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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의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프로젝트 이야기
성 바오로 공소 건축이야기


글 최용석 스테파노 신부 | 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 보좌

 

저는 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데 로메리오에서 4년째 선교사제로 살고 있는 최용석(스테파노) 신부입니다. 지난 2017년 1월부터 3월까지 첫 한국 휴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휴가를 떠나기 훨씬 전부터 성 바오로 공소에서 공소를 지어달라고 저희에게 지속적으로 청하고 있었습니다. 20명만 들어와도 가득 차서 많은 신자들이 밖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공소로, 장의자도 없어서 매번 미사할 때마다 앉을 의자를 가지고 오는 신자들, 바닥도 벽도 창문도 지붕도 천정도 성한 것이 없어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박쥐들과 함께 미사를 해야 하는 공소입니다. 그래도 신부가 온다고 미리 박쥐 분비물 냄새를 없애기 위해 환기를 시키고 공소 안팎을 청소하는 신자들, 의자를 들고 어린아이부터 노약자까지 모여드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조명도 없어서 옆 전봇대에서 전선 하나를 따로 연결해 전구 하나를 제대 위에 걸어 놓고 미사를 하는데, 한번은 그 마저도 수명이 다 되어 광장에 있는 전구 하나를 빼서 미사를 한 적도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공소 건축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왜 공소 건축을 하려는 마음이 들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본당구역에는 28개 공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공소마다 건물 수준 차이가 많이 나서 변변치 않은 공소에 속한 신자들은 본당과 타공소 신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아픔과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1980년대 독일 신부님께서 지은 공소들은 문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국에서 유명한 건축가를 불러 정말 크고 웅장하게 지었습니다. 각 공소마다 미사를 가는 신부도 그 차이를 느끼는데 그곳에 사는 신자들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속담이 있듯이 저 또한 공소가 없거나 변변치 않은 공소 신자들을 보면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공소 건축을 위해 모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마침 석상희(요셉, 2012~2016년까지 본당 주임으로 사목) 신부님께서 건축한 성 이냐시오 공소를 참고하여 신자들과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본당에서 다 지원할 수는 없지만, 공소에서 구할 수 있는 건축자재(흙벽돌, 목재, 석재 모래 등)는 공소에서 준비하고 본당에서는 운송비와 도시에서만 구할 수 있는 자재들(시멘트, 골격, 페인트, 바닥재, 니스, 못, 유리 등)을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성 이냐시오 공소 신자들도 석 신부님과 같은 방식으로 일했기 때문에 성 바오로 공소 신자들도 아무 불평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설계도가 없는 상황에서 ‘설계하는 데도 돈을 써야 하나?’ 하며 고민했지만 정말 운 좋게도 최근에 지은 성 이냐시오 공소와 같은 25가구가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측정해서 복사하듯이 설계했습니다. 또한 석 신부님과 함께 일하신 레이날도 형제님과 함께 일할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경험이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분이어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동반자와 공소의 협조, 설계의 어려움 없이 시작은 했지만 사실 막막했습니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 신부가 건축을 해본 적도 없는 데다 볼리비아에 온 지 2년밖에 되지 않아서 사목에 필요한 의사소통 외에는 모든 것을 배우면서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휴가를 마치고 건축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주춧돌 축복과 건물 기초 작업을 이미 시작한 신자들의 원의로 바로 건축을 시작하게 되어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많은 신부님을 한꺼번에 만나 인사드리고 싶은 욕심에 일부러 서품식에 맞춰 휴가를 갔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다음 날 주교좌 범어대성당에서 거행하는 첫 서품식에 참석했습니다. 교구장님 이하 많은 신부님들께서 반갑게 맞아주시고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시는 가운데 죽전성당(당시 주임 김상규 신부님), 가창성당(당시 주임 정수철 신부님), 수성성당(당시 주임 서정섭 신부님), 상동성당(당시 주임 이용호 신부님)에서 모금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는지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휴가 중 만나 뵌 보좌주교님께서 미주사제회의를 마치고 저희 본당 50주년을 기념하여 볼리비아에 오실 때 공소 건축 현장도 방문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본당에 돌아와서는 뉴욕 5개 한인성당에서 7월에 열흘 정도 청소년 건축봉사팀이 방문하여 건축을 도와주겠다는 기쁜 소식도 들었습니다. 신자들은 기쁨에 넘쳐 일을 시작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공소회장님, 마을추장님과 25가정이 5개조로 순번을 정해 5주 단위로 일주일간의 순번이 돌아오게 해야 건축이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공소책임자와 그 조수를 제외한 모든 신자들의 인건비는 본인들의 노력봉사로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더운 나라 사람들의 특징인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과 책임을 회피하고 변명하는 성향 때문에 많은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자신들의 성향과 국민성을 이겨내고 건축기초를 끝내면서, 각 가정에서 100개씩 흙벽돌을 만들어야 했고, 전기톱을 사용할 수 있는 형제님들은 나무를 구해야 했습니다. 흙벽돌을 쌓고 나무기둥을 세우고 목재구조를 만들고, 그 다음에는 기와를 얹어야 합니다. 기와 얹는 작업은 처음 할 때 잘해야 하기 때문에 외부 기술자를 불러서 했습니다. 그 다음은 시멘트 미장작업, 바닥재, 전선, 도색 및 니스칠 등이 남았고 가면 갈수록 세세한 작업이 필요하게 되자 점점 공사는 더뎌갔습니다. 또 제때 공사자재들이 도착해야 하는데 도시에서 300km 이상 떨어진 곳이고 비포장도로여서 미리 자재를 사도 공수할 교통수단에 문제가 생기면 자재가 올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이렇듯 미리 걱정해서 계획하고 준비해도 여러 변수가 생겼습니다.

