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일상 속 영화 이야기
짬짜면


글 한승훈 안드레아 신부 |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수준은 이제 세계에서 인정받는다. 미국 전문케이블 방송에 나오는 영화 수준의 드라마를 보면서 ‘언제 우리는 저런 걸 만들 수 있나?’라고 했는데 10년도 지나지 않아 같은 수준의 영상미를 구현해내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영상미만 발전했다고  해서 한국 영화나 드라마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스토리의 구성력이 과거에 비해 매우 치밀해졌다. 치밀해진 이유는 장르에 맞게 일관성을 가지고 전개되는 스토리 때문이다. 과거의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장르가 달라도 전개는 거의 같았다. 액션 장르든 법정 장르든 정치 장르든 어떤 장르에 상관없이 남녀 주인공 간의 사랑이 반드시 나와야했다. 감독들이 장르에 맞지 않는 억지스러운 멜로를 빼려고 해도 흥행을 걱정하는 제작자들의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비해 일본 영화는 아이디어도 좋았지만 장르에 맞는 치밀한 구성과 전개로 좋은 평을 받았다.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 역시 장르 자체에 집중한다. 미국의 인기 드라마 ‘슈츠(SUITS)’를 한국판으로 리메이크한 드라마 ‘슈츠’에 출연하는 주연배우가 “법정 장르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 것은 억지스러운 멜로나 신파가 예전에는 그만큼 많았다는 뜻으로도 읽혀진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연애에 안달난 사람들도 아닌데 왜 이렇게 멜로 장면을 많이 넣으려고 고집했을까? 아이디어도 스토리도 좋아서 아주 좋은 작품으로 제작될 수 있을 것 같지만 흥행할 수 있는 대중적인 안전장치를 두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에 있어서 흥행은 투자자와 제작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렇게 제작된 영화들이 큰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고 결국 관객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어쩌면 중국음식점에 가서 짜장면도 먹고 싶고 짬  뽕도 먹고 싶은 마음처럼 이것도 저것도 아닌 ‘짬짜면’(짬뽕+짜장면) 같은 영화들이었다.짬짜면은 기발한 아이디어라기보다는 이것도 저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우리의 망설임을 잠시 정당화시켜주는 어정쩡한 결과물이 아닐까? 이런 짬짜면 같은 일은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안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요구하지만 정작 그 아이디어가 살아남을 수 없는 기존의 시스템은 포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시스템에 맞게 다시 만들어 오라고 한다. 혁신도 하고 싶고 기존의 시스템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은 온고지신(溫故知新,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안다.)이 아니라 두 가지 다 누리고 싶은데서 나온 어리석은 욕심이다. 그리고 이러한 욕심은 우리의 신앙마저도 잘못된 길을 걷게 한다.

하느님의 뜻과 세상 욕망의 논리 사이에서 오는 갈등은 평생 우리 신앙인들의 십자가이자 운명이다. 이러한 갈등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 안에 등장하는 신앙의 선배들은 그러한 갈등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 앞에서 가장 나쁜 선택은 ‘짬짜면 신앙’이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뱉어 버리겠다.”(묵시 3,15-16)는 말씀은 하느님과 욕망 두 가지 모두를 누리고 싶은 비겁하고 어정쩡한 선택 앞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해답이다. 물론 뜨거운 신앙이 하나의 신심을 고집하고 “돌격, 앞으로!”를 외치면서 그런 갈등 따위는 없다고 주장하는 위선적인 신앙은 아니다. 겸손하고 신중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면서 그 과정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의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은총을 구하는 것, 그것이 참 신앙이다.

‘짬짜면’, 음식으로서의 선택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삶과 신앙 안에서는 선택하지 말아야 할 메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