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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영화 이야기
휴(休)


글 한승훈 안드레아 신부 |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영화를 공부하게 되면서 영화를 볼 때 불편(?)해진 것이 있다. 예전에는 영화를 특별한 의도를 가지거나 목적 없이 재미있게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골치 아픈 평가보다는 내가 봐서 좋아하면 충분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의 감정에 빠져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고 한동안 스토리에 푹 빠져 살았다. 어릴 때는 로봇 태권 V를 보고 나오면 발차기를 하고, 이소룡 주연의 영화를 보고 나오면 용돈을 털어 쌍절곤을 사서 휘두르다가 몸에 멍이 들기도 했다. ‘어른’이라는 타이틀이 붙고 나서도 일본에 가서 “오겡끼데 스까~”를 외친 것은 철이 없다기보다는 영화 ‘러브레터’에 푹 빠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그런데 영화제작을 공부하고 나서는 영화를 보면 제작과정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영화 장면 밖에 있는 제작진들, 촬영, 조명, 음향, 미술 그리고 후반부 작업까지 머릿속에 떠올라 영화에 온전히 몰입하는데 방해가 될 때가 있다. 그 동안은 재미있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 아름다운 영상을 통해 현실의 피곤함과 어려움들을 잠시 잊고 몸과 마음의 휴식을 가졌는데 공부가 되다보니 휴식의 비중이 많이 줄어버렸다. 방학 때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계획이 없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 토익준비, 회화공부, 아르바이트라고 대답했다. 어떤 친구들은 서너 개나 되는 계획을 말하기도 했다. 나는 “방학인데 좀 놀지?”라고 했다. 가르치는 사람에게서 “놀아라.”는 말을 듣는 게 처음이었는지 모두 황당해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학교들이 여름에 수업을 하지 않는 것은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이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며 방학이란 여가활동과 휴식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 충전의 시간이라고 말해주었다. 단 한 번도 방학을 하는 이유와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더구나 노는 방학을 보낸 적이 없는 학생들이 안타까웠지만 이는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쉬는 것’, ‘노는 것’에 대해 일종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정부의 주도 아래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고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결과를 이룬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것은 인간으로서 최소한 누려야 할 의식주 문제의 심각한 상황을 극복하고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여유 있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어느 정도 경제발전을 이룬 현재에도 휴식과 여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우리 사회 안에 존재한다. 그러한 시각은 사람들을 의심하고 감시하는 행위로 이어지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일에 대한 의미를 퇴색시킨다. 사람들은 상사에게 보이기 위한 겉치레 행위에 집중하게 되고 그러한 분위기가 형성되면 공동체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바이올린을 보관 할 때는 온도와 습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주 이외의 시간에는 줄을 풀어놓는 것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만약 계속 줄을 감아놓은 채로 보관하거나 줄이 팽팽한 상태로 장기간 보관하면 다음 연주 때 음이 맞지 않고 브리지가 휘거나 앞판이 주저앉게 된다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의심하고 감시하고 나사처럼 조이면 다음 일을 할 수 없고 사람들의 마음은 돌아서며 공동체는 주저앉게 된다. 쉴 수 있어야 한다. 쉬도록 해주어야 한다. 쉬는 것은 죄가 아니다. 영화를 보고 시답지 않은 비판을 하는 것보다는 잠시 스토리에 빠져 배우들의 마음이 되어보는 것, 그래서 잠시 현실을 잊고 휴식하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영화관람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