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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고해성사를 하거나 면담을 하다 보면 사제에게 상처받아 오랫동안 성당을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습니다. 수도자의 모습에서 실망하기도 하고, ‘신자가 어떻게 저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우끼리 상처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교회의 실망스러운 모습에 상처받고 힘들어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아예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우리가 믿는 건 하느님이시니 하느님께 대한 마음마저 저버리지 말라고 조언을 해 드리지요. 사제나 수도자나 일반 천주교 신자들도 모두 인간이니 잘못을 범할 수도 있고 인간적인 약점을 드러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 신앙의 근본인 하느님마저 외면한다면 너무 슬픈 일일 것입니다. 불경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손가락을 따라 달을 보아야 한다. 그런데 만일 손가락을 보고 달 자체로 여긴다면, 그 사람은 어찌 달만 잃었겠는가, 손가락도 잃은 것이다. 왜냐하면 가리킨 손가락을 밝은 달로 여겼기 때문이다.”1)

‘견지망월(見指忘月)’, 손가락을 보느라 달을 잊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손가락은 달을 가리키는 도구일 뿐입니다. 달을 가리켜 사람들이 달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손가락이 할 일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달을 쳐다보지 않고 가리키는 손가락에 집착할 때가 많습니다. 손가락이 굽었다느니, 손톱에 때가 끼었다느니, 손톱을 너무 화려하게 꾸몄다느니, 그러면서 정작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은 보지 못하지요. 불경의 원래 뜻과는 차이가 좀 있겠지만 이 이야기를 예로 들어 사람들에게 말해 주곤 합니다. 사제든 수도자든, 신자 공동체를 이루는 교회나 우리가 참여하는 전례, 봉사활동까지도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는 것들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일 뿐이지요. 그 궁극적인 목적이란,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며 하느님과 하나 되는 것, 바로 우리의 구원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사람인지라, 사람에게 집착하고 눈에 보이는 현상만 좇다가 실망하기도 합니다. 달은 바라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바라보다 실망하는 격이지요.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 23,3) 예수님께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며 하시는 말씀을 접할 때마다 사제로 살아가는 저를 꾸짖는 말씀 같아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저의 나약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나는데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바라보도록 노력합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는 것이 어려우니 사제, 수도자, 주위 이웃들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집착하고 그들 때문에 눈이 가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손가락을 보느라 달을 잊어버리는 것(見指忘月)’이 아니라 ‘달을 보면 자연히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잊어버려야(見月忘指)’ 할 것입니다.

1) 능엄경(楞嚴經)2. “如人以手指月示人. 彼人因指當應看月. 若復觀指以爲月體, 此人豈唯亡失月輪, 亦亡其指. 何以故, 以所標指爲明月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