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2월의 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2월의 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글 황하철 안드레아 신부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2월 3일 연중 제4주일 : 루카 4,21-30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4장 21-30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이 성경말씀이 언제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십니까?(21절)

-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던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된 것은 무엇입니까?(22절)

- 23~27절, 고향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함께 낭독합시다.

- 화가 난 사람들은 예수님께 어떤 행동을 합니까?(28~29절)

- 사람들의 폭행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합니까?(3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은총의 말씀이 선포되는 가운데 그것을 가로막는 말이 나섭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요셉의 아들’은 요셉과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유다 전통에서 누군가의 아들은 그 누군가에 속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투쟁은 이 누군가의 ‘사람’ 아들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거하며 믿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신비( )를 증거하여 믿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라는 말을 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어집니다.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는 속담은 의사를 믿지 못하여 비꼬아 말할 때 사용하는 속담이었습니다. 나자렛 회당에 있는 이들이 이 말을 사용하며 카파르나움에서 행했던 일(마르 1,21-34, 루카 4,31-44)들을 요구할 것을 예상한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던 엘리야(1열왕 17,8-24)와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을 고친 엘리사 예언자(2열왕 5,1-27)에 대한 예를 드십니다.

 

이 말씀에 회당에 있던 이들은 모두 화를 냅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그 말씀의 의도를 알아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 자신을 엘리야나 엘리사 같은 예언자’로, ‘카파르나움을 이방 고을처럼’, 그리고 ‘나자렛을 이스라엘’처럼 비유한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들고 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고 벼랑에서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 예수님께서는 이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그들을 떠나가십니다.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이 ‘하느님을 안다.’고 생각할 때 교만(驕慢)이 개입되고 과오(過誤)가 생겨납니다. 우리의 앎이 겸손 안에 머물며 신비를 묵상하지 않을 때 우리는 오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께 도전하며 급기야 그분을 없애버리려 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의 앎에 대해서 반성해 보게 합니다. 사람이 안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셉의 아들이셨지만 하느님의 아들이기도 하셨습니다. 잘못된 확신이 하느님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시는 은총의 말씀을 우리의 진중함이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처럼 우리 자신도 선입견에 사로잡혀 올바른 것을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버리고 모든 사람들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25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2월 10일 연중 제5주일 : 루카 5,1-11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5장 1-11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1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2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5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7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8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9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10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11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군중이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 그분께서는 무엇을 보셨습니까?(1~2절)

- 예수님께서는 어디에서 군중을 가르치셨습니까?(3절)

-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하던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무엇을 하라고 이르십니까?(4절)

-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시몬의 대답은 무엇이며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5~7절)

-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본 시몬은 어떻게 합니까?(8~9절)

-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신 말씀은 무엇입니까?(10절)

- 그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따랐습니까?(11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겐네사렛 호숫가, 곧 갈릴래아 호숫가에 ‘서 계신’ 예수님께서 당신께 몰려든 군중에게 ‘말씀’을 들려주실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루카는 이렇게 슬쩍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씻는 배들을, 곧 일을 마친 배들을 발견하고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앉아서 군중을 가르치십니다. 호숫가에 ‘서 계시던’ 예수님께서 배에 올라 앉으십니다. 이 ‘앉으심’은 가르침을 주는 스승의 모습을 강조해줍니다. 당시에 랍비들은 앉아서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배는 새로운 가르침의 장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두 척의 배 가운데에서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군중만이 아니라 시몬까지 당신 가르침의 대상으로 삼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이 말씀은 “내려 … 잡아라.”라는 복수형 명령을 포함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시몬뿐만 아니라 배의 모든 사람들에게 명령하셨음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시몬이 대답합니다. 그는 ‘저희’와 ‘저’라는 두 번의 다른 대답으로 응답합니다. 특별히 “저희”는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알아듣고 대표로서 행동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내린 시몬과 그 일행은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게 되고 나머지 한 배도 가라앉을 지경이 될 정도로 가득 채워지게 됩니다. 이를 통해 루카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른 이들은 충만하게 되고 그와 함께 결과를 나눈 모든 이들도 충만하게 됨을 보여줍니다.

 

충만한 가르침을 받은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립니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가르침’을 만난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자세입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이끌림과 두려움, 자신에 대한 순수한 발견과 인정의 대답은 예수님의 또 다른 말씀을 듣게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응답은 베드로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고기를 잡던 모든 이가 하게 됩니다. “그들은 …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제자들을 부른 장면을 전해줍니다. 그들은 시몬 베드로, 제베대오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이 세 제자들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8,51), 영광스럽게 변모하실 때(9,28), 그리고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실 때(마르 14,33) 예수님께서 특별히 따로 함께 하셨던 사도들입니다. 이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루카는 전합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주님 …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라는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죄스러움은 거룩함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거룩한 당신께서 죄스러운 사람과 함께하고자 그들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인정이 하느님의 초대를 이끕니다. 죄인이지만 자신의 죄에 대해 인정할 때 하느님 곁에 함께 머무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함과 함께 있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에 대해 인정해야 함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주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선 제자들처럼, 욕심이나 이기심을 과감히 버리고 주님을 오롯이 따를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매일 말씀을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26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

다.

