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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의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프로젝트 이야기
무학 희망목장(2)


글 김동진 제멜로 신부 | 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 주임

 

전체 25헥타르의 초지조성이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늘 해왔듯이 하루의 바쁜 일정을 마치고, 목장을 둘러보러 갔다가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소 우리 바로 백여미터 옆의 4헥타르짜리 초지를 문득 떠올렸습니다. 그 초지의 경작권은 제가 가장 믿고 신뢰하는 본당 소공동체 리더에게 맡겨 놓았기에 당연히 다른 곳과는 다르게 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임감 있는 사람이기에 얼마나 다르게 경작했을까 기대하며 그곳을 방문하기로 하고 정글 칼을 들고 초지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숲길을 지나며, 멋진 초지를 예상하며 그곳에 도착한 저를 기다린 상황은 처참했습니다. 가장 신뢰하던 소공동체 리더가 책임자로 있는 경작지였건만 그곳에 심겨진 것은 소를 먹일 풀도, 옥수수도 아닌 벼였습니다. 그 황당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전말은 이러했습니다. 소공동체 리더가 4헥타르 경작지의 책임자로서 다른 세 가족을 찾아 1헥타르씩 옥수수를 경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경작지가 습지여서 리더는 옥수수를 심고 남은 10분의 1헥타르에 옥수수보다 수확이 좋은 벼를 심은 것이었습니다. 겨우 10분의 1이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겁니다. 주임신부의 신뢰를 받던 리더가 벼를 심는 것을 보고 그 옆 가족은 조금 더 욕심을 내서 10분의 2헥타르에 벼를 심었고, 그 옆 가족은 조금 더 많은 벼를, 그리고 마지막 가족은 거의 반 헥타르의 벼를 심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훌쩍 커버린 벼 사이에서 싹을 틔운 브라질산 소먹이 풀은 이미 말라죽은 상태였습니다.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이 누구를 위한 것인데? 매일매일 정글 칼로 풀을 베며 팔꿈치에 엘보가 올 만큼 고생했는데 왜 이렇게 이들은 알아주지 않는가?’ 등등의 생각이 났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았지만 저는 정글 한가운데서 혼자 한국말로 소리치고 애꿎은 파파야나무를 정글 칼로 찍어 넘기며 분노를 표출하였습니다. 화가 채 가시지 않은 채 저는 목장 일꾼들에게 경작자들을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본당신부가 화가 많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가족들은 벌써 어디론가 도망을 가서 찾을 수 없었고, 가장 조금 벼를 재배했던 소공동체 리더만 경작지로 헐레벌떡 뛰어 왔습니다. 그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그전에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느꼈던 상처까지 다 담아서 그에게 화를 표출하였습니다. 남미에 처음 왔을 때 먼저 사목을 하던 선배 신부님들께서 늘 말씀하시던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화를 내어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잊어버릴 만큼 제게는 화가 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기껏해야 쌀 몇 가마니를 더 얻게 되지만 본당이 입은 손해는 벌목비용과 경작비용, 수입 씨앗 구입비뿐만 아니라 다음 경작을 위해 1년을 더 허비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 헥타르나 벼를 심은 마지막 가족이 가장 잘못했기에 겨우 10분의 1헥타르만 벼를 심었던 그는 억울함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벌목의 과정들, 그리고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던 그 리더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있는 힘껏 화를 내고나니 혼자 제 풀에 지쳐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그리고 여기에서 배워왔던 내려놓음의 정신으로 리더에게 “할 수 없다.”며 “그냥 마을로 돌아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해결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밭은 망친 상태고 비용은 다 써버렸고 경작인들이 책임을 질 수도 없었습니다. 정글에서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제가 앞장서고 그 리더는 아무 말 없이 저를 따랐습니다. 한 오 분쯤 걸었을 때 갑자기 그 리더가 뒤에서 저를 불러 세웠습니다.

“빠드레!(신부님)” 돌아보니 그 리더는 이미 목소리를 떨고 있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와 나, 그리고 하느님만 보시는 밀림 속에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신부님, 저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밭을 망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참을 수 없는 욕심 때문에 알면서도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아주 짧은 몇 마디의 말이었지만 그 떨리는 목소리는 분명 진심을 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정말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진심이 담긴 그의 사과는 제게 마음의 위안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 미움들도 사라지게 했으며, 놀랍게도 그를 통해 다른 마을 사람에 대한 미움도 치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진심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주고 싶다고 그냥 제 방식대로 주는 것은 사랑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맞는 방식을 찾고 조율하고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도, 무엇보다 무슨 일이든 결코 절망하면 안 되고 언제나 해결책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 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벌써 그 일은 추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망쳤던 그 초지는 이제 푸르른 목장이 되었고, 희망의 목장은 안정적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저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목장에서 하는 일로 화를 내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이 사람들 말로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뜨란낄로! 노 파사 나다.(진정해! 아무 일도 없어.)” 하며 해결책을 찾아 나서곤 합니다. 선과 악, 인간의 나약함 속에서도 활동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이곳 희망의 무학목장을 위한 독자들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볼리비아 후원자들을 위한 영상 QR 코드 https://vimeo.co/315041702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프로젝트 후원

대구은행 505-10-160569-9 재)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조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