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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방기대교구 에리찌에 · 크리스티앙 부제
하느님의 섭리로


취재 김선자 수산나 기자

  

1월 15일(화) 대구대교구의 2019년 사제서품식이 거행되는 가운데 22명의 부제가 새 사제가 된다. 이 가운데 머나먼 이국땅, 대구에서 사제 서품을 받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Central African Republic, 이하 중아공) 방기대교구의 에리찌에 르두트 폴로마요 잘루아(주교좌 계산성당) 부제와 앙바가 응두구아 크리스티앙 엑수페리(반야월성당) 부제의 소회는 남다르다. 1999년과 2000년 각각 소신학교에 입학한 지 20여 년 만에 사제품을 받는 에리찌에 부제와 크리스티앙 부제를 서품식에 앞서 부제학교가 한창인 2018년 12월의 마지막 주일에 신학교에서 만났다.

2007년 대구대교구 대신학원에 편입한 지 11년 만에 사제품을 받게 된 에리찌에·크리스티앙 부제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앙 안에 살며 자연스럽게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복사단 활동을 하던 어린 시절의 어느 날 아버지에게 받았던 질문으로 신학교는 어떤 곳인가, 사제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하며 사제 성소를 꿈꿨다는 에리찌에 부제, 그리고 아버지의 못다한 꿈을 이어 받아 사제를 꿈꿨던 소년 크리스티앙 부제는 사제가 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돌아왔다. 고국 중아공에서 신학교를 다니다 내전으로 카메룬에서 2년의 신학교 생활 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에게 교구장은 다시 대구로의 유학을 명했다. 에리찌에 부제는 “하느님의 부르심 대로 받아들여 살아왔는데 지금 이 순간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였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며 “오랜 시간 갈망했던 일인데 막상 앞에 다가오니 그저 덤덤하다.”고 말했다. 크리스티앙 부제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사람을 돕고 봉사하게 되어 기쁘다.”며 “좋은 사제, 인간적인 사제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신학교 시절, 언어가 가장 힘들었다는 에리찌에·크리스티앙 부제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모든 것이 힘들었지만 그 중에서도 식사시간이면 함께 웃고 있는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할 때 힘들었다.”며 “그래도 함께 살았기 때문에 빨리 말을 배우고 신학교에 적응할 수 있었다.”면서 교수 신부님과 동기, 신학생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대구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배웠다는 에리찌에 부제는 “타종교와 화합하며 대화하는 한국교회를 보면서 부러웠고, 또한 아시아 문화를 접하고 배울 수 있어 좋았다.”며 “이 모든 것 안에서 가장 으뜸은 이웃을 섬기며 사랑으로 사는 사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에리찌에 부제는 “늘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주교좌 계산성당 신자분들에게 감사하다.”며 “본당에서 만나는 신자들마다 따뜻한 웃음과 사랑으로 환영하고 기도해주셨고, 그분들의 기도로 지금의 제가 있게 됐다.”며 신자들을 위해 늘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크리스티앙 부제는 “제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저를 아들처럼 대해주시고 기도와 후원을 아끼지 않은 본당 신자분들에게 감사하다.”고 거듭 말했다.

사제품을 받고 나면 각각 주교좌 계산성당과 반야월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한 후 고국으로 돌아가 첫 미사를 봉헌하고 다시 대구로 돌아와 사목을 하게 된다는 에리찌에·크리스티앙 부제는 “사랑 안에서 섬기는 사제, 교회와 신자에게 필요한 사제가 되고 싶다.”며 “대구에서 공부하면서 사회복지와 청소년, 소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고국에 돌아가면 대구의 소공동체처럼 모두가 함께하는 하느님의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중아공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가톨릭을 종교로 받아들이면서 사제 출신 대통령을 맞는 등 안팎으로 가톨릭이 행사하는 영향력이 크다. 크고 작은 분쟁으로 국민들이 힘들어 할 때마다 울타리가 된 것이 가톨릭이라고 한 에리찌에·크리스티앙 부제는 “신앙 선조처럼 하느님 뜻에 따라 살며 신자와 교회를 위해 사는 사제가 되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착한 목자, 예수님을 닮은 목자로 신자들을 위하는 사제로 살고 싶다는 에리찌에 부제와 크리스티앙 부제의 앞날에 하느님의 은총이 늘 함께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