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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치매, 사랑탑을 무너뜨리다


글 한교명 안드레아 | 대구가톨릭치매센타 사무국장

 

치매란 ‘다양한 원인으로 인한 뇌손상에 의해 기억력을 포함한 지남력(시간, 장소, 사람을 인지하는 능력), 언어능력, 판단력 등의 지적능력이 저하되고 그로 인하여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의 질병명이 아니라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공통증상인 인지 기능의 저하를 말하는 일종의 신드롬(증후군)입니다.

우리 가톨릭치매센타에는 180여 분의 어르신들이 생활하고 계시는데 전체의 87%가 치매증상을 가지고 계십니다.

 

치매의 초기

2년 반 전에 입소하신 ○○○ 어르신은 부인과 아들, 며느리, 손자와 다복한 가정생활을 유지해 오셨습니다. 그 가정에 근심이 짙어진 것은 3년 전부터입니다. ○○○ 어르신은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돈을 감추었다. 바람을 피운다.” 등의 의심을 하기 시작하시더니 급기야 폭력

을 휘두르기까지 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어르신의 변화에 가족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정신병원에 모시게 되었습니다.(치매 초기에 간혹 남자 어르신들은 폭력성이 심해서 정신병원에 모시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수개월을 정신병원에 계시던 ○○○ 어르신은 처음 가톨릭치매센타에 오셨을 때에는 많이 허약해져 있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차츰 기력을 회복하게 되셨습니다.

 

기력이 회복되신 어르신은 직원 선생님들에게 “집으로 보내 달라. 집으로 가겠다.”고 하시면서 보채기도 하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셨습니다. 선생님들이 달래고 달래다가 힘에 부치니 저한테 부탁하라고 하셨나 봅니다. 이후로 어르신은 저만 보면 “아내가 혼자 식당일을 하는데 내가 도와야한다. 내가 없으면 식당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집에 가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하시다가 집으로 보내주면 소정액의 금품을 제공하겠다고 검은 거래(?)를 시도하시기도 합니다. 마음이 움직일 만한(?) 큰돈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동의(퇴소)하지도 않을 뿐더러 주일마다 찾아오는 가족들과 면회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던 중에도 당신을 요양원에 보내셨다고 역정을 내십니다. 그러나 한두 시간이 지나면 어르신은 “식당 일이 바쁠 텐데 모두 빨리 가보라.”고 재촉하시며 먼저 작별인사를 하고 생활동으로 돌아가 버리십니다. 그렇게 가시고 싶다던 자택에 따라가겠다는 말씀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그러나 다음날이 되면 또다시 제게 검은 거래를 제안하시기에 저는 생활동에만 올라가면 ○○○ 어르신과 눈이 마주칠까봐 피해 다닙니다. 죄송합니다.

  

치매중기, 말기

60대 초반의 ○○ 어르신(女)도 치매센타에 오신 지 벌써 3년이 다 되셨네요. 치매센타에 들어오실 때부터 가족도 못 알아보시고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 몇 시인지, 어느 계절인지도 모르셨지만 밝게 웃으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요즈음 노인복지시설에 입소하시는 어르신의 평균 연령은 85세 정도입니다. 90대의 어르신도 자주 오시니 70대의 어르신은 아주 청년에 속합니다. 그에 비해서 ○○ 어르신은 젊기도 하지만 직원들을 대하는 밝은 웃음과 상냥함(그리고 애처로움)으로 생활동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지요. 그러나 어르신의 밝은 웃음과 상냥함, 직원 선생님들의 사랑도 깊어가는 어르신의 병을 막을 수는 없었지요.

치매가 심해지면 자기 자신도, 가족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혼자서 웅얼거릴 뿐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고 밝고 상냥하시던 표정은 사라지고 결국엔 모든 기능을 잃고 누워서 지내게 됩니다.

직원 선생님들은 오늘도 여전히 어르신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으나 어르신의 대답은 들을 수 없습니다.

 

치매, 사랑탑을 무너뜨리다.

