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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6월의 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글 황하철 안드레아 신부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매주 하는 복음 나누기 7단계

 

1 주님을 초대한다.

“기도로 이 자리에 예수님을 초대해 주십시오.”

 

2 말씀을 듣는다.

“ ― 복음 ― 장을 펴 주십시오. 어느 분이 ― 절부터 ― 절까지 읽어 주십시오.”(다 읽고 난 후 잠시 침묵한다.) “다른 분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 주십시오.”

 

3 복음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각자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짧은 구절을 선택하여 큰 소리로, 기도하듯이 세 번씩 읽어 주십시오. 읽는 사이에는 잠시 침묵을 지켜 주십시오.” “어느 분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 주십시오.”

 

4 침묵 중에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

“3분 동안 침묵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듣도록 합시다.”

 

5 마음 안에 들려온 말씀을 나눈다.

“이제 각자 주님께로부터 들려온 말씀을 함께 나눕시다. 왜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와 닿았는지, 그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6 모임에서 해야 할 활동에 대하여 토의한다.

“지난 번 모임에서 결정했던 사항을 어떻게 실천했는지, 그 결과와 개선해야 할 사항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이번에는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리 주위에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7 자발적으로 함께 기도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자유롭게 기도합시다.”

 

 

6월 3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 마르 14,12-16.22-26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르코복음 14장 12-16.22-26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12 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3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14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15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16 제자들이 떠나 도성 안으로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2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23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2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26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은 예수님께 무엇을 질문합니까?(12절)

-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이르십니까?(13~15절)

- 도성 안은 어떠한 상황이었으며 제자들은 무엇을 합니까?(16절)

- 22~24절을 다함께 소리내어 읽어봅시다.

- 예수님께서는 언제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고 하십니까?(25절)

-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어디로 갑니까?(26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무교절’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을 먹는 시기를 말합니다. 이 축제는 하느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오는 급박한 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축제로, ‘해방절’, ‘과월절’, ‘파스카’ 축제라고도 불립니다. 이 축제는 금요일 밤부터 시작되고, 그날 낮에 축제에 사용할 양을 잡아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런 시간적 배경의 연장선에서 성체와 성혈이라는 새로운 음식을 영하는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탄생하게 됨을 선포합니다.

제자들은 늘 하던 대로 구약의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먼저 묻습니다.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제자들의 관심은 예수님께서 드실 음식과 장소의 준비에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직접 준비하신 장소로 제자들을 안내하십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도록 안내하는 사람이 물동이를 든 남자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물동이를 나르는 일은 여자들이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교부들은 이 남자의 물동이를 파스카로 인한 세례수를 담은 물동이로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아무튼 마르코는 이 일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당신의 일을 치밀하게 준비해 두셨음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안내된 ‘집의 주인’에게 준비된 당신의 방을 달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특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방을 “내 방”이라고 하십니다. 빌린 방을 ‘내 방’이라고 하심은 방의 소유자가 당신임을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 그 방을 사용할 주체가 당신임을 부각시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주관자로서 당신 자신이 중심이 되는 자신의 파스카 식사, 곧 신약의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고자 하십니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그리고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라는 말씀을 통해 제자들이 준비한 구약의 파스카 음식은 이제 ‘예수님의 몸’이 되고 ‘예수님의 피’가 되어 새로운 파스카 음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음식은 이제 예수님께서 직접 만드신 음식으로 많은 사람을 위하는 계약을 그 피 속에 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잡수시도록 제자들이 준비한 파스카 음식은 제자들을 위한 파스카 음식이 되어 제자들에게 제공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드시지 않습니다. 당신 자신이 빵과 피, 곧 새 음식이고 새 계약의 제물이 되기 때문에 당신 자신이 그것을 드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준비한 구약의 파스카 음식으로 신약의 파스카 잔치를 행하십니다.

