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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신앙
“너는 나의 것이다.”


글 박경희 율리아나 | 복자성당, 가톨릭신문사 편집팀장

  

“이것도 기사라고 써왔냐? … 앞으로 이렇게 써서 오려면 원고 갖고 오지 마.” 휘리릭~. 1999년 8월 1일, 가톨릭신문사에 첫 출근한 날입니다. 같은 신앙 안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필기·면접을 거쳐 어렵게 들어온 신문사에서의 시작은 고단했습니다. 매일매일이 혼나는 일상으로 채워졌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새하늘 새땅’ 학생주보 기자를 한 것을 기사쓰기 경험이라고 하면 해야 할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새하얀, 텅 빈 도화지 같은 저에게 신문사 생활은 알록달록 색깔로 채워지기는 커녕 하루하루가 잿빛이었습니다. 당시, 200자 원고지에 글을 써서 냈습니다. 워드프로세서도 있는데 웬 원고지? 초등학교 이후로 써보지도 않았던 원고지에 기사를 적고, 지우기를 반복하다보니 종이가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진이 빠져 원고를 들고 간 저에게 선배의 첫 말은 머리에, 가슴에 훅 들어와 깊이 푹 파였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꾹 참고 자리로 돌아와 다시 썼다 지웠다… 간신히 원고지를 채워서 또 들고 갔습니다. 오기였을까요. 그 선배에게 또 가지고 갔습니다.

 다른 선배들도 있었지만, 꼭 그 선배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기를 몇 달, 종이 던지는 소리도 줄어들고, 빨간 줄도 조금씩 덜 그어졌습니다. 이것저것 가서 물어보면 처음엔 귀찮아하면서도 세세히 알려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제 글솜씨가 확 늘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사의 ‘기’자는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제가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그 선배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도 이해가 됐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그 선배가 참 고맙습니다. 지금 함께 일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생각이 납니다. 후배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그렇게 관심 갖고 가르쳐주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법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제가 선배의 자리에 섰습니다. 선배랍시고 말은 무섭게, 날카롭게, 겉으로만 위하는 척하며 진심으로 챙기지 않습니다. 사랑과 희생 없이 적당히 생색만 내고 있는 저를 봅니다. 이제는 띠동갑 나이차를 넘는 후배들이 회사에 들어옵니다. 어느 후배가 첫 출근의 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톨릭신문사에 들어오니 아침에 함께 기도하며 일을 시작해서 좋습니다.” ‘뭐야…, 진심이야….’ 그 후배의 말에 의아해하며 순간 저도 저랬던 때가 있었을까 돌아봤습니다. 신문사의 하루 일과는 직원 모두 둥글게 모여 바치는 아침기도로 시작됩니다.

바로 옆 주교좌 계산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삼종기도 후 점심식사, 삼종기도 후 퇴근의 일상이 반복됩니다. 처음엔 저도 그런 신앙인으로서 삶이 녹아든 일상이 신기하기도 하고 좋았습니다. 지금은? 늘 해왔듯, 늘 그래왔듯 습관적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계적으로 삼종 소리에 기도하고 후다닥 퇴근을 준비합니다.

 

같은 신앙 안에서 함께 일하는 곳이라 좋았던 곳이 때론 숨막히고 때론 벗어나고 싶은 곳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 모인 곳이 그렇듯 갈등도 있고, 다툼도 있고, 늘 해도 해도 질리지 않는 뒷담화도 있습니다. 신앙인이기에 기대했던 것에 더 상처받게 되고, 일반 직장과는 다른 상황에서 힘들기도 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제 삶에도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2012년 사순, 엄마가 떠나셨습니다. 물, 물, 물을 달라는 엄마에게 거즈에 물을 적셔 입만 축여드려야 했습니다. 엄마의 마지막을 옆에서 지키면서 예수님의 고통을 느 꼈습니다. 그저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을 물 한 모금 시원하게 마시지 못한 채 엄마는 그렇게 떠나셨습니다. 삶과 죽음,그 마지막 순간에 의지할 곳은 하느님뿐이었습니다. 교만한 저에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기도하며 버텼습니다. 매일 성당을 찾고, 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 없어서 몸을 혹사시켜가며 일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태해지고 하느님을 매일 찾지 않게 됐습니다. 물론 조금이라도 힘든 일이 생기면 성당을 찾아 기도하며 매달리고, 원망하곤 합니다. 못 박히신 주님의 손과 발을 보면서 제 손끝에 가시라도 박히면 아프다 호들갑입니다.

 

  20대, 파스카 청년성서모임 활동을 하면서 즐겨 부르던 곡이 ‘너는 내 것이라.’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내가 함께 하리라.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 너를 보호하리니… 너는 내 것이라.” 지금도 가끔 힘들 때면 이 성가를 부릅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핑 돌기도 합니다. 못나고 부족한 제 곁에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깨닫고 다시 힘을 냅니다. 당신께로부터 멀어지려 할 때마다 다시 불러주심에 감사드리며. 스물다섯 살, 준비 없이 시작한 사회생활. ‘이건 내 길이 아니다.’ 하며 늘 다른 길을 찾던 저를 이곳에 다시 불러주신 것도 주님의 뜻이겠죠.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제 뜻이 아닌 주님 뜻에 따라 살겠다.’는 다짐 잊지 않겠습니다.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라는 말씀을 새기며 따르겠습니다.

 

* 약력 : 박경희 님은 가톨릭신문사 편집팀에서 일하며, 20년 가까이 신문 편집과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 두 딸의 엄마로, 딸들과 친구처럼 지내려 BTS 노래도 즐겨 듣는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