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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언성히어로(Unsung Hero)”


글 김윤식 안토니오 신부 | 하양성당 보좌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영화를 감상하는 제 취미였다면 스포츠, 특히 축구경기를 시청하는 것은 언제부턴가 온전히 저만을 위한 여가시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해외축구에 큰 관심이 없던 저는 박지성 선수가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명문구단에 입단하면서 ‘주말예능 EPL(잉글랜드 프로축구 1부 리그)’에 함께 입문했습니다. 그 후 수많은 한국 선수들이 유럽 축구무대를 거쳐 갔고, 현재 손흥민 선수가 놀라운 활약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어 사람들의 관심도 여느 때보다 높은 것 같습니다. 경기의 속도감과 수준은 물론 선수, 감독과 매 경기에 얽힌 역사와 사연들이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한국 축구선수가 그런 큰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놀랍고, 때로는 괜히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그것도 어느덧 15년째가 되어간다니 새삼스럽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나라 프로축구도 많은 관심과 응원 속에 빠르게 성장해나가길 기원해봅니다.

 

혹시 저 같은 해외축구팬이 계시다면, 제목만 보고도 ‘아, 박지성 선수 이야기를 하려나보다.’ 바로 눈치를 채셨을 것입니다. 많은 의문부호와 우려를 달고 시작했지만 끝내 한국 축구역사에 길이 남을 커리어를 써내려간 박지성 선수. 그에게 현지 언론이 붙여준 별명이 바로 ‘언성히어로’입니다. 이 단어 의미는 ‘그럴 자격이 있음에도 찬양 받지 못한 영웅’이라는 뜻입니다. 화려하고 돋보이거나 크게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제자리에서 묵묵히 팀을 위해 희생하며 헌신적인 플레이를 했던 박지성 선수는 은퇴 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희생과 헌신, ‘언성히어로’를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언성히어로들이 있고, 그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 세상이 움직이고 유지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충실히 실현해나가는 가운데, 그것이 개인을 위한 일을 넘어 사회에 공헌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굳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그러한 모습들이 머릿속에 마치 영화처럼 펼쳐지실 것입니다.

 

언성히어로의 재조명, 영화라는 매체가 문화적 유희를 넘어 사회적으로 공헌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저 역시 까맣게 모르고 있던 이 세상의 수많은 언성히어로들을 영화를 통해 만났습니다. 책이나 구전을 통해 어렴풋하게 알고는 있지만 영화만큼 언성히어로의 삶을 생동감 있게 직접 전달해줄 수 있는 매체는 없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그렇기 때문에 더 확실한 고증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겠지요. 개인적으로 가장 최근에 본 ‘말모이’를 통해 우리의 언어를 목숨 걸고 지켜낸 언성히어로들을 만났고, ‘1987’과 ‘택시운전사’를 통해 민주화 운동의 언성히어로들을 만났습니다. 그밖에도 한국 역사를 넘어 세계의 역사적 이야기를 다룬 실화소재 영화들, 또 그 영화들로 인해 재조명된 사건들. 히어로물이 판을 치는 가운데 언성히어로 영화들은 묵직한 감동으로 우리 사회에 조용하지만 큰 물결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사회가 그렇듯, 우리 교회 역시 수많은 언성히어로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삶을 다룬 영화들도 숱하게 제작되어 왔습니다. 성인성녀들로 기억되는 수많은 분들은 물론,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재조명된 또 다른 우리의 언성히어로들. 우리 본당, 직장, 학교, 삶의 터전 곳곳에 그런 분들이 우리도 모르게 함께 호흡하고 있기에 아직 세상 살아갈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언성히어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우리 신앙이란 ‘왼손이 모르게 행하는 오른손의 자선’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상을 바라는’ 우리의 신앙이야말로 언성히어로의 삶에 실천적 동기를 부여하지 않습니까. 모든 일을 아시는 하느님 앞에서는 언성히어로란 없습니다. 그걸 떠나서라도, 살아보니 악행이든 선행이든 언젠가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드러나게 마련이지 않습니까. 글을 작성하며 위선과 거짓으로 꾸며졌던 제 지난 삶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호를 통해서는 상대적으로 비주류이고 흥미를 끌 요소가 부족해 외면 받아온 언성히어로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은 영화들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저 역시도 화려하고 재밌는 ‘히어로물’들에 선택지가 밀려 아직 못 본 영화들이 많습니다. 사순시기를 보내며, 조용히 하나씩 꺼내보려 합니다.

 

<이달의 추천 영화>

제자, 옥한흠(2014), 오 마이 파파(2016), 순종(2016), 내 친구 정일우(2017),

마리안느와 마가렛(2017), 폴란드로 간 아이들 (2018)