며 하루를 시작해본다. - 다음호에 계속

 

* 약력 : 영남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국립음악원 최고점수, 이탈리아 파르마 오르페오 아카데미 최고연주자과정과 로마 아뎀 아카데미 성악교수법 과정 졸업, 독일 뷔르츠부르그 국립음대 오페라과정을 수료하였다. 2007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한.일.이 3국 공동개막작 <나비부인>으로 오페라대상 특별상수상. 쿠바하바나국립오페라극장 초청 <토스카>로 현지 평론가들에게 2010년 최고의 성악가 선정. 국내외 다수 오페라단 주역 출연. 현재 영남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겸임교수. 대구가톨릭남성합창단, 만촌1동성당 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