여기서 신약의 파스카 음식은 이전에 제자들이 준비한 것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제자들이 준비한 음식으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파스카를 이루십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바로 제자들이 준비한 파스카 음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예물도 그러합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파스카 축제에 참여합시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하십니다. 예수님의 몸을 모시는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또 그 감사함을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69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6월 10일 연중 제10주일 : 마르 3,20-35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르코복음 3장 20-35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20 예수님께서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한편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25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26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의 일행은 왜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습니까?(20절)

- 예수님의 친척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선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21절)

- 한편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말합니까?(22절)

-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어떻게 말씀하십니까?(23-29절)

-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30절)

- 그때에 누가 왔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31절)

- 그분 둘레에 앉아 있던 군중이 예수님께 드린 말씀은 무엇입니까?(32절)

-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떻게 반문하십니까?(33절)

- 34절, 35절을 다 함께 읽어 봅시다.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집으로 가셨다는 말을 전하며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집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이 분주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그 일행은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일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지만 당신들을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십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삶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이런 예수님의 삶에 대해서, 곧 지나치게 당신의 사명에 집중하는 예수님의 모습에 그분의 친척들은 ‘미쳤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붙들어 막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판단은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들은 소문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과연 예수님 친척들의 반응은 적절했을까요? 누군가가 퍼뜨린 소문이 친척들을 움직이게 했듯이, 오늘날 우리 주위에도 우리를 유혹하는 많은 소문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러한 소문의 진원지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 소문의 근원들 중 하나가 바로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베엘제불’이 들렸다고 합니다. 베엘제불은 히브리어로 ‘바알 즈불(2열왕 1,2)’, 곧 ‘거주(居住)의 주인’이라는 의미로, 그들은 ‘이방신의 우두머리’격인 존재에게 예수님께서 사로잡혔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를 드시며 ‘사탄이라도 한 집안이 갈라서 싸우면 그 집안은 망할 수밖에 없으니 당신은 사탄과 다르다.’는 논리로 그들의 잘못된 해석을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그들, 곧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에게 한마디 덧붙이십니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사람들이 “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용서의 문제는 나약한 우리에게, 곧 하느님의 자비에 기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잘못을 하는 이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는 이 말씀이 우선적으로 율법학자들의 행동을 겨냥하고 있음이 중요합니다. 이들 외에 다시는 성령을 모독하는 이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루카 12,10, 마태 12,31-32절을 참조한다면, 예수님 없이 성령과 함께하는 초대 교회에 힘을 실어주는 말씀일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붙잡으려는 친척들이 도착하는데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입니다. 이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부릅니다. 이 행동들에서 21절에서 보였던 조금의 폭력성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부르는 이들의 행동은 ‘안에서’, 곧 예수님의 곁에서 그분과 함께 있는 이들과 대조를 이룹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님께 필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초대합니다. 지금 예수님께 필요한 이들은 친척이나 가족, 종교인들이 아니라 전우가 아닌가 합니다. 예수님을 구경하는 이들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전우들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필요한 사람들입니까?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얼마나 알아듣습니까? 들을 수 있는 귀와 마음을 주님께 청하며, 이웃들에게 기도와 삶의 모범이 되도록 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399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6월 17일 연중 제11주일 : 마르 4,26-34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르코복음 4장 26-34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26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

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하느님의 나라는 어떻다고 하십니까?(26~28절)

- 곡식이 익으면 씨를 뿌린 사람은 무엇을 합니까?(29절)

- 예수님께서는 다시 하느님의 나라를 무슨 비유로 말씀하십니까?(30~32절)

-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어떤 방법을 통해 말씀하십니까?(33절)

- 제자들에게는 어떻게 하십니까?(34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군중들을 가르치시는 중에 행하신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4,1이하)에 이어지는 비유들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저절로 자라나는 씨’와 ‘겨자씨’에 비유한 것으로,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특징적인 모습을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들도 이것들을 잘 기억하며 하느님 나라를 준비했으면 합니다.

첫 번째 비유는 ‘저절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씨가 자라나서 수확 때가 될 때까지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그리되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느님 나라의 씨는 ‘사람’이 뿌리지만 그것의 성장에는 사람이 관여하지 않음을 강조해줍니다.¹? 사실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하고 우리 자신이 하느님 나라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아주 헌신적으로 온 힘을 다해 몰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열심히 하면 할수록 그것을 키우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절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손길이 당신의 나라를 성장시키고 있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사람이 씨를 뿌리지만, 그것을 키우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두 번째 비유는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시작은 어떤 것보다 작을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는 것을 비유는 강조합니다. 사실 우리는 천국을 간절히 지향하며 얻고자 하지만 그 출발이 비천하고 초라한 경우에는 실망하며 외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겨자씨의 비유는 이런 우리들의 생각과 현실을 반성하게 합니다.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하느님 나라의 일은 세상의 어떤 큰 나무보다 시원한 그늘 속에 우리를 쉬게 할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말씀하지 않으신 이유는 천국이 인간의 언어로 정확하게 담아내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영역에 속한 것이지 인간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라는 방법을 사용하셔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려주시고,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셨던 것입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겨자씨가 어떤 씨앗보다 작지만 땅에 뿌려지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서 하늘의 새들이 깃들이게 된다고 하십니다. 우리 각자가 가진 겨자씨는 무엇인지 나누어보고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사랑의 실천을 하도록 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

