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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사목을 하며
또 다른 아들을 만나러


글 이혜경 루시아 | 경찰사목선교사, 월성성당

 

저는 한 달에 두세 번 경찰서를 방문합니다. 그곳에는 저를 보고 “선교사님!”이라고 부르며 반갑게 맞아주는 아들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군인 아저씨와는 다른 이름으로 국방의 의무를 열심히 하고 있는 의경 대원입니다.

 다른 선교사들이 모두 저마다 맡은 의경 부대에서 활동 중일 때 저는 나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톨릭 선교사입니다, 오늘 방문해도 되겠습니까?”라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어렵게 전화를 하면 “출동입니다. 교육입니다.” 등의 답변으로 거절을 하여 한참을 방문하지 못하였습니다. 경찰서라는 이유만으로도 처음에는 전화걸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주눅이 들었고 한참을 망설이다 어렵게 통화버튼을 눌러 “달서방순대(대구달서경찰서 방범순찰대)입니다.” 하는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또 거절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운 마음에 어렵게 전화를 하곤 했습니다. 군복무 중인 대원들을 만나러 가는 일이지만 계속되는 거절로 속도 많이 상했습니다.

그 작은 전화기 앞에서 버튼을 누를 때는 위축되어 바짝 얼어 있는 저를 보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초라하고 두려움에 떨었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그때는 그렇게 어려웠습니다. 계속되는 거절과 활동 중인 다른 선교사들을 보면서 ‘내가 이걸 계속해야 하나, 내가 과연 할 수 있기나 한 것일까?’하며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시간이 수없이 반복되다가 드디어 대원들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절로 감사의 기도가 나왔습니다.

첫 만남에 신자대원 7명이 모였습니다. 갓 입대한 대원부터 곧 제대를 앞두고 있는 대원들이 작은방에 옹기종기 모여 서로 이름과 세례명을 나누면서 “니도 신자가?” 라며 서로 확인하는 웃지 못할 상황들도 벌어졌습니다. 간절히 원한 첫 만남은 준비해 간 간식을 나누고 서로 인사하는 가운데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고 다음 모임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끝이 났습니다. 그 긴장과 떨림의 첫 만남 이후에도 출동과 교육 등의 일정으로 한참동안 우리 대원들을 만나지 못했고 약속된 날에도 막상 가면 급한 출동 혹은 출동 준비로 만나지 못해 준비해 간 간식만 주고 대원들이 아무 탈 없이 무사 복귀할 수 있기를 하느님께 청하며 돌아오는 날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대원들을 만나는 시간이 더해 갈수록 그 안에서도 여러 가지 고민과 힘듦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기뻐하고 나누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귀한 만남이 계속되었고, 그렇게 대원들은 저의 아들들이 되어갔으며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었습니다. 전역자가 늘어나고, 나오는 대원의 수가 줄어들면 그 아이들은 스스로 “우리가 이래서는 안 된다. 각자 1명씩 데리고 와야 한다.” 라며 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같이 하고픈 후임이어서, 성당에 관심이 있는 대원이어서, 심지어 선임 신자대원을 닮았다는 이유로도 우리들은 함께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 중에서 세례를 받는 대원도 생겨났습니다. 대원들은 선교라는 단어를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몸으로 마음으로 그렇게 달서방순대에 선교의 씨를 뿌렸고 작은 열매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세례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대원이 미사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자기는 주일미사에 갈 수 있는 시간을 내겠다면서 주일미사에 참례하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휴가 후 복귀한 신심 깊은 선임대원도 이 얘기들 듣고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래서 다른 신자대원들도 함께 주일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대장님께 특별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날 이후 신자대원들은 달서경찰서 맞은편에 있는 월성성당에서 매주일 오전 9시 학생미사에 참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월성성당에 견진성사가 있었는데, 제대를 앞두고 있던 선임 대원이 견진성사를 받고자 했습니다. 대장님의 특별 허락 하에 본당의 견진교리에 참석해 입대 전에도 받지 못한 견진성사를 제대 전에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에도 그렇게 함께하셨습니다. 또 모태신앙이라는 이유로 주일미사에 같이 참례하는 전통을 계속 이어가려고 내무반을 돌면서 후임과 동기들을 깨우고 함께 주일미사에 참례한 예쁜 대원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대원들이 정말 좋아하는 선물이 하나 있습니다. 전역선물로 주는 묵주팔찌입니다. 우리 선교사들이 직접 만든 묵주인데 예쁘다고 좋아하지만 제대 날이 얼마 안 남았음에 더 기뻐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별을 준비합니다.

 

선교사란 부르심에 교리도 잘 알지 못하고 잘 가르칠 수도 없는데 “예.” 라고 덜컥 대답해 두려워했던 저에게 하느님은 직무만 주신 게 아니라 엄마의 마음으로 잘 돌볼 수 있게 또 다른 아들들을 선물로 주셨음을 다시금 깨달으며 이들이 전역하는 그날까지 건강히 잘 지내다 무사히 각자의 가족에게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미사와 기도로 함께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미사에 늦게 와 앞자리에 앉아서 미사 중에 분심이 들게 함에도 반갑게 대원들을 맞아주시는 월성성당 신부님과 교우분들에게 이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성탄과 부활에 대원들에게 선물과 때로는 주일 간식까지 챙겨주는 자모회 어머니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