수년전 70대의 어르신(女) 한 분이 입소하셨습니다. 장기요양 2등급으로 신체적 기능은 대부분 정상적이나 치매가 심해서 대화가 불가능하고 혼자 멍하니 계시거나 생활동 내를 자주 배회하셨습니다. 치매는 발병 후 수년에 걸쳐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어르신은 발병 후 1년 내에 인지기능이 상실되고 대화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입소하시기 1년여 전까지만 해도 어르신은 아주 정상적이고 건강하셨던 분으로 그즈음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남편의 정년퇴직 이후 수년 동안 두 분이서 황금빛 노년을 잘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어르신의 남편에게 먼저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주하시던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고 깜박깜박 하시거나 간혹 개인위생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생기곤 하였습니다. 처음엔 연세가 드셨으니까 그러려니 하시다가 병원 진료를 받아본 결과 남편은 치매 초기 증상으로 치매 5등급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이후 남편의 인지기능은 진료 당시의 수준에서 더 나빠지지도 호전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비인지적 문제행동 증상(망상, 환각, 환시, 우울 등)이 자주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부인이신 어르신에 대한 부정망상을 자주 보였고 망상 증상이 출현될 때에 남편은 이제껏 가족을 위해 수고로운 삶을 살아오신 어르신께서 부정한 짓을 했다고 믿고 핍박하셨던가 봅니다. 망상 초기에는 남편이 어떤 말씀을 하셔도 치매 초기라 헛소리를 간혹 하시는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가셨는데 동일한 증상이 계속되었고 일정시간 망상 증상을 보인 뒤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평범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자주 보시고는 어르신도 남편의 망상증상이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가지게 됩니다.

  

시간이 경과하자 어르신은 남편의 망상이 출현할 때마다 사실유무에 대하여 따지게 되었고 심할 경우에 부부간에 유혈폭력도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치매망상 중에 벌어진 일이라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면 기억하지 못합니다. 주말드라마에서 보듯이 치매 초기에는 일정시간이 지나면 정상상태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아마 어르신은 이 부분에서 오해가 많아지신 것 같습니다. 남편이 치매 증상을 빙자하여 평생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지만 말 못한 어르신에 대한 부정한 생각 또는 불만 등을 그렇게 표현하고 당신을 능욕한다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어르신은 누구에게도 말 못할 억울함, 배신, 분노, 망연자실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로가 쌓이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치매증상은 초기 진료 당시의 수준에서 더 악화되지 않았으나 그로 인한 어르신의 스트레스와 피로는 어르신마저 치매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어르신의 치매증상은 감당할 수 없었던 심적 스트레스만큼이나 무겁게 덮쳐 왔습니다. 치매센타에 오셨을 때에는 장기요양인정등급 2등급으로 말문을 닫고 가족들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고 의욕이나 즐거움 등이 상실된 상태였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어르신을 회상하면 치매가 무너뜨리고 간 어르신의 젊고 사랑했고 행복했던 시절의 모습들, 그리고 치매센타에서 생활하시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치매 어르신들을 사랑과 효심으로 가정에서 모시는 것은 자녀로서 가족으로서 훌륭한 생각이지만 망상, 오인, 환각 등의 문제행동 증상이 보일 때는 빨리 장기요양시설이나 병원으로 모시는 것이 주변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치매예방수칙(중앙치매센타)

이렇듯 치매는 평소에 깊은 관심과 이해가 필요한 병입니다. 치매예방을 위해 중앙치매센타에서는 평소에 세 가지를 즐기고, 세 가지를 참고, 세 가지를 꼭 챙기라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 세 가지 즐길 것 : 일주일에 30분 이상씩 적어도 세 번은 걷고, 식사를 거르지 말고 생선과 채소를 골고루 먹고, 틈날 때마다 책이나 신문을 읽고 글쓰기를 즐기면 치매예방에 좋습니다.

 

- 세 가지 참을 것 : 술은 한 번 마실 때 세 잔보다 적게 마시고 남에게 권하지 말 것, 흡연은 시작하지도 말고 피우고 있다면 지금 당장 끊을 것, 뇌손상 방지를 위해 머리를 다치지 않도록 조심!

 

- 세 가지 챙길 것 : 고혈압, 비만, 당뇨병 예방을 위해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할 것, 가족·친구와 자주 연락하고 단체 활동과 여가생활을 즐길 것, 보건소에 가시면 치매검사가 무료이니 매년 치매 조기검진을 받읍시다.

 

무엇보다 형제자매님들께서 예방수칙을 숙지하셔서 건강하고 즐거운 노후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