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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과 응답
저마다 자기 길에서, Ad Sum!(예, 여기 있습니다!)


글 윤 에피파니아 수녀 | 예수성심시녀회 청년사도직

 

사제 서품 미사나 종신 서약 미사에 가면 늘 가슴 뭉클함을 느낍니다. 아마도 하느님의 부르심에 부족하지만 ‘Ad Sum!(예, 여기 있습니다!)’이라고 큰소리로 응답하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장 가난한 이들을 섬김으로써 예수성심의 나라를 이 세상에 세우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저희 예수성심시녀회 시녀들은 4년 전 수도회 설립 80주년을 기념하며 오늘의 가장 가난한 이들을 식별하던 중,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소년과 청년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선종하시기 전까지 청소년 사목에 대해 깊이 고민하셨던 설립자 루이 델랑드 신부님의 영성노트를 재조명하면서 그들을 어떻게 돕고 동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렇게 새로이 시작된 사도직이 예성상담센터와 청년사도직이었습니다.

예성상담센터가 종교를 뛰어넘어 심리적으로 아픈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면, 저를 포함한 6명의 수녀가 담당하고 있는 청년사도직은 기존의 청소년국, 청년국, 성소국을 통합한 사도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년 6개월 동안 청년들을 동반하면서 제가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그들이 처한 현실이 생각보다 훨씬 더 팍팍하며, 외로움과 아픔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소를 논하기 전에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너무나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 곁에 계신 하느님, 그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저희가 받은 소명이었습니다. ‘임마누엘’ 하느님을 체험함으로써 그들이 받은 1차적인 ‘부르심’인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에 감사하게 되고, 현대의 시류를 거슬러 그에 맞갖은 ‘응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결혼과 수도 성소라는 구체적인 삶의 방향성을 선택할 용기와 힘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모든 성소는 가는 길은 서로 다를지라도 자신을 벗어나 그리스도와 복음을 삶의 중심에 둘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혼인 생활을 하든, 봉헌 생활을 하든, 사제 생활을 하든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극복하여야 합니다.”(2014년 제51차 성소주일 프란치스코 교황님 담화에서)

 

청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시작한 지역별 청년 기도 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머니와 본당 수녀님의 권유로 참석하게 된 자매는 모임을 시작할 때 그다지 밝은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모임이 끝나 갈 무렵 ‘여기가 성소 모임인 줄 알고 억지로 왔다. 그런데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 너무 좋다. 말 그대로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고 좀 쉬어 가고 이것저것 나눌 수 있고 부담이 없어 참 좋다.’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1년이 지날 즈음에 이 자매가 ‘먼저’ 성소에 대해 언급했고, 지금은 지원자가 되어 열심히 수도생활을 배우고 있습니다. 또 다른 자매는 결혼을 앞두고 기도 모임에 참석했는데, 모임을 통해 하느님을 중심에 모신 성가정을 이루겠다는 원의가 생겼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더디 가는 듯 보여도 오히려 더 빠른 길일 수 있으며 성소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이라는 가르침을 제게 주었습니다.

   

청년들을 동반하라는 이 ‘부르심’은 비단 청년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한 ‘부르심’이기도 합니다. 절망에 빠진 청년들의 이야기에 부모의 마음처럼 애간장이 녹는 아픔도 체험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 한 명 한 명을 바라보고 계신 예수님의 마음도 절절하게 느껴 보았습니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에 지나치게 서둘러서 청년들에게 되려 상처를 준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 제게 주시는 메시지를 발견하며 어제보다 성장하고 있는 저를 봅니다. 이처럼 일상 속에서 ‘부르심’과 ‘응답’의 삶을 살아가는 저에게 이 모든 것은 막막한 두려움이기도 하지만 저를 통해 이루실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기다리는 설렘이기도 합니다. 이런 기쁨을 청년들과 나누고 싶고, 초대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요!

 

성소(聖召)는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그러나 그 응답의 수가 현격히 줄어든 지금, ‘성소의 위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사실 이 말은 요즘 등장한 화두가 아니라 벌써 10여 년 전부터 언급되었고, 실제로 최근 입회자 수를 보며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소의 위기가 수도회의 위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시작된 수도회가 마지막 회원 한 명까지 영적으로 쇄신되어 그 고유한 카리스마를 살아가라는 초대이자 도전이며 또 다른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도전이 우리를 깨어있게 하고 지치지 않고 그들을 동반할 힘을 갖게 합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듯 느껴져도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그 끝을 감히 예측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 안에서 이루실 크신 하느님의 계획을 기대하며 그들이 ‘저마다 자기 길에서’(「교회 헌장」 11) 하느님의 부르심을 발견하고 기쁘게 응답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동반하려 합니다. 그중에 온 생을 하느님께 봉헌하고자 하는 거룩한 결심을 하는 이들을 하느님께서는 분명 선물로 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저마다 자기 길에서, Ad Sum!

 

* 예수성심시녀회 윤 에피파니아 수녀님은 2007년 종신서약을 하고, 현재 청년들의 열린 공간 앗숨에서 그들을 동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