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의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프로젝트 이야기
마르지 않는 우물, 희망의 목장


글 김동진 제멜로 신부 | 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 주임

 

불륜녀와 함께 도시로 도망간 인디오 시장은 한참동안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브라질계 지하수개발업체는 아무런 결과도 없이 돈 오라시오와 함께 마을을 떠나 도시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도시와 떨어져 있는 마을 위치상 한 번에 큰 장비들이 들어오는 것이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들게 됩니다. 하지만 물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지불할 이유가 없고, 따라서 저희가 잃을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늘 선교지의 일은 예상을 뛰어넘는 일의 연속입니다. 돈 오라시오가 마을을 나간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독일인들은 기술자들을 보내 물도 나오지 않은 지하 공간에 펌프설치를 시작했습니다. 펌프만 설치한 것이 아니라 펌프 위에 작은 조립식 집을 짓고, 집 근처 10미터를 고급 철제 펜스로 단장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물이 나오지 않았는데, 거기에 의미 없는 투자를 하는 것을 보고, 저는 더 이상 지켜 볼 수 없었습니다. 먼저 멀리 볼리비아 다른 주에서 지하수업체를 운영하는 한국인 백 사장님께 연락을 했습니다. 백 사장님은 한국 코이카(KOICA) 단원이었던 간호사 선생님의 소개로 알게 되어 지하수 개발사업을 시작하면서 늘 자문을 구했던 분입니다.

백사장님께 이런 저런 상황을 설명하니, 지하수 개발한 곳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드리니, 이런 답변을 해오셨습니다. “신부님, 적어도 충분한 수량이 나오지 않은 것은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물이 나왔으면, 지하수가 흘렀던 물길의 흔적이 사진보다 훨씬 더 커야 합니다. 신부님, 제가 멀지만 가서 뚫어 드리겠습니다.”

 

경상도 출신으로 추진력이 강한 사장님께서 당장이라도 700킬로미터도 넘는 거리에서 30시간을 운전해 중장비를 몰고 오신다는 것을 만류하고 일단 어떻게 된 영문인지 찬찬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 독일인업체는 전문 브로커이고 브라질 지하수 개발업체를 고용해서 물을 팠지만, 120미터까지 물이 나오지 않았고, 미터 당 돈을 받는 사업의 특성상 더 이상 돈을 투자하고 싶지 않았기에 아주 적은 수량이 나왔으나 많이 나온 것처럼 마을 사람들을 속이고, 시청 공무원들과 정부 공무원들을 매수한 후 정부 프로젝트에서 돈을 받아내어 공무원들과 나눠 가졌다는 의혹이 들었고 혹시라도 어리숙해 보이는 한국인 젊은 본당신부도 넘어가면 교회에서도 돈을 갈취해 보겠다는 속셈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이 착공한 곳은 400리터의 물도 채 나오지 않는 지하수 공으로 의미가 없는 개발이었습니다.

아무튼 정황을 보아, 그리고 그동안의 경험을 보아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주일, 거의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참석하는 교중미사를 하고 공지시간 때 마음을 먹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물도 나오지 않는 지하수 공 위에 집을 짓고, 철제 펜스를 주변에 만듭니까? 그 사람들이 정부에 돈을 요구하고, 승인이 된다면 가만히 침묵하고 있지 않을 겁니다.”

 

사실 이곳은 작은 사회라 본당신부의 역할이 종교적 지도자임과 동시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적 지위를 갖는 지도자가 됩니다. 마을의 토지문제로 한 가족의 형제간에 관계가 풍비박산 났을 때도 본당신부가 추장과 함께 분쟁조정을 하 는 등 실질적인 말의 힘이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 본당신부가 공적인 미사시간에 협박에 가까운 메시지를 공포했으니 마을 사람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을 것입니다. 사회정의를 위해 교회의 사회교리에 입각하여 침묵하지 않겠다고 권위있게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겁이 났습니다. ‘이제 한국에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혹시 그들이 앙심을 품는 건 아닐까? 해코지라도 하며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안 하던 사제관 방문 잠금쇠를 확인하는 등 마음이 복잡했지만 다행히 그들은 생각보다 순순히 물러났고, 시청 공무원들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을 덮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일이 마무리 된 건지 그 자세한 내막은 아직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결국 독일인들의 지하수 개발 사건은 웃을 수 없는 촌극으로 끝이 나버렸고, 저는 제일 믿을 만한 한국업체 백 사장님께 바로 구조요청을 보냈습니다.

백 사장님은 700킬로미터나 되는 먼 곳에서 볼리비아 최고의 장비를 가져와 더 빨리 더 좋은 재료를 가지고 일을 처리해주셨습니다. 놀랍게도 독일인들이 한공을 파기 위해 제시한 같은 비용으로, 무려 15개의 천공을 실시해 10개의 충분한 수량을 가진 우물을 6개의 밀림 속 다른 공동체에 뚫어주셨습니다. 원래는 한공을 파기 위해 모금을 했던 것인데요.

 

  이것이 3개월에 걸쳐 연재한 마르지 않는 우물 1차 프로젝트의 전말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한 비양심적인 독일인 사업가의 좋지 않은 의도와 거기에 넘어간 한 한국인 젊은 본당 신부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 우물 하나 파는데 그렇게 돈이 많이 드나요? 보통 그렇지 않던데요.” 하고 물으시던 후원자들, 그때마다 확신을 가지고 저는 바보같이 “저희 지역은 그렇게 듭니다.”라고 대답한 것을 곧이곧대로 믿어주신 후원자들의 사제적 양심에 대한 순수한 신뢰가 만들어 낸 합작품입니다.

지금도 돌이켜 생각하면, 속아 넘어간 제가 부끄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휴가에서 우물 착공 비용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말했던 제 모습이 생각나 헛웃음을 짓고는 합니다. 독일인은 거짓말을 했고, 속아 넘어간 한 한국인 신부는 한공을 착공하기 위해 실제 필요한 금액보다 몇 배나 되는 모금을 했고, 그로 인해 원래 계획했던 한 공동체뿐만 아니라 정말 물이 없어 건기에는 매일 더러운 둑물을 사용했던 어려운 여러 다른 공동체들도 이제는 맑은 물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겪으며 신학생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취제크 신부의 책 『나를 이끄시는 분』이 떠오를 뿐입니다. “하느님 섭리에 맡겨드리고 충실히, 사심 없이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살아갑시다! 하느님 우리를 이끄시는 분! 아멘!”

모든 후원자님들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너무 감사드립니다. 기도 중에 기억하겠습니다. Dios le pague!(디오스 레 빠게 .주님께서 갚아주실 것입니다.)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프로젝트 후원

대구은행 505-10-160569-9 재)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조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