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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신앙
“먼저 사랑하고, 모두를 사랑하고…”


글 정효근 스테파노 | 성정하상성당, 포콜라레 운동 정회원

 

어린 시절,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특별한 친구들 덕분에 주일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성인전이나 교회 내의 출판사에서 발행된 많은 서적을 통해 신앙을 키워갈 수 있었습니다. 본당의 또래 친구들은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아주 모범적인 친구들로 신부님과 수녀님, 신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강론을 메모하며 성경을 읽고 서로 나누고 생활에 옮기는 등 지금 생각하면 하느님의 특별한 보살핌 아래 자랐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주일학교 친구들 중 세 명은 훗날 사제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렇듯 대학생이 되어 교리교사를 하면서 다른 또래들처럼 저 또한 성소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고, 하느님께서 저의 이름을 불러주시기를 기다리면서 내면으로 빠져들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럴 무렵에 저는 친구 아버지의 초대로 포콜라레 운동의 젊은이 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포콜라레 운동은 1943년, 모든 것이 파괴되어가던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탈리아의 트렌토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23세였던 끼아라 루빅과 친구들이 그 어떤 폭탄도 무너뜨릴 수 없고 사라지지 않는 “사랑이신 하느님”을 일생의 유일한 이상으로 선택하고, 복음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 예수님께서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신 “일치의 영성”을 세상 곳곳에 가져가고자하는 운동입니다.

 

첫 모임에서 창설자인 끼아라 루빅의 “사랑의 예술”에 대한 담화를 듣게 되었는데, 이것은 제 마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먼저 사랑하고, 모두를 사랑하고,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상대방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사랑하라.”는 구체적인 사랑의 방법은 이전까지의 제 삶의 나침반을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지금 바로 내 주위 가장 가까이 있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함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렇게 사랑의 예술을 살기 시작하자 곧 제 주위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삶을 함께 살기 위해 모임에 동참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 함께했던 젊은이 중 두 명은 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들어가 훗날 사제가 되었습니다.

 

몇 년 후 포콜라레의 젊은이 모임을 도와주시는 어떤 분이 “너의 성소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시며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요한 14, 21)라고 하셨으니, 형제를 사랑하다 보면 언젠가는 명확히 알게 될 것이라는 답을 주셔서 성소로 인한 제 내면의 고민보다는 형제를 사랑하는데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포콜라레 운동의 젊은이들과 더불어 활발한 신앙생활을 해오던 중 저는 한 대기업의 기획실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은 온통 일로만 가득한 힘든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직장 내의 생활은 항상 메마르고 사랑이 없는 듯 했고 모두가 한 가 지 목표를 향한 지시와 복종만이 있는 것 같았는데, 어려움이 커질수록 저는 바로 이곳에서 시대사조를 거슬러가야 함을 느꼈 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나는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고 결심 하면서 차츰 사랑을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사무실을 청소하고, 동료들의 책상을 닦고, 차를 준비하면 서 그 안에서 그렇게 조금씩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게 되었고 오래지 않아 제 주위에 사랑이 조금씩 싹트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 포콜라레 운동의 젊은이들과 함께 사헬지방의 사막화를 막는 것을 돕는 활동으로 준비하던 공연에 직장 동료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마침 회사 내의 직원 가족이 큰 질병에 걸려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그 직원을 도울 방법을 고심하다가 수혈이 필요하다는 정보를 듣고 헌혈증을 모으고 회사로 헌혈차를 불러 헌혈 운동을 통해 직원 돕기 활동을 벌였습니다. 회사 내에서 헌혈증 모으기와 헌혈 운동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 부서는 점차 가족 같은 분위기로 변모되었고, 동료들의 모습은 마치 착한 사마리아인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도 직장생활은 여전히 숨 막히는 현실이었지만 항상 저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휴일도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고, 그러면서 많은 성과를 내어 회사 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안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진실 된 삶에 대한 목마름은 늘 커서, 모든 일에 앞서 영성의 삶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놓치지 않았고, 그 만남이 세상의 시대사조를 거슬러가고자 하는 결심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 다음호에 계속

 

* 약력 : 서울의 모 자동차 회사 전략기획실, 경영기획실 근무. 현재 대구의 자 동차 부품 제조사에서 전문경영인으로 근무 중이며 포콜라레(Focolare : 국제마리아사업회)운동 정회원으로 일치의 영성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