 

 

 

2월 17일 연중 제6주일 : 루카 6,17.20-26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6장 17.20-26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와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와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누가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습니까?(17절)

- 20-23절을 다함께 천천히 낭독합시다.

-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에게 불행하다고 말씀하십니까? (24-26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서 열두 사도를 뽑으시고(6,12-16)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평지에 서십니다. 마태오 복음서가 ‘산상 설교(5,1-12)’라고 전하는 것을 루카 복음은 ‘평지 설교’로 전하며 사람들과 예수님의 눈높이를 맞추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평지 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눈을 들어” 제자들을 봐야 할 정도로 낮은 곳으로 오셔서 행복과 불행에 관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행복 선언 네 가지와 불행 선언 네 가지가 전해집니다. 이곳에서만 전해지는 불행 선언은 그 수에 있어서 행복 선언과 짝을 이룹니다. 이 수적 균형은 높여진 것은 낮추고 낮춰진 것은 높이며 구원이 보편적으로 세상의 모든 이에게 전해져야 함을 역설하는 루카의 특별한 의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루카는 그 구원의 말씀이 먼저 자신의 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군중과 동일시하며(6,17), ‘제자들에게’(20절) 이 말씀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에는 “지금”(21절) ‘행복한 이들’과 “지금”(25절) ‘불행한 이들’이 함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같은 교회에 함께 존재하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구원을 향해 나아가도록 힘겨운 이들은 격려하고 여유 있는 이들은 질책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서로 그리스도 한 분만을 바라보며 서로 위로하고 나누며 구원으로 함께 향하기를 바라십니다.

 

행복한 이들은 가난한 이들, 지금 굶주리는 이들, 지금 우는 이들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이들, 의로움에 굶주리는 이들, 슬퍼하는 이들의 행복을 선포하는 마태오와 비교할 때 루카는 영적이고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가난과 슬픔보다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가난과 슬픔을 위로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네 번째 행복에서 언급된 “그날”은 마지막 날이라기보다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이유로 회당에서 박해받고 쫓겨나는 그날이 행복의 날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불행한 이들은 앞서 언급된 행복한 이들과 대응됩니다. ‘너희’ 부유한 이들, ‘너희 지금’ 배부른 이들, ‘지금’ 웃는 이들은 ‘바로 지금 루카 공동체에 함께 있는 이들’입니다.

 

예수님 시대와 루카 시대처럼 지금도 여전히 교회 공동체 안에는 여유 있는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개개인이 느끼는 삶의 무게는 그때와 비슷할 수 있지만 인내하게 하는 여건은 점점 약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조절할 수 없는 분노가 세상에 드러나 불특정 다수를 향해 분출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구원을 향해서 함께 나아가지 않고 나만 가고자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눈높이를 맞추고자 하셨던 그 마음으로 포기하지 말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만이 아니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며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임을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까? 불행한 사람입니까? 복음에서 말하는 행복과 나의 행복은 어떻게 다른지 나눠보고 내 이웃 안에서 참 행복을 구체적으로 살아가도록 합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38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2월 24일 연중 제7주일 : 루카 6,27-38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6장 27-38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2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를 사랑하며 누구를 위해 축복하고 기도해주라고 하십니까?(27-28절)

- 31절을 다함께 천천히 낭독합시다.

- 예수님께서 죄인들도 어떤 것은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32-34절)

- 예수님께서는 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까?(35절)

- 36-38절을 다함께 천천히 낭독합시다.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지난 주일에 이어지는 평지 설교의 두 번째 부분입니다. 행복과 불행에 대한 말씀에 이어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시는데, 그 핵심은 ‘원수에 대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원수 같은 이들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 나를 저주하는 사람, 나를 학대하는 사람, 내 뺨을 때리는 사람, 내 겉옷을 가져가는 사람 등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넘어서는 행위입니다. 곧 자신의 의지를 거슬러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신앙하기에 인간의 한계를 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 곧 천주교 신자들은 해야 하는 일이며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원수 사랑의 가르침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탈출 21,24-25)는 유다인들의 복수동태적 율법을 넘어 지금 이 자리에서 부활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인 우리 천주교 신자들의 표징이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특히 ‘당신의 말씀을 듣고 있는 너희’(6,27)에게 말씀하셨음을 기억합시다.

 

원수 사랑의 근본 원칙은 ‘자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이들에게 해 주는 것’(6,31)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그들에게 잘 해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주는 것’(6,35 참조)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하는 것이며 하느님을 닮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6,35)입니다. 이 말씀은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님의 탄생을 이야기하면서 성모님께 전한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고 불리실 것”(1,32)이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닮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닮을 수 있는 법을 직접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죄인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자녀는 아버지를 닮아야 합니다.

 

심판하지 맙시다. 단죄하지 맙시다. 용서합시다. 그리고 줍시다. 용서와 자선은 우리가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6,38)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한 주간을 살아갑시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자비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우리도 이웃에게 자비(용서·축복·기도)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노력합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43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