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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사목을 하며
기쁜 성탄 맞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올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글 이종민 마태오 | 교구 병원사목부 담당

 

“안녕하십니까, 요즘 병원 다니는 병원사목부 신부입니다.” 개그프로처럼 이렇게 한 번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병원을 다 니다 보니 또 1년이 다 지나갑니다. 이맘때가 되니 지난 1년간 뵈었던 분들, 환우들, 더러는 이미 천국에 계신 분들, 봉사자들,병원 신우회원들, 원목수녀님들, 병원사목부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한 해 동안 뵈었던 분들에게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까요.

 먼저 병원 원목실에 들어설 때마다 늘 작은 미소로 맞이해 주시는 수녀님과 봉사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처음 병원을 다니던 낯선 시기부터 저에게는 그 작은 미소가 거창한 환영행사가 되었기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성체를 모시고 가는 사제의 앞길을 닦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앞길을 닦아주셔서가 아니라 성체를 모시고 가는 발걸음을 인도해 주시는 것이기에 소중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게 병실에 있는 교우를 찾아내고 예수님을 모시고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파하는 환우에게 말로 위로하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예수님께서 도와주실 겁니다. 참으로 우리를 도와주실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아멘.”

환우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몸져누워 계시면서도 작은 미소로 맞이해주시고 때로는 오히려 격려해 주시는 환우들께 감사드립니다. 너무 아파 어떻게 도와드릴 수 없어 그저 같이 답답해하는 제 마음을 오히려 달래주실 때도 있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렇게 제 마음을 부끄럽게 만드셨던 환우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신우회 회원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한 달에 한 번 함께 모임을 하고 미사를 드리면서 직장에서의 일을 하느님께 올리는 봉헌의 제사로 만들어 왔습니다. 그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병원사목부에서 늘 함께하는 동료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누가 그러시더라구요. “크고 중요해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 때문에, 동료들을 바라보고 그 일을 하게 된다.” 때로는 투덜투덜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주(교)님께서 허락하시는 한, 할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또 감사를 드려야 할 분이 있습니다. 어느 날 어느 병원의 어느 병실에 들어섰는데 무릎수술을 하고 많이 아파하시던 자매님이 그날따라 얼굴이 밝으십니다. “어젯밤에 우리 신부님이 전 화를 주셨어요. 잘 회복하고 있느냐고….”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신부님’은 당연히 ‘본당 신부님’입니다. 멀리 이곳 큰 병원까지 수술하러 나와 있는 본당신자의 사정을 들으시고 안부전화를 하신 모양입니다. 그 전화 한 통이 아파하시던 자매님의 얼굴을 밝은 미소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분이 ‘우리 신부님’입니다. 제가 아무리 자주 환우를 찾아뵙는다 해도 원목신부가 넘어설 수 없는 것은 본당 신부님입니다. 우리 신부님이 원목신부님이 아니라 원통합니다. 원통하다고 하니 뭔가 큰일이라도 당한 것 같지만 원통하다기 보다는 아주 작은 질투라고 해야겠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질투가 아주 작으면 예쁠 때도 있습니다. 아주 작은 질투를 느끼게 하셨던 우리 신부님, 본당 신부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성탄절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답다’고 하니 왠지 거창한 것 같습니다. 성탄절은 ‘아름답다’기 보다는 ‘예쁘다’고 해야겠습니다. 반짝반짝 작은 불꽃들이 거리를 장식합니다. 신나는 캐럴이 울려 퍼집니다. 어린이들도 기쁜 마음으로 성탄절을 기다립니다. 세상을 구원하실 그리스도 구세주라는 분은 작고 예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해맑은 아기의 미소는 바라보는 이의 얼굴에 밝은 미소를 짓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성탄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일출(日出)과 같은 사건이 아니라 반짝반짝 빛나는 별빛 같은 작은 아기의 탄생이라서 좋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던 그날 밤, 그 당시에는 성탄의 사건이 그렇게 큰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육화의 신비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참 하느님으로서 하느님의 외아들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을 따라 나선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 위대하고 거창한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작은 아기의 탄생을 기뻐하고 함께 미소를 지었습니다.

작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거창한 이야기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저 지난 한 해, 저의 잘못을 참아주시고 슬픔과 기쁨을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직 섭섭한 것이 남아 있다면 성탄절을 맞아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너그러운 미소로 그냥 좀 넘어가 주시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우리의 얼굴을 미소 짓게 하는 그 작은 일, 그것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위대하고 거창한 사건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 ‘병원사목을 하며’는 이번호로 끝맺습니다. 그동안 연재해주신 신부님들과 봉사자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