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9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1) 그리스 말 문장에서 씨를 뿌리는 주체와 자라는 것을 모르는 주체를 지칭할 때만 의도적으로 ‘어떤 사람’과 ‘그’라는 주어/주체를 명기하며 강조하고 있고, 다른 동사들은 주어를 생략하고 있습니다.

 

 

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 루카 1,57-66.80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장 57-66.80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엘리사벳이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을 때 이웃과 친척들이 기뻐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57-58절)

-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기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려 하였습니까?(59절)

- 60~64절을 다 함께 읽어 봅시다.

-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이고, 이 모든 일이 어떻게 됩니까?(65절)

-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어떻게 말하였습니까?(66절)

- 아기는 자라면서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그는 언제까지 광야에서 살았습니까?(8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오늘은 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입니다. 선포되는 복음은 루카 1,57-66. 80절입니다. 이 복음을 묵상하기 전에 요한의 출생 예고에 대한 말씀(1,5-25)을 읽는다면 묵상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 이야기는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 말씀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태어나는 요한’이 아니라 ‘해산하는 엘리사벳’입니다. 요한은 ‘아기’일 뿐 이름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해산은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베푸신 큰 자비의 표징으로 전해지는데,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는 늙은 여인(1,7.18)이었기 때문입니다. 루카는 세례자 요한 탄생 이야기의 주인공을 어머니 엘리사벳으로 삼으면서 그녀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주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아기의 탄생은 기쁨이 됩니다. 루카는 이러한 탄생의 기쁨 가운데 하느님의 섭리하심을 기억하게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는 아기는 모두 주님의 표징입니다. 탄생 속에서 주님의 자비하심과 섭리하심을 생각할 줄 아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기는 전통에 따라 할례식에 갑니다. 그런데 아기의 이름을 사람들이 지으려고 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아기를 친척들과 비슷한 사람으로 받아들이려고 했음을 의미합니다. 이에 아기 어머니가 반대하며 아기의 이름을 ‘요한’으로 하고자 합니다. 아기는 특별한 아이였고 부모들은 그것을 기억하고 지키려고 했습니다. 이 일은 아버지 즈카르야의 결정으로 끝을 맺습니다. 결국 아기는 ‘요한’이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 이름은 하느님께서 주신 이름(1,13)으로, 그가 할 하느님의 일들(1,15-17)을 기억하게 합니다.

우리도 세례 때에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 이름 역시 ‘요한’이라는 이름처럼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그 이름대로 불리고 살아갈 때 하느님의 일을 그려내게 됩니다. 우리들이 그 이름에 맞갖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세례자 요한과 수호성인에게 도움을 청해 봅시다.

즈카르야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벙어리로 있었습니다.(1,20) 하느님의 일이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진 바로 그 순간 즈카르야는 비로소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혀가 풀린 그가 한 최초의 행동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즈카르야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꾸중, 곧 벙어리 장애를 받아들였고 하느님께서 섭리하신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꾸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꾸중을 외면하며 포기한 채 주님께서 주시는 때를 놓쳐 버리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일들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두려움은 하느님을 체험한 인간이 가지게 되는 반응입니다. 요한의 탄생과 엘리사벳, 그리고 즈카르야의 행동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존재하심을 깨닫게 합니다. 결국 요한의 탄생 이야기는 요한 자신만이 주인공이 아니라 엘리사벳과 즈카르야, 그리고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 축일이 우리 삶에 함께하는 또 다른 주인이신 주님을 찬미하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십자성호를 그을 때 더욱 정성을 들이고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자주 생각하도록 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9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