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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이제는 움직일 때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한 젊은이가 소중히 여기는 칼을 지닌 채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 중간에서 그만 실수로 칼을 물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급히 칼이 떨어진 배에다 표시를 해 놓고, ‘여기가 내 칼이 떨어진 곳이다.’라고 했답니다. 배가 멈추자 그는 표시해 놓은 곳을 따라 물에 들어가 칼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강 중간에 빠진 칼이 거기 있을 리가 없지요. 이를 보고 사람들이 그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웃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는 성어입니다.1) 물은 빠르게 흐르고 그 물을 따라 배는 지나가는데,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배 위에 칼이 떨어진 곳을 표시한 채 거기만 바라보고 있으니 어리석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칼을 빠뜨린 곳은 강 가운데라 깊어 물에 들어가는 것이 위험하고 망설여졌겠지요. 그러니 배에 칼이 떨어진 지점을 표시해 두고 배가 안전한 나루터에 닿자 거기서 칼을 찾아보겠다고 하니 늦을 수밖에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은 흐르는 강물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시대의 변화도 너무나 빠른데, 그 흐름을 쫓아가지도 못하고 변화를 거부하고 적응하지도 못한다면 소중한 칼은 잃어버리고 엉뚱한 곳에서 헤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태 9,17)고 말씀하셨지요. 복음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는데도 구약의 율법에만 얽매여 있는 이들은 구세주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고 벌써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교회도 우리 신앙인도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과거의 내 자리만 붙든 채 안주하고 고집부리며 살아간다면 칼도 잃고 웃음거리가 된 어리석은 젊은이와 같은 꼴이 될 것입니다. 당장 배를 멈추고 물속에 뛰어 들어가지 않는다면 소중한 칼을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회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좀 더 준비가 되면’… 이런저런 핑계로 미룬다면 적기(適期)를 놓칠 것입니다. 주저하기보다 곧장 행동해야 합니다. 장자(莊子)도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2)이라고 했습니다. 길은 내가 직접 걸어가야 이루어집니다. 눈앞에 진리의 길이 펼쳐져 있어도 내가 발을 내딛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인생의 진리도 내가 직접 실천해야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리저리 재면서 머뭇거리고 주저한다면 나는 조금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회개하는 것, 사랑하는 것,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 용서를 청하는 것,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일을 하는 것 등 인생에서 이렇게 중요한 일들은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적기를 놓치면 그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흐르는 강물처럼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변하는 와중에도 지켜져야 할 원칙은 있기 마련입니다. 옛 명언 가운데 “수급불류월(水急不流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강물은 흘러가지만 강물에 비친 달은 흐르지 않고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며 밝게 빛난다는 뜻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거기 맞춰 살아가야 하지만, 그렇다고 원칙도 없이 세류에 흔들리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세차게 흘러가는 강물에 휩쓸리지 않고 항상 아름답게 빛을 내는 달빛처럼 늘 우리가 가는 길의 방향을 잡아 주는 것은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1) 여불위(呂不韋), 여씨춘추(呂氏春秋), 신대람(愼大覽찰금(察今)편 참조.

2) 장자(莊子),제물론(齊物論)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