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남미 성지순례기
남미 성지순례를 다녀와서(2)
- 멕시코, 페루,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글 정은미 레지나|성김대건성당

 

2. 페루 리마

멕시코에서 밤비행기를 타고 이른 아침에 페루 공항에 도착한 우리 순례팀은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페루 서부 해안의 황량한 지역을 4시간 정도 달리고 나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주변의 삭막한 풍경과는 달리 숙소는 바다와 근접하여 관광지로 조성된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숙소 내에 작지만 아담한 성당이 있어 그곳에 머무는 내내 미사를 할 수 있어 더없이 좋았다. 지도신부님이 처음부터 숙소를 정할 때 성당이 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정하신 것 같았다. 리마에 도착한 날은 마침 페루에서 가이드를 맡은 단테 씨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라 혼배미사를 하게 되어 현지의 결혼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오후 5시 혼배미사로 시작된 결혼식은 페루의 전통 예식과 함께 늦은 밤까지 춤과 노래를 곁들인 흥겨운 축하파티가 이어졌다.

다음날은 페루의 ‘나스카 라인’의 신기한 문화유산과 사막을 체험할 수 있었다. 광야와 같은 이 지역은 탈출기의 광야를 연상시켰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엄청난 규모의 대평원과 거대한 사막을 보면서 남미가 대륙의 나라임을 실감케 했다. 고대 수수께끼인 나스카 라인은 종교적인 의례의 결과로 생긴 것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신비 속에 쌓여 있고 워낙 광활하다 보니 그 전체적인 윤곽을 보기 위해서는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보아야 잘 볼 수 있었다. 황량하고 메마른 건조지대에 독특한 문명이 만들어낸 수많은 기하학적인 모형들과 그림들은 콘도르 문양, 수십 종의 동식물그림, 수백 개의 다양한 선들, 어떻게 어떤 용도로 왜 만들어졌는지 지금도 의문이라고 한다. 기원전 500년의 역사가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는 걸 보면 얼마나 건조한 곳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경이로운 페루의 인류문화유산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위대한 신비를 느끼며 그 오묘한 섭리를 묵상했다.

점심은 수백 년 묵은 선인장이 집안을 가득 채운 식당에서 요리한 현지식 닭고기와 옥수수, 채소 등으로 맛있게 식사를 하고 와카치나 사막체험을 하러 갔는데 일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우리가 도착할 때 즈음은 해가 지기 시작하여 어두운 사막 위를 달리게 되었다. 지프차를 개조해서 만든 버기차를 타고 사막 위를 달리는데 가파른 모래 언덕을 속도제한도 없는지 버기차는 혼이 쏙 빠질 듯이 질주하였고 주변은 사방 천지가 모래 산이었다. 조명을 켜고 달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의 멋진 장관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지만 어느 모래 언덕에서 아래로 야간조명을 켜고 내리 달리는 샌드보딩 체험은 정말 신이 났다.

  다음날은 리조트 인근에 위치한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하느님의 또 다른 창조 신비인 바예스타 새 섬 투어에 나섰다. 바예스타섬으로 가는 도중에 나스카 라인을 따라 만든 건지 바닷가 언덕의 사막에도 거대한 피스코 라인이 있었다. 주변의 바닷가와 섬들은 오랜 세월 파도에 침식되어 기이한 형태의 동굴과 절벽바위들이 있었는데. 그 위로 수많은 새들과 바다 동물들, 물개, 남극에 산다는 펭귄무리, 그리고 난생 처음 펠리칸이란 새도 이곳에서 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신비롭고, 다양한 해양 동물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새 섬 투어를 마치고 우리들은 다시 인구 천만 명 가까운 대도시 리마로 돌아왔다. 이곳은 변두리의 산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달동네로 그곳에서 10년 가까이 선교사로 여러 본당을 동시에 사목하던 지도신부님과 인연이 있는 곳이라 특별한 환대를 받으며 현지인 가정에서 4~5명씩 나뉘어 2박 3일 간의 홈스테이체험을 하게 되었다. 가난하지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깊은 사랑의 정과 친절한 삶의 모습이 깊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페루는 태평양 해안의 건조한 평야에서 안데스산맥을 끼고 열대우림까지 다양한 기후를 가진 척박한 조건에 빈부격차가 심하고 전체적으로 빈곤율이 높은 나라지만 인구의 77%가 가톨릭 신자인 나라다. 홈스테이 가정에서의 첫날 아침식사는 페루의 가정식인 삶은 옥수수와 감자, 삶은 계란과 절인 올리브, 커피, 우유가 나왔는데 우리나라 식으로 그야말로 웰빙 식단이었다. 내가 묵었던 홈스테이집 큰딸 자넷은 스페인어 외에 영어도 아주 잘하고, 밝게 잘 웃는 아가씨로 그의 가족들과 함께 미사도 하고, 동네투어도 했다. 저녁에는 우리가 리마 가족들을 위해 재래시장에서 장을 봐 직접 요리를 했는데 주메뉴로 해물탕, 돼지갈비찜, 무생채 등 한국식 요리를 대접했더니 굉장히 좋아하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다음날은 홈스테이 가족들과 성지순례팀 모두가 함께 시내관광을 나갔다. 리마 시내에 들어서면서 페루를 정복한 피사로의 기마상과 옛 성벽이 있는 작은 공원을 출발점으로 성 프란치스코대성당과 주교좌성당을 거쳐, 시내 중심가에 있는 남미의 첫 성녀인 로사 성녀(1586~1617)의 생가와 성당에 가서 설명을 듣고 기도를 했다. 로사 성녀는 스페인의 부유한 귀족가문 출신으로, 시에나의 카타리나를 모범으로 삼아 평생을 단식과 고행, 자선과 기도로 살면서 어떻게 하면 좀더 주님 수난 고통을 나눠 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침대를 버리고 밤새 기도를 바치는 등 극심한 고행을 스스로 실천했다고 한다. 완덕의 길을 향해 걸어간 성녀 로사의 삶을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리마의 또 다른 성인인 산 마르틴 데 포레스(1579~1639)는 ‘빗자루 수사’, ‘흑인의 성자’로 불리며 생가나 특별한 기념관도 없이 그저 그의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통하여 위대한 활동과 뛰어난 성덕으로 많이 알려졌다. 그는 가난한 메티즈(혼혈인)로, 페루 리마에서 태어나 일찍이 이발사 겸 의학공부를 한 후 도미니코회의 문지기로 들어가 가난한 이들과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인종,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사랑을 실천하여 놀라운 모범을 보였고 수많은 기적도 이루었다고 한다. 이렇게 로사 성녀와 마르틴 성인은 같은 시대에 살면서 서로 상반된 환경과 활동을 했지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위대한 리마의 성인, 성녀로 추앙을 받고 있다. 리마 중심가에 있는 광장과 바실리카의 건물 및 박물관, 그리고 수만 명의 유골이 묻힌 성당과 놀라운 조각과 그림들을 보면서 스페인 점령시기의 비극과 위대함을 볼 수 있었다. 성 빈센트 성당에서 홈스테이 가족과 함께 마지막 저녁미사를 한 후 우리는 3일 간의 리마 일정을 마치고 다음 여정인 파라과이로 출발했다. -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