돈은 한정되어 있고, 레이날도 형제님과 그 조수에게는 급여를 드려야 해서 계속 조바심이 났습니다. 경험이 없던 저는 몰랐지만 공사는 결국 시간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뉴욕 한인본당에서 익명으로 많은 후원금을 후원해주셔서 2개 공소를 더 지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익명의 후원자는 자신은 좋은 집에 사는데 주님의 집이어야 할 성 바오로 공소가 너무 초라해 마음이 불편해서 후원을 하게 됐다며 익명으로 진행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넉넉해진 후원금으로 십자고상과 제대, 독서대, 정문까지 주님의 집에 걸맞게 준비했습니다. 신자분들은 종탑도 새로 하고 싶어하셨습니다. 다행히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본당 창고에 종이 하나 남아서 그 종을 꺼내어 잘 정리하여 멋진 종탑도 만들었습니다.

2018년 1월 25일 성 바오로 사도 회심 축일에 맞춰 공소 축복식을 주교님께 청했고, 그날까지도 일정을 맞추지 못해 어린아이부터 노약자분들까지 건축현장에 나와서 작은 붓이나 걸레라도 들고 마무리 작업을 하거나 청소를 하셨습니다. 늦은 밤까지 함께 공소 안에 있으면서 저는 작은 희망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들도 자신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구나.’ 공소다운 내 공소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 주님의 집을 자신들의 손으로 짓겠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에 제 가슴도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1년 동안 지속적으로 목적을 가지고 일해 본 경험이 없었던 공소 신자들은 자신들의 원의 하나로 먼 여정에 뛰어든 것이었습니다. 그 엄청난 결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해했던 저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공소 축복식 당일, 축복식을 처음 해봐서 그날도 참 많이 긴장했습니다. 축복식을 마치며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마무리를 했지만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축복식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공소에는 아직 장의자가 없습니다. 그냥 넉넉해진 돈으로 장의자를 사면 쉽게 해결되지만 다른 공소와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신자분들은 1년 동안 십시일반 돈을 모았고, 지난 12월에 장의자 대금을 다 갚을 수 있었습니다.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을 지면에 다 쓰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지만 모든 정성과 봉헌이 언제나 성 바오로 공소와 제 가슴에, 또한 하느님 나라에 영원히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지난 2년 동안 공소 건축에 동반하면서 많은 일이 있었는데, 공소 건축을 하면서 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으로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긴 여정을 동반하면서 참 선교사이신 성 바오로 사도의 말씀 안에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 말씀으로 부족한 제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성전입니다.”